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홀로 산행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양쪽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아무도 없는 산행을 홀로 하면서,
그리고 다 떠나간 밤바다를 홀로 서서,
2시간을 우두커니 서있던 나의 모습이 그립네요.
사량도의 은행나무횟집 부부의 정다운 모습!
다시 가 보고 싶어집니다.
--------------------- [원본 메세지] ---------------------
* 지리산
- 두류봉의 이름을 얻었고, 자신의 영원한 고향이자 마음의 안식처인
- 지리산 등산을 우리 카페 회원들과 한번도 함께 해 보지 못한 죄스
- 러움과 아쉬움을 전하면서 나도 지리산을 멀리서나마 바라 보이는
- 또다른 지리산(智異望山)을 갔다온 이바구라도 써야 되겠네요.
- 물론 우리 카페 회원들중 다녀 오신 분들도 많겠지만...
* 사량도와 지리망산
사량도는 윗섬과 아랫섬으로 되어 있다. 사량도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윗섬과 아랫섬의 건널목인 동강나루에서 뱀이 꼬리를 물고 다리(梁)처럼 지나 다닌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리고 위치는 고성군 하일면과 삼산면의 앞바다인 북위 34˚50′ 동경 128°15′에 있지만, 행정상으로는 통영시 사량면으로 되어 있다.
사량도를 모도(母島)로 하여 수우도(동백섬)를 포함한 3개의 상주(常住) 유인도가 있고, 죽도는 지금 현재는 무인도로 변했지만 농장과 집이 있는 섬이며 이외도 농개도 화도 학섬 잠도 대호도 목도 딴똑섬 등의 무인도를 포함하여 사량면을 이루고 있다.
사량면은 현재(2001년10월말) 1034세대에 2737명의 등재인구가 살고 있으며, 사량중학과 사량초등학교에 돈지 내지 읍포 양지 수우의 5개 분교가 있으며 윗섬과 동백섬은 금평리와 돈지리, 아랫섬은 읍덕리와 양지리의 4개리로 구성되어 있다.
윗섬에 위치한 금평리 진촌마을은 신라 시대부터 진을 설치했던 곳으로 섬행정의 중심지로 면사무소와 보건소 등이 있고, 돈지리의 돈지마을은 500여년전 진촌마을에 진을 확장할 때 다른 마을에 비해 부역을 가장 많이 한 마을이라 하여 "고된 지게" 라는 뜻에서 "된지게" 라고 했다가 "돈지"로 변하여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남녘 사투리 중 "되지게 혼났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뜻은 "죽도록 혼났다"라는 뜻도 있지만, "돌짐이나 흙짐으로 된짐을 질 정도로 혼났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 물론 농촌일은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돌짐이나 흙짐을 지는 일은 그렇게 힘드는 일이다.
아랫섬의 "덕동"마을은 1500년경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여 점차 커진 곳으로, 옛날에는 "공수리" 라 일컬어 왔으나 가난한 사람들이 덕을 보기 위하여 이름을 "덕동" 이라고 고쳤다고 한다.
사량도의 윗섬에는 해발 398m의 지리산과 불모산(399m), 가마봉, 옥녀봉(291m)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종주산행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바위 봉우리와 능선을 번갈아 타면서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섬임에도 불구하고 지리산의 절경을 보러 오는 등산객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지리산은 원래 진짜의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산이라는 뜻의 지리망산(智異望山)에서 유래되었으나, 그냥 줄여 지리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량도의 아랫섬에는 7개의 연봉으로 이루어진 칠현산(348m)이 있는데 망봉(349m) 대곡산(303m) 외망봉(266m)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등산로와 안내판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일곱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능선길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사방으로 탁트인 전망 또한 좋아 근래에 많이 찾는 등산코스이다.
특히 옥녀봉에는 근친상간 금기의 도덕률을 강조하는 전설이 서려 있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옛날 사량도에는 한 부부가 옥녀라는 딸 하나를 낳아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았다. 그런데 그만 옥녀의 엄마는 나쁜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고, 남은 옥녀의 아버지는 그 옥녀만을 데리고 열심히 밭일과 바닷일을 하면서 살았다.
아버지의 보람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이 딸을 애지중지 기르고 그 재롱을 들으면서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의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덧 옥녀는 자라 성숙한 처녀로 커서 아버지의 농삿일이나 바닷일을 돕고, 그리고 조석을 차리고 길쌈 빨래 등 가사일 모두를 해내는 것이 일상으로 되었다. 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흐뭇했고, 들에 갔다 오거나 바다에 나갔다 와서 집에 들어오면 딸만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딸은 성숙한 처녀가 되어 혼기가 되었지만 섬에는 총각이 없어 시집을 보낼수도 없었다. 이 일을 걱정하고 안타깝게 여기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욕정(欲情)이 발동하여 자기의 딸이 딸로 보이지 않고 한 사람의 여자로 보였다.
그래서 옥녀는 너무 어려운 고뇌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주면 윤리에 어긋나는 짓이고, 거절하는 것은 효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섬내에 다른 여자가 있어서 아버지를 위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자기가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니, 자기의 아버지에게 등에 길마를 지고 옥녀봉으로 "음메,음메" 소리를 내면서 기어 올라오면 그 옥녀봉 위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길마를 지고 기어 오라는 뜻은 인간의 윤리로는 끝이 났고, 마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길마를 지고 옥녀봉을 오르는 순간 옥녀는 몸을 내던져 자살하였고, 그 때 하늘에서는 뇌성벽력이 치면서 벼락이 떨어져 이 아버지는 그 벼락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 옥녀봉 아래에는 옥녀를 죽게 하지 말고 붙들어 매라는 뜻의 붙들 바위가 있고, 핏자국이 선명하여 비내리는 날은 바위에서 빨간 핏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옥녀봉 위에는 남녀가 정사를 치를만한 크기의 편편한 곳이 있다.
그리고 사량도에는 아무리 사량도 안에서 이루어진 혼사나 연애에서도 결혼식만은 반드시 외지에 나가서 치른다고 한다. 사량도 내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여자가 잉태하지 못하여 후사를 이룰 수없다는 속설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