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기 바둑한판으로 부자가 되다>
홍국영(조선 영조, 정조대의 세도 정치가)은 매사에 재주가 많아 못하는 것이 없었는데, 특히 바둑을 잘 두어 혹 대국하는 자가 있어도 그를 당하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노상 스스로 국수라고 자랑하였다. 그 때 평안도 개천에 최선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한 가지 재주가 있어 바둑이 매우 능숙하였다. 그는 세도가 홍국영이 바둑을 잘 둔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에 무슨 꾀를 내었는지 밭 한 뙈기 있는 것을 팔았다. 그리하여 그 돈 아홉 냥으로 연경에 사신 가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수정 갓끈 하나를 사 달라 하여 가지고는 서울로 올라왔다. 어느 여관에 외상 밥을 먹으면서 어떻게 홍국영의 집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나 당대의 세도 참판 홍국영인지라 날마다 빈객이 많아서 좀처럼 수작조차 해보는 수가 없었다. 날마다 그저 윗목에 가서 앉았다가 돌아오는 수밖에-. 그러자 하루는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최선기는 속으로 잘 되었다고 좋아하면서 그 비를 무릅쓰고 여전히 매일 가는 시간에 홍참판 댁 사랑에 갔었다. 여느 날 같으면 방이 비좁도록 사람들이 있을 것이었지만 그 날은 아무도 없고 홍국영이 혼자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반갑다는 듯이, "자네가 개천 사는 최선기라고 했지. 이런 우중에 잘도 왔네" 했다. 최선기는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황공한 듯 앉았다.
그래 이럭저럭 말이 오가다가 국영이, "자네 바둑 좀 둘 줄 아는가" 하고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던 판이라 어련히 좋아했으랴. 그러나 최선기는, "시골 무식꾼이 뭐 변변하겠습니까만 두어 점 놓을 줄은 압니다." 했다.국영은 다행이라는 듯이, "그럼 한 판 두어 보면 알겠네." 하고 청지기에게 바둑판을 가져 오라 하였다. 최선기는 마음먹은 바가 있으므로 내기바둑을 두자고 했다. "그런데, 소인은 내기가 아니고는 바둑을 안 두는 사람이옵니다." "뭐이? 내기만 둔다고? 그럼 무슨 내기를 하겠는가."
<홍국영 대감과 최선기의 대국 상상도>
홍국영이 우습게 여기고 묻자, 그는 소매 속에서 수정 갓끈을 내놓았다. "소인은 이것을 내놓겠습니다. 삼판양승제로 두어서 소인이 지면 갓끈을 내놓고 그 대신 영감께서 지시면 소인의 청을 들어 주시는 걸로 내기를 하옵지요." 홍국영은 두나마나 자기가 이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또 무엇을 청해도 다 들어 줄 수 있기에 자신 있게 "그렇게 하세." 하고는 사양하는 척 하면서 백을 쥐고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바둑을 두어보니 최선기의 바둑은 여태껏 다른 사람과는 딴판이었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두어 계가를 해보니 겨우 그가 다섯 집을 이겼다. "허, 자네 바둑 어디서 배웠나. 잘 두네 그려." 최선기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감맞님이야 말로 과연 잘 두십니다요." 하면서 머리를 조아린다. "삼판양승 보기로 했으니 한 번 더 두세." 대감 말에 최선기는 또 사양을 하면서 다시 한 판을 두기로 했다.
그는 무척 애를 쓰는 듯 두어서 그 판에는 두어 집을 이겼다. "삼판양승에서 이제 한판 남았네." 그리하여 또 막판을 두었는데 그 판에는 또 짐짓 대여섯 집을 졌다. "졌으니 약속대로 드리겠습니다." "바둑 두어본 중에서 자네처럼 잘 두는 사람 처음 보았네. 하여튼 내기라 했으니 나에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두네." 최선기는 점심을 얻어먹은 다음 물러 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뒤에 또 비가 왔다. 최선기는 우비를 빌려 입고 또 홍 참판 댁으로 갔다. "이런 우중에도 오다니. 자네 또 바둑 두려는가." "아~ 예, 그러하오나 소인은 말씀 드린바와 같이 내기가 아니면 아예 바둑을 아니 두옵니다." 물론, 마음속에 작정을 한바가 있기에 이번에는 최선기가 두 판을 이겼다. "허어~이사람, 내가 치선을 하여도 당할 길이 없겠네. 허면, 자네 청은 무엇인고?" 홍국영이 바둑을 쓸어 넣으면서 말했다.
최선기는 황공한 듯 몸을 굽히며, "소인의 바둑수가 어찌 영감 수를 당하오리까. 소인에게 길운이 터져 그런 것이겠지요." 하면서 소매 속에서 간지 마흔 장을 꺼내 놓는다. "소인의 청은 다름이 아니옵고 영감께서 평안도 41주 수령마다 편지 한 장씩, 영감께서 신임하는 사람이라고 써 주시오면 소인이 영감님 덕택으로 가난을 면하겠습니다." 홍국영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청하는 대로 그 간지에다가 "이 사람은 내가 특별히 신임하는 사람이다."라는 뜻의 신임장 마흔 장을 써주었다. 최선기는 그걸 가지고 평안도에 내려가 고을마다 찾아다니는데, 수령들은 그가 '가는 해도 멈추게 한다'라는 홍 참판이 신임하는 사람이라 하니 홀대하는 수가 없어 모두 돈 3~4백 냥씩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최선기는 불과 두어 달 안에 수만 냥의 돈을 가진 거부가 되었다.
--- 바둑 동호회를 사랑하는 多勿 옮겨 만듬
|
첫댓글 바둑을 잘하니, 이런 꾀많은 생각을 하나봅니다 ~
재미있는 바둑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