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 투전기를 흉내낸 듯한 속칭 사행성 오락기들이 초등학교 문구점 앞을 장악해 동심(童心)을 해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5시께 부산 사상구 모 초등학교 앞 문구점 앞에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어린이 3명이 동전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기어코 한 어린이가 작심을 한 듯 100원짜리 동전을 게임기에 넣고 버튼을 누르자 게임기 화면에 '알'이란 표시가 나타나고 곧 배당률을 보이는 표시와 함께 몇개의 100원짜리 동전이 떨어졌다. 함께 있던 어린이들이 '와'하고 함성을 내질렀다.
최근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오락기의 이름은 '알쏭달쏭 오락기'.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버른을 눌러 '알'이란 표시가 나오면 이기고 '쏭'이 나오면 지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원초적인 게임에 어린 아이들이 푹 빠져있었다.
이유는 '알'이 나오면 어린이들에게는 '대박'인 최대 20배(최대 2천원)까지 배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락기 설치업자나 문구점 주인들이 단속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대개 메달이나 구술 등으로 배당을 지급하고 있지만 바로 현금을 지급하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현금이 아닌 메달이나 구슬같은 상품도 1개당 100원으로 계산해 문구점에서 과자나 장난감, 학용품으로 교환해줘 사실상 현금과 같은 배당상품인 셈이다.
이웃한 한 문구점에는 성인용 오락기인 슬롯머신과 흡사한 '동물의 왕국'이란 오락기가 놓여있었다.
어린 학생은 "호랑이 3마리가 일렬로 맞춰지면 메달이 마구 쏟아진다"며 "메달을 문구점 아저씨에게 가져가면 1개당 50원으로 쳐서 과자랑 바꿔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오후 2시쯤 부산 북구 모 초등학교 앞에서 하교길 학생 몇몇이 문구점 오락기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 어린이들의 손마다 100원짜리 동전이 쥐어져 있었고, 일명 '묵찌빠'란 오락기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오락기에는 '가위, 바위, 보' 등 3개의 버튼이 있었고, 이 가운데 하나를 누르면 오락기와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게 되고 잠시후 오락기 화면에 승패표시가 나타났다.
알쏭달쏭과는 달리 묵찌빠는 게임에서 이긴 어린이에게 카드 한장을 상품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 역시 사행성을 숨기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카드에는 최대 25배(2천500원)의 배당금액이 표시되는데 어린이들은 카드에 표시된 금액만큼 문구점에서 학용품과 과자를 교환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카드에 적힌 금액만큼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대 부산 해운대구 모 초등학교앞에는 '맹구와 뿔라뿡'이란 게임기가 어린이들의 하교길을 붙잡고 있었다.
이 기기는 게임방법이 단순한 알쏭달쏭이나 묵찌빠와는 달리 제법 성인용 오락기 흉내를 내고 있었는데 맹구버튼, 뿔라뿡버튼, 부메랑버튼, 슛버튼 등 4개의 버튼을 무작위로 누르면 화면에서 원형을 따라 불이 돌아가다 메달숫자가 적혀있는 곳에 서는 게임이다.
배출구를 통해 시상되는 메달은 최고 30개까지이며, 이 역시 1개당 100원으로 쳐서 문구점에서 상품 또는 현금으로 교환해준다.
인근의 또 다른 문구점에서도 사행성 오락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카우보이 비밥'이라는 기기였다.
알쏭달쏭과 동물의 왕국, 묵찌빠같은 전자게임이 아니라 기계안에 경품을 적은 종이를 넣어두고 버튼을 누르면 한장씩 내뱉는 오락기였다.
문제는 최하 50원짜리 바나나빵에서부터 몇 만원씩 하는 퀵보드 또는 전자게임기를 지급한다는 오락기옆 시상문구였다.
한 어린이(9)는 "작년에 처음 설치됐을 때 퀵보드에 당첨된 친구가 있었다"고 허풍을 떨었지만 2∼3시간을 지켜봐도 간혹 2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나오기는 했지만 대개 꽝 아니면 50원짜리 바나나빵, 본전치기인 100원짜리 일명 고무줄 과자가 전부였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3일부터 4주간 계획으로 청소년 유해환경 단속에 나서 현재까지 사행성 미니게임기 75건을 적발했다.
하지만 기기압수 외에 특별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아 압수 후 다음날이면 다시 그 자리에 똑같은 기기가 등장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초등학교 문구점의 경우 등급분류를 받았더라도 2대 이상의 게임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대개 3∼4대씩 갖추고 있으며 그 중에는 심사미필 오락기도 다수 끼어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어린이용 오락기라고는 하지만 사행심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면학분위기도 해치고 어린이들의 정서에도 맞지 않는 만큼 아예 오락기를 설치하지 못하게 하고 어길 경우 강력히 처벌하는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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