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랭이 마당으로 나오는 기척에 잠을 자지 않고 있던 새끼 진돗개가 몸을 일으키더니 콜랭에게 다가왔다. 독판이 선물로 데리고 온 개였다. 조선의 남쪽 진도에서 태어나 진돗개라 불린다고 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어린 개를 데려온 이유는 진돗개는 한 번 섬긴 주인을 평생 잊지 않는 성질이라 어려서부터 기르지 않으면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인을 잃으면 열흘이고 한 달이고 기어이 그 주인을 찾아가고야 마는 영리한 개라고도 하였다. 흰털이 소복하게 자라있는 새끼 진돗개는 사랑스러웠다. 콜랭이 등을 한 번 쓸어주고 난 뒤 벽오동 나무 밑으로 걸어가자 개도 한 발짝 뒤에 따라왔다. 플랑시 마을의 드 플랑시 귀족의 저택에도 털이 부숭한 하얀 개들이 여러 마리 있었다. 마리를 만나러 갈 때면 개들이 먼저 뛰쳐나왔다.
콜랭은 어둠 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허공에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어젯밤은 비가 내리더니 오늘밤은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벽오동 나뭇잎이 살랑거리고 어디선가 밤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구나.
발 아래를 따라다니는 개를 향해 콜랭이 혼잣말을 하였다.
―이름도 모르는데 다시 만날 수가 있을까? 구중궁궐 안의 여인을 말이다!
콜랭이 엎드려 개의 등을 쓸어내렸다. 짧게 마주쳤을 뿐인데 궁녀의 검은 눈은 이미 콜랭의 마음 안에 똬리를 틀었다. 어렸을 때 잃어버린 시계를 되찾은 듯했다.
―분명히 ‘봉주르’라고 내 인사를 받았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이었어. 우리 말을 할 줄 안다는 얘기다!
콜랭은 두서없이 떠오르는 사념들을 떨쳐내려는 듯 벌떡 일어났다. 뜰을 서성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모멸감이 들었다. 콜랭은 들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버렸다. 발로 거칠게 문질렀다. 무엇에도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뚜벅뚜벅 걸어 안으로 들어와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콜랭은 부임장과 함께 받은 훈령을 꺼내 읽었다.
―1886년 6월 4일에 조선과 프랑스 양국이 맺은 조약이 잘 시행되고 있는지 신중하게 관찰하는 일이 당신의 할 일입니다. 당신이 정치문제 못지않게 신중하게 상의해야 되는 것은 조선에 나가 있는 프랑스 선교사들에 관한 조항일 것입니다. 조선은 유럽 문화를 저의 없이 받아들이기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독교에 대한 오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콜랭은 훈령을 다시 접어 서랍에 넣었다.
조선의 왕이 프랑스에 대해 호의적일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왕은 중국이나 일본 영국 미국 러시아 공사나 영사에게는 속마음을 그대로 표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왕의 말 한마디와 행동은 곧 열강들의 갈등 관계를 재편성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가 조선과 정식 조약을 체결한 건 겨우 2년 전이다.
프랑스는 그동안 조선보다는 베트남에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중국과는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그러면서 서로 어떤 나라인지 알게 되었으나 조선과는 아직도 적극적인 교류가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의 조선에 대한 주요 관심사는 경제적 이권이 아니라 가톨릭 전도라는 종교 문제였다. 조선이 쇄국 정책을 펴고 있던 때 파리의 외방선교회에서는 조선에 신부 세 명을 비밀리에 파견했다. 그들은 모두 순교했다. 뒤이어 8000명의 조선인 신도와 9명의 프랑스 선교사 또한 갖가지 방법으로 순교했다.
초여름 밤, 집을 떠나 잠 못 이루는 새끼 진돗개가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콜랭은 담배에 불을 붙여 손가락에 끼고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