1997년 4월 필리핀의 한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외화를 탕진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개그맨 황기순(41)씨. '외화 밀반출' 혐의 등으로 수배되어 1년 8개월 간 도피생활을 한 그는 1999년에 자진 귀국, 사법처리를 받았다.
‘지옥’과도 같았던 도피생활 이후 황 씨는 속죄 차원에서 5년째 전국 곳곳을 사이클을 타고 돌아다니며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생의 지옥’을 경험한 그는 모은 성금으로 휠체어를 구입하여, 지체장애인들에게 기부하는 봉사활동을 통해 ‘마음의 천국’으로 가는 페달을 밟고 있다.
“척보면 앱~니다” 등의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던 황씨는 1997년 사업 실패로 얻은 빚을 도박을 통해 만회하려다 수 천 만원의 빚을 더 얻고 1년 8개월간 이국땅에서 ‘걸인’과도 같은 생활을 해야만 했다. ‘외화 밀반출’ 혐의 등으로 수배령이 내렸고, ‘공인’으로서 자신을 아껴줬던 팬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고 했다.
이국에서의 도피생활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필리핀 마닐라 교외의 빈민가에서 살았던 그는 빵 한조각 구하기 힘들어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땅 바닥에 떨어진 동전이라도 없나 찾으며 '폐인'처럼 살았다고 한다. 그런 그를 '지옥' 같은 수렁에서 건져준 것은 교민들과 지인들의 따뜻한 격려와 온정의 손길이었다. 교민들은 그를 돌봐주었으며 한국의 지인들은 “들어와서 법의 심판을 받고 당당하게 다시 시작하라”고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힘을 얻은 황씨는 마침내 돌아갈 결심을 굳히고 도피생활 1년 8개월 만에 귀국을 한 뒤 법의 심판을 받았다.
초범인데다 자수를 한 점 등이 참작 되어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그에게 남아 있던 것은 수 천 만 원의 빚더미.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한국 땅을 밟은 기쁨에 감사하며 이를 악물고 일하였다. 그 후로 5년,이 '돌아온 탕자'는 자신이 진 빚을 차근차근 갚아 나갔고, 2000년부터시작한국토종단 ‘사이클은 사랑을 싣고' 모금 행사를 통해 지난 날 자신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황씨는 요즘 근황에 대해 "정말 내가 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만 해도 너무나 큰 기쁘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사이클은 사랑을 싣고' 모금행사는 매년 여름 황씨가 동료들과 직접 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돌며 거리에서 모금 활동을 펼치는 행사. 올해는 8월 13일 부터 22일까지 10일 간 서울, 부산, 수원, 대전, 대구, 광주 등 전국을 돌며 모금 활동을 펼쳤다. 태풍 '메기'가 뿌리는 폭우를 맞아가며 10일 간 그가 모금한 액수는 무려 1350만원. 이 돈으로 그는 휠체어 90대를 구입,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미금동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황씨는 "덥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작은 힘이나마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다"며 “도피 기간 동안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내가 받았던 도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씨가 모금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으로, 한국생활에 익숙해지던 차에 어느 방송에서 나온 장애인의 날 특집 프로그램에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휠체어 장애인을 본게 계기가 됐다. 그는 그때 자신의 도피기간 내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에게 온정을 베풀어 줬던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또 그는 “연예인으로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야 하는데 그간의 과오에 대해 실수로 생각 해주고 기회를 준 사람들에 대해서도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씨는 그 길로 휠체어로 두 달 반 동안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1400여 km의 대장정에 나섰다. 종단 도중 들린 도시마다 그는 확성기 하나에 의지해 모금행사를 벌였고 그렇게 모은 돈을 휠체어 52대를 구입, 복지단체에 기증하였다. 그는 “냉랭해하던 시민들이 ‘수고 한다’고 격려해 줄 때는 정말 기뻤다”며 “처음에는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시작한 마음이 컸지만 모금활동이 끝난 뒤 내가 기증한 휠체어를 쌓아 놓은 것을 본 순간 느낀 말로 표현 못할 뿌듯함과 내가 남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후 그는 본업인 코미디에서 차근차근 재기의 발판을 다지는 와중에 그 때의 뿌듯함을 잊지 않고 2001년도를 제외한 매년 사이클을 타고 10일 간의 모금활동에 나섰다. 올해는 태풍 ‘메기’의 북상으로 인해 천막을 치고 모금활동을 했지만 그 열정에 감복한 시민들 덕택에 예년보다 더 많은 금액을 모금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흘린 땀으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 한다”며 “앞으로도 매년 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돌며 모금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첫댓글 고난은 연단의 과정입니다. 그를 통해 성숙해진 황기순씨의 더욱 힘찬 활동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