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이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는 독일이다. 하지만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이후 그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포드자동차의 대량생산방식이 만들어낸 자동차 산업의 규모화는 미국에 빠르게 확장돼 1960년대에 이미 미국의 80%나 되는 세대가 자동차를 보유할 정도로 엄청난 미국내수시장을 갖게 되었다. 당시 미국차는 미국인에게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인식돼 점차 대형화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세계의 자동차 산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독일과 일본이 그 뒤를 따르면서 자동차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인구 30억에 육박하는 아시아 자동차 시장의 잠재수요는 당연히 크다. 세계 인구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미국, 일본, 유럽이 보유하고 있는 총 자동차 대수는 80%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 세 곳의 자동차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하여 더 이상 뚜렷한 신장세를 기대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중국이나 인도를 포함하여 인구 30억이나 되는 아시아에서는 앞으로 자동차 수요가 급격할 전망이라서 세계의 우수 자동차 기업들이 아시아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첨단 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아시아 각국에 자동차 생산 거점을 갖게 된 대부분의 선진 자동차 기업들은 아시아에서 한판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아시아 여러 국가들은 자동차 산업을 자국의 경제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하고, 육성에 힘써왔다. 특히 정보통신의 발달로 아시아 각국은 설계, 개발, 조달, 제조 판매라는 활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 분업체제를 만들어 자동차 조립과정 공장을 쉽게 설립하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각국정부는 조세제도를 새로 만들고, 라이센스 세를 도입하고, 국산화 비율규제와 국산화 의무 부품을 높이고, 외화 획득 의무 정책 등을 기반으로 자동차 생산 거점을 자국에 유치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외국 자본의 출자비율 규제와 진출지역을 한정하는 조치도 취하고,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수입가격이 높은 자동차를 국내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국제수지 개선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정부의 역할도 매우 크다. 자동차 시장 확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가지고 자동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시아 자동차 생산 거점을 완성시키는 데는 일본의 선진 기술과 자본의 힘이 또한 무섭게 투자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세기에는 여러가지 물건들이 발명되고 대량생산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20세기에 발명해 낸 물건은 거의 全無하다고 할 수 있다. 고작해야 소니가 만들어낸 Walk Man 정도일까.
일본은 미국, 유럽 등 외국에서 발명해낸 물건을 아주 잘 개량했고 대량생산에 성공했기 때문에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이 개량된 물건들이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상품들, 초기의 섬유제품, 자동차, 전자제품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본 제품이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이상의 상품들 중에 일본이 독자적으로 발명해낸 물건은 하나도 없다. 거의가 미국 아니면 유럽에서 발명된 물건을, 일본은 개량을 잘 해냈고 또 대량생산 즉 싸게 만들었고 불량품을 적게 만들었다.
물건을 개량시킨 것이 바로 「기술」인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일본사람들에게 기술력을 제공한 것일까.
연구하는 자세, 공부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과 한국과의 연구하는 자세, 공부하는 자세를 비교해 보자.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듯 교육열이 매우 높다. 자기자신에 대한 교육보다 자식에 대한 교육에 헌신적이다. 처음 출발은 내 자식도 남의 자식도 모두들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해서 출발한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도 국민전체의 실력수준은 지출한 돈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도 교육열이 매우 높은 나라이다. 그러나 한국정도는 아니다. 열심히 사교육비를 들이며 공부시키는 부류는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아마도 한국의 학생들 중에서 초·중·고등학교 과정에서 학원 경험이 없는 학생이 있을까?
일본은 학원을 보내는 학생은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한국은 자기자신의 공부보다는 자식에게만 공부를 강요하면서 천문학적 교육비를 써오고 있다.
일본을 출판대국이라고 한다. 이것은 책을 내면 장사가 된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장사 즉 비지니스를 하는 곳이다. 적자 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책을 많이 사주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 개개인이 연구하고 공부하기 때문에 책을 사서 읽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일본사람들의 연구심이 우리 한국 사람들 보다 더 높고 깊게 만든 이유중 하나이다.
신문도 그렇다. 일본 신문이 읽을 것이 많은 것이 아니라, 한국 신문보다 내용에서 한발 더 깊게 느껴진다. 내용이 한발 더 깊은 것이 기술에서도 한발 더 깊은 것이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한다. 일본말 중에 「계속이 힘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서두르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계속해 나가라는 이야기이다. 정년퇴직 후에 유학을 가는 일본사람들을 많이 본다. 특히 나는 한국사람이어서 정년 후에 한국에 유학을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나이 70세 가까운 노인네가 낯설고 물설은 한국 땅에 유학을 가는 것이다. 거의가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는데,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직장을 다닐 때에도 꾸준히 공부를 해온 사람들이다. 정년 전, 시간이 없을 때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을, 정년 후에 시간이 나기 때문에 유학을 떠나는 것이다.
물론 한국사람들도 어학공부를 많이 한다. 그러나 쓸모가 없어지면 곧 그만두고 만다. 일본 노인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역으로 한국 노인들이 일본으로 유학 오는 경우는 본적이 없다.
내 주변에서 한국어 교실 강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수업에 참가하는 학생 중에 80살도 더 된 노인이 있다. “저 노인이 지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언제 어디에 쓸려고 하는 건지?”라는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이런 향학열에 대응하기 위하여 평생교육을 하는 곳이 많다. 특히 저렴하고 공신력이 있는 학교나 관청에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준비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포들도 자식교육에는 일본사람들 이상으로 열심이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 의사들을 배출해 내고 있다. 또한 이런 주위환경 때문인가, 한국 교포들의 본인의 향학열은 자식교육 이상으로 매우 높다. 특히 어릴 때 공부할 기회가 적었던 할머니들의 본인을 위한 향학열이 대단하다.
밤에 중학교 과정을 가르키는 야학이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정규 중학교에서 정규과정으로 가르키는 곳이며, 학생들은 나이가 들었지만 어엿한 정규학생에 학생증까지 발급한다. 이곳 학생의 상당수가 교포 할머니들이다. 몇 년 전 재일교포인 우리 이모님이 89세로 타계하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야학의 학생이셨다. 가끔 찾아뵈면 80세도 더 된 중학교 학생인 이모님이 숙제를 하고 계신다. 무척이나 반가워하신다. 숙제 좀 가르쳐 달라고.
그리고 한국보다 한층 높은 기술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이공계 출신자를 우대해 왔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사장 전무 상무 등, 최고 경영자의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의 전공을 보면 문과계 출신보다 이공계 출신들이 많다. 그 결과 회사의 분위기, 즉 회사문화가 기술 중시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 왔는가. 산업현장에서 바로 기계와 접하면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工員이라 불렀고, 더 심하게 ‘공순이’ ‘공돌이’ 라는 차별적인 언어까지 만들어 멸시를 해왔다. 이런 멸시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술개발을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멸시를 안 받는 직업으로 전직을 원하게 될 것이다.
기실 나도 1980년대에 엔지니어로서 현장에 있었고, 많은 여자공원들과 같이 근무를 해 보아서 그녀들의 마음을 잘 안다. ‘공순이’ 의 반대말은 ‘공돌이’ 가 아니라 ‘여대생’ 이었다. 기술개발은 여대생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공돌이, 공순이’가 해온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인정해 주는 것은 여대생도 아니고, 공순이 공돌이도 아니라, 그 회사에 얼마만큼 기여한 사람이냐 인 것이다. 그 회사에 기여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은, 그 사람이 그 회사에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근무를 했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본은 회사에 입사를 하면 그 회사에서 정년을 맞는 것이 상식이었다. 물론 여자들의 경우는 결혼 때문에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중도 퇴사, 중도 입사는 사회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따가운 주변의 시선을 받아야했고, 중도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입사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이 무서워서 그 회사에서 정년까지 가게 된다. 그 결과로 일본의 전문가는 사회적 전문가라기보다는 회사 내 전문가를 양산해왔다. 즉 그 회사를 그만두었을 경우 다른 회사에서는 쉽게 활용이 불가능한 인재를 양성해 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못 받는 하나의 척도가 그 회사에 얼마나 오랜 동안 근무했냐는 것이다. 비자카드 등 크레디트 카드를 신청하는 서류에도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근무 년수를 기입하는 란이 있다.
일본처럼 상사노릇 하기 편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위에서 한번 명령이 내려지면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그 명령 그대로 행해지고 있다. 그 결과 불량품이 적어진다. 한국은 어떤가? 명령 하나 내려놓고 조금 지나서 체크를 해보면 명령의 내용은 어디 가고 없다. 왜? 그 명령의 내용이 실제 작업을 하는데 좀 불편하고 힘이 들면, 작업자가 편한 쪽으로 가 있다. 결과적으로 생산해 내는 물건이 불량품이어도 책임지려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일본사람들과 비교해서, 개개인 한사람 한사람은 모든면에서 앞서 보인다. 그러나 한국물건과 일본물건을 비교해 보면 일본물건이 한 수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사회적 시스템이 잘못 되었기에 빚어진 결과라고 생각해 보면서, 이 시스템만 잘 고쳐진다면 월드컵 축구 4강에 오른 것처럼, 모든면에서 세계 4강에 들 수 있는 민족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