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 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 색 구절초 꽃 곁은 지날 때
구절초 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야
너도 이렇게 꽃 피어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자리에서 사는거야
너도 뿌리를 내려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밑을 지날 때
구름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거야
너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봐
내 평생 산 곁을 지나다녔네
산은 말이 없었네
산은,
지금까지 한마디 말이 없었네
******************************
길
나무 하다 건너다보면
버들피리 불며 보리밭을 매던 너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고
내가 가지 않으면 네가 오고
서로 생각하며 가다오다 만나면
문득 얼굴 들어 함께 웃던
꽃 피고 지며 눈 나리던 강길
우리 다시 오고 가지 못할 길같이
풀들이 우북하게 자라 길을 덮었어도
구월은 어김없고
강물은 반짝이며 흐르는구나.
보리풀 하다 보면 빨래하던 너
물 불은 강을 건너서
고운 맨발로도 오던 네가
신을 신고도 못 오는구나.
빤히 건너다보이는 너의 집 마당
붉은 고추를 널고 담던 너
마음이 가면
달 없는 밤 눈을 감고도 갔던 내가
환한 대낮 눈을 뜨고도 막히는구나.
자고 일어나보니
갈길이 막혀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다가
돌아섰던 너와 나
내가 가지 않으면 네가 와야 하고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야만 할
수많은 가슴 아픈 세월이 흘렀어도
강물은 저 위로 시퍼렇고
딴길로 갈 수 없는 우리 사랑은
철책선 이 건너 저 건너
산그늘 강길에 내려
포탄에 찢기던 들국들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너와 내가 오가던 발자국 따라
하얗게 피며
아무도 막지 못하는
마음이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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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
당신이 어두우시면
저도 어두워요
당신이 밝으시면
저도 밝아요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있든
내게 당신은 닿아 있으니까요
힘내시어요
나는 힘 없지만
내 사랑은 힘 있으리라 믿어요
내 귀한 당신께
햇살 가득하시길
당신 발걸음 힘차고 날래시길 빌어 드려요
그러면서
그러시면서
언제나 당신 따르는 별 하나 있는 줄
생각해 내시어
가끔 가끔
하늘 쳐다보시어요
거기 나는 까만 하늘에
그냥 깜박거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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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생의 솔숲에서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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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산의 모습을 모며
창밖 오동나뭇잎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
이 가을에 외롭지 않고
쓸쓸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가을밤,텅빈 넓은 하늘에 뜬 달을 올려다보며
인생을 되돌아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바람이 불고 감잎이 마당에 뒹구는 소리에
잠자리를 뒤척이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렇게 뒤척이며 지샌 아침,
산은 어제보다 더욱 붉고 곱다.
가을은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면서
사람들과 함께 만산을 붉게 불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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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웃을날 있겠지요
작년에 피었던 꽃
올해도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 피어 새롭습니다
작년에 꽃 피었을 때 서럽더니
올해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이 피어나니
다시 또 서럽고 눈물 납니다
이렇게 거기 그 자리 피어나는 꽃
눈물로 서서
바라보는 것은
꽃 피는 그 자리 거기
당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없이 꽃 핀들
지금 이 꽃은 꽃이 아니라
서러움과 눈물입니다
작년에 피던 꽃
올해도 거기 그 자리 그렇게
꽃 피었으니
내년에도 꽃 피어나겠지요
내년에도 꽃 피면
내후년, 내내후년에도
꽃 피어 만발할 테니
거기 그 자리 꽃 피면
언젠가 당신 거기 서서
꽃처럼 웃을 날 보겠지요
꽃같이 웃을 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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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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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파란 날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한적한 풀밭에 길게 누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눈뜨면
눈부시어요 당신 모습
저 하늘처럼 눈부시어
살며시 눈을 감고
햇살을 얼굴 가득 받을 때
꼭 당신의 얼굴이 내게로
환하게 포개져 와닿는 것 같아요
하늘이 파란 날
한적한 풀밭에 누워
눈떴다 감았다 보고 싶은 당신
당신 생각으로 두 눈을 꼭 감습니다
<시집 : 그 여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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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의 사랑
사랑이 그리도 깊더냐
어디 닿지 못하고
기화는 그리워 헤매도네
물이 그리도 깊더냐
물끝에도 닿지 못하고
기화는 오늘도 사랑 따라 흐르네
하얀 억새들은
너의 몸짓처럼 강언덕에 서럽고
죽어도 닿지 못하는 사랑처럼
시린 강물에 어리며 눈물을 닦네
어디에서 오는가 떨어지는
첫 눈송이들은
강물에 눈뜨고 겁없이 사라지는데
흐르는 강물이여
노래 한곡도 없이 지는 사랑이여
누구 하나 목놓아 부르지 못하고
강가에 나앉아
기화는 흐득이네
아무리 멀리 흔들려도
뿌리는 땅에 있어
아, 사랑이여
하얀 이 손짓으로 누구를 부르랴
복사꽃잎같이 날리어오는
눈송이들이여
나는 가네
<시집 : 그 여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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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서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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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모를까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들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에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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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 가슴에 묻혔던 내 모습은
그대 보고 싶은 눈물로 살아나고
그대 모습 보입니다
내 가슴에 메말랐던
더운 피는 그대 생각으로
이제 다시 붉게 흐르고
내 가슴에
길 막혔던 강물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아,
내 눈에 메말랐던
내 눈물이 흘러
내 죽은 살에 씻기며
그대
푸른 모습,
언 땅을 뚫고 솟아나는 모습 보입니다.
<시집 ; 그대, 거침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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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그냥 지나요
올 봄에도
당신 마음 여기 와 있어요
여기 이렇게 내 다니는 길가에 꽃들 피어나니
내 마음도 지금쯤
당신 발길 닿고 눈길 가는 데 꽃 피어날 거예요
생각해보면 마음이 서로 곁에 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린 서로
꽃 보면 쓸쓸하고
달 보면 외롭고
저 산 저 새 외롭고
밤새워 뒤척여져요
마음이 가게 되면 몸이 가게 되고
마음이 안 가더래도
몸이 가게 되면 마음도 따라가는데
마음만 서로에게 가서
꽃 피어나 그대인 듯 꽃 본다지만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
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
그 꽃산 철조망을 두른 채
꽃 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이 봄이 그냥 지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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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
저 산 너머에 그대 있다면
저 산을 넘어 가보가라도 해볼 턴디
저 산 산그늘 속에
느닷없는 산벚꽃은
웬 꽃이다요
저 물 끝에 그대 있다면
저 물을 따라가보겄는디
저 물은 꽃 보다가 소리 놓치고
저 물소리 저 산허리를 쳐
꽃잎만 하얗게 날리어
흐르는 저기 저 물에 싣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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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앞산에 꽃이 지누나 봄이 가누나
해마다 저 산에 꽃 피고 지는 일
저 산 일인 줄만 알았더니
그대 보내고 돌아서며
내 일인 줄도 인자는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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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 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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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는 이 하루
하루종일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이 하루
내 눈과 내 귀는
오직 당신이 오실 그 길로 열어졌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이 오실 그 길에
새로 핀 단풍잎 하나만 살랑여도
내 가슴 뛰고
단풍나무 잎새로 당신 모습이
찾아졌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그 긴 기다림의 고요는
운동장을 지나는
물새 발작 소리까지 다 들렸습니다
기다려도 그대 오지 않는
이 하루의 고요가 점점
적막으로 변하여
해 저문 내 길이 지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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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나는 물기만 조금 있으면 된답니다
아니, 물기가 없어도 조금은 견딜 수 있지요
때때로 내 몸에 이슬이 맺히고
아침 안개라도 내 몸을 지나가면 됩니다
기다리면 하늘에서
아, 하늘에서
비가 오기도 한답니다
강가에 바람이 불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별이 지며
나는 자란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찬 바람이 불면
당신이 먼 데서 날 보러 오고 있다는
그 기다림으로
나는 높은 언덕에 서서 하얗게 피어납니다
당신은 내게
나는 당신에게
단 한 번 피는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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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는구나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 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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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에 오는 눈
1996년의 겨울
직행버스는 그냥 지나가고
군내버스만 쉬는
칠보 정류장에 눈이 내린다
눈은 내리며 땅에 떨어져 녹고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 위에 잔돌들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검버섯 핀 손등들처럼 차디차게 얼음을 뒤집어쓴다
그 위에도 눈은 내린다
주름진 얼굴 같은 양철지붕 아래
손 대면 양철 녹처럼 부스스 떨어질 것만 같은 얼굴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눈송이들을 건너다보며
오지 않는 차를 기다린다
차를 기다려도 차는 저 산모퉁이를 돌아오지 않고
이따금 눈보라만 하얗게 몰아쳐온다
때묻은 수건으로 머리와 귀를 싸매고
보퉁이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
시꺼먼 실장갑 낀 손으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큰물에 떼밀리고 떼밀려 떠내려온 해묵은 지푸라기들처럼
기약없이 차를 기다리다 지쳐
주름진 얼굴들이 하얗게 부서지는가
손과 얼굴이 조금씩조금씩 눈송이가 되어
풀풀풀 흩날릴 것만 같은데
기다리는 차는 오지 않고 눈만, 칠보에 눈만 온다
"어이,추워,날씨가 사람잡것네 사람잡아,차가 안 올
랑개비여"
차부 안으로 들어서며 온몸으로 눈을 털며 둘러보지만
연탄 난로 하나 없는 낮은 처마 밑
발 시린 땅바닥까지
눈송이들이 날아와 시린 땅에 내려앉기가 바쁘게 사라진다
눈이 내린다
칠보에 저렇게 오는 눈을 어쩌랴
이제 이 차부에서는 그 무엇을 기다릴 것도
더 떠나보낼 것도 더는 없고 어느덧 어둠만 스며든다
어둠만 흔적없이 찾아와 뽀얀 전등불들을 하나둘 밝힌다
그 불빛 안으로 눈송이들이 우우 쫓겨 몰려왔다가
우우 하얗게 쫓겨난다
차창에 불빛도 없이 직행버스가 한대 체인 소리를 내며
어두워져오는 눈길을 달려간다
차는 끝내 오지 않을 모양이다
눈송이들은 어 눈 위에 떨어지고
눈송이들이 차디찬 손등에도 떨어져 눈물이 되어 다시
언다
할머니 한분이 마지막으로 보퉁이를 끌어안고
어둡고 낮은 하늘 끝으로 눈이 되어 사라지고
하늘과 땅이 맞닿아 이 세상은 눈뿐인데
어쩌랴 저렇게 칠보에 오는 눈을
칠보가 어쩌랴
<시집 : 그 여자네 집>
******************************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이 싫다네
시냇가에 파란 새 폴이 돋아나고
풀잎 끝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물은
풀잎들 사이를 지나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오. 내 사랑은 어디에서 어디를 지나
내게로 와 이리 슬프게 내 몸에 닿는가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은 싫다네
평화동 네거리 서학동 방면으로 가는 신호등 옆
휴대폰 중계탑 우에 까치같이 살다가
아침이면 코롱아파트 곁을 지나
푸른 산 푸른 강으로 나가 수많은 나무와 꽃들을 만나지만
때로 나는 지루한 서정은 싫으이 그러나
사랑은, 내 사랑은 어디에서 어디로 오는가
새로 돋은 풀잎을 스치고 흐르는 물처럼
내 곁을 스쳐지나간 저 봄꽃 꽃이파리들같이
그대는 그냥, 내 곁을 간단히 지나쳤을 텐데
내 마은 깊은 곳에서 병처럼 꽃들은 피어나네 피어난
꽃들은 돌림병처럼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뿌옇게 오염된 저 아파트 숲에도
피어난다
아, 사람들은 아직도 꽃이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봄바람 속 이 화사한 봄꽃들이 싫으이
오, 사랑은 어디에서 어디로 오는가
파랗게 자란 풀잎들 사이로
아름답게 흘러가는 시냇물은 어디에 가서 죽는가
그대곁을 스치다가 병든 내 사랑은 어디에서 꽃피는가
희고 노란, 그리고 연분홍으로
꽃들은 오늘도 오염처럼 내 몸을 스치는데
오, 내 사랑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봄 나는
내 몸 어딘가에 열꽃처럼 숨어 있을 이 지루한 서정이 싫으이
<시집 ;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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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없는 내 생각
구름 한점 없는 가을날
지리산 피아골 가는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피아골 골짜 기에서
흘러오는 도랑물 건너 왼쪽에 아주 작은 대숲 마을
이 하나 산 중턱에 있습니다
혹 그 마을을 눈여겨 보신 적 이 있는지요
그 마을을 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 중 에,
정말 오만가지 생각들 중에 아, 저기 저 마을에다가
이 세상에서 나만 아는 한 여자를 감추어두고 살았으면 '거
을매나 좋을꼬' 하는 생각이 바람 없는 날 저녁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혹 댁도 그런 생
각을 해보셨는지요 어디까지나 이것은 '혹' 이지만 말입니다
나도 이따금 저 마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런 쓸쓸하고
도 달콤한, 그러나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나 혼자 할 때가
다 있답니다 아내가 이글을 보면 틀림없이 느긋한 얼굴로
"그래요 그러면 잘해보세요"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 마을에 지금 가을이 한창이고 지금은 산그늘이 간이
다 서늘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저 마을로 올라가는 이 세상
에서 내가 본 길 중에서 가장 신비한 꼬불꼬불한 외길에도
산그늘이 내리면서 희미하게 길이 묻히려 합니다 그 가늘
디가는 길 왼쪽에는 지금 산비탈을 따라 작은 논다랑지 벼
들이 노란 병아리처럼 층층이 마을을 따라 올라가며 물이
들었습니다 노란색 주에서 나는 저 벼 익어가는 노란 색을
제일 좋아합니다 초가을이면 저 노란 벼들을 보면 이루 헤
아릴 수 없는 오만가지 생각들 중에서 나는 한가지 생각도
건지지 못하고 벼가 다 넘어지도록 설레기만 한다 맙니다
만, 그나저나 옛날에 저 흰 실밥 같은 외길에서 새로 시집
온 새색시가 외간 남자와 딱 마주쳤을 때는 어떻게 서로
비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그 실
밥 같은 외길에도 숨쉴 곳은 있습니다 그 외길 중간쯤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는데요 그 감나무 밑에는 용케도 커다
란 바위덩이가 하나 있어 그 바위덩이 옆에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까지 발걸음을 잘 맞추었겠거니,
거기에 다가
사람들은 숨을 쉬었겠거니 하는 생각이
내 생각입니 다
경제도 어려운데 이런 생각이 그 얼마나 쓰잘데기없는
생각인지요
여기까지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는 지 우리 어
머님이 이불 꿰매다 검은 머리에 얹어둔 실밥 같은 외길이
가물가물 깜박깜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쓰잘데
기없는 내 생각도 여기에서 가물가물 사라지려 합니다 그
러나 발걸음이 요량대로 잘못 맞추어졌을 때는 어떻게 하
였을까 당최 생각이 안 나눙만요 또 다만입니다만 그러 때
딱 마주서서는 어떤 남정네는 해 넘어가는 지리산 그 어떤
산날망을 킁킁하며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어떤 새색시는
눈을 내리깔고는 그 가늘디가는 길바닥을 내려보며 안절
부절 몸 둘 데를 몰라 했는지 모르지요 아무튼 해는 져서
어두우니 그들을 그냥 거기다가 세워두고 나는 갈랑만요
내가 가는 길이야 얼마든지 비낄 수 있는 길이니까요 허지
만 가기 전에 그 감나무 아래 아주 좁은 공터에다가 크게
숨이나 한번 푹 쉬고 갈라요
지리산 피아골 가는 길 초꺼듬 왼쪽 도랑물 건너 산 중
턱에 있는 아주 작은 대숲 마을을 보셨는지요 보셨다면은
그 마을이 소생에게 이런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하게 한 마
을이구나 하며 그냥 흘긋 스치십시요
거길 누구랑 갔냐구요
이 세상에서 절대 그냥 비낄 수 없는 사람이랑 같이 갔
구만요
******************************
겨울, 채송화씨
아내는 나를 시골 집에다 내려놓고 차를 가지고 돌아갔다.
갑자기, 가야 할 길과
걸어야 할 내 두 발이
흙 위에 가지런히
남는다.
어머니 혼자 사시는 우리집 마당에 발길 닿지 않는 땅이
이렇게 많이 있다니? 가만가만 돌아다니며 마당 가득 발자국을
꼭꼭 찍어본다. 이 마당에서 벌거벗고 뛰어 놀던
내 형제들과 이웃 아이들의 벌거벗은 웃음 웃음소리 대신
어머니는 해마다 발 디딜 곳 없이 마당 가득 화려한
채송화꽃을 피워놓는다.
정말 환하다. 달빛은 환해서 세상의 모든 욕망을 죽이고
나무만을 따로따로 달빛 아래 세운다.
달빛은 모든 것들을 떼어놓고 너희들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그렇게 보여준다. 물만 흐를 줄 안다. 발밑에서 참지 못하고
깔깔대는 까만 채송화씨들이 세상을 걷느라 두꺼워진 내 발바닥
깊은 속살을 찌른다.
씨만이 세상의 정곡을 찌른다.
나는 이 세상 모든 길들을 거둔다.
세상의 소식이 닿지 않는 이 간단명료한 사랑을 나는 알고 있다.
거짓 없는 사랑은 현실이다.
이 세상 모든 살구멍이 열리고 뼈마디가 허물어져내리는 사랑을
나는 안다.
시를 써야지.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는 사람들이 꽃이 된다.
고된 노동으로 이룬 따뜻한 어머니의 잠 속으로 들어가 자고 싶다.
어머니의 깊은 잠만이 나를 깨울 꽃이다.
수백 수천 대의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에 깔려 잠을 자던 내가 창호지 문지방에서
꼬물거리는 겨울 벌레 소리에도
눈을 뜬다.
낡은 내 몸
어디에
새로
뚫릴
귀와
눈이 있었는가. 나는 깨끗하게 죽을 것이다.
내 죽었다가,
수백 번도 더 죽었다가 살아났던
내 청춘의 오래된 이 방에서
나는 오랜만에 달빛으로 죽는다.
저 황량한 거리,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 같은 모든 거짓 사랑과 예술 속에서 미련 없이 걸어나와
누구도 닿지 않는 먼 잠을 자리.
저 물소리 끝까지 따라가 잠자는 겨울 채송화씨,
그 끝에서 나는 자고 깨어
그리운 우리집 마당에 채송화꽃으로 오리.
오, 죽지 않고 사는 것은 거짓뿐이니. 너를 따라온 모든
낡은 길들을 거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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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해거름 들길에 섰습니다 / 김용택
사랑의 온기가 더욱 더 그리워지는
가을 해거름 들길에 섰습니다.
먼 들 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가고
산 그늘도 묻히면
길가에 풀꽃처럼 떠오르는
그대 얼굴이
어둠을 하얗게 가름니다.
내 안에 그대처럼
꽃들은 쉼없이 살아나고
내 밖의 그대처럼
풀벌레들은
세상의 산을 일으키며 웁니다.
한 계절의 모퉁이에
그대 다정하게 서 계시어
춥지 않아도 되니
이 가을은 얼마나 근사한지요.
지금 이대로 이 길을
한없이 걷고 싶고
그리고 마침내 그대 앞에
하얀 풀꽃
한 송이로 서고 싶어요.
<시집 ; 그대 ,거침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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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등 들고 임 오시면
긴 어둠을 뚫고
새벽닭 울음소리 들리면
김나는 새벽 강물로
꽃등 들고 가는
흰옷 입은 행렬을 보았네.
때로 흐를 길이 막히고
어쩔 때 부서져도
흘러온 길이 아득하고
흐를 길이 멀고 멀다면
흐르는 일이야 우리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범람하여 헛된 땅 메우고
우리 땅 되살리며
꽃등 들어 임의 얼굴 비춰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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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개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섬진강 2
저렇게도 불빛들이 살아나는구나.
생솔 연기 눈물 글썽이며
검은 치마폭 같은 산자락에
몇 가옥 집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은 살아나며
산은 눈뜨는구나.
어둘수록 눈 비벼 부릅뜬 눈빛만 남아
섬진강물 위에 불송이로 뜨는구나.
밤마다 산은 어둠을 베어 내리고
누이는 매운 눈 비벼 불빛 살려내며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은
강물에 가져다 버린다.
누이야 시린 물소리는 더욱 시리게
아침이 올 때까지
너의 허리에 두껍게 감기는구나.
이른 아침 어느새
너는 물동이로 얼음을 깨고
물을 퍼오는구나.
아무도 모르게
하나 남은 불송이를
물동이에 띄우고
하얀 서릿발을 밟으며
너는 강물을 길어오는구나.
참으로 그날이 와
우리 다 모여 굴뚝마다 연기 나고
첫날밤 불을 끌 때까지는,
스스로 허리띠를 풀 때까지는
너의 싸움은, 너의 정절은
임을 향해 굳구나.
섬진강 3
그대 정들었으리.
지는 해 바라보며
반짝이는 잔물결이 한없이 밀려와
그대 앞에 또 강 건너 물가에
깊이 깊이 잦아드니
그대, 그대 모르게
물 깊은 곳에 정들었으리.
풀꽃이 피고 어느새 또 지고
풀씨도 지고
그 위에 서리 하얗게 내린
풀잎에 마음 기대며
그대 언제나 여기까지 와 섰으니
그만큼 와서 해는 지고
물 앞에 목말라 물 그리며
서러웠고 기뻤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 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 깊이 그리움 심었으리.
기다리는 이 없어도 물가에서
돌아오는 저녁길
그대 이 길 돌멩이, 풀잎 하나에도
눈익어 정들었으리.
더 키워나가야 할
사랑 그리며
하나둘 불빛 살아나는 동네
멀리서 그윽이 바라보는
그대 야윈 등,
어느덧
아름다운 사랑 짊어졌으리.
섬진강 5
-삶
이 세상
우리 사는 일이
저물 일 하나 없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변으로 가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 한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 보낼 일이다.
버릴 것 다 버리고
버릴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어둑거리는 강물에
가물가물 살아나
밤 깊어질수록
그리움만 남아 빛나는
별들같이 눈떠 있고,
짜내도 짜내도
기름기 하나 없는
짧은 심지 하나
강 깊은 데 박고
날릴 불티 하나 없이
새벽같이 버티는
마을 등불 몇 등같이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새벽 강물에
눈곱을 닦으며,
우리 이렇게
그리운 눈동자로 살아
이 땅에 빚진
착한 목숨 하나로
우리 서 있을 일이다.
섬진강 12
-아버님의 마을
세상은 별것이 아니구나.
우리가 이 땅에 나서 이 땅에 사는 것은
누구누구 때문이 아니구나.
새벽잠에 깨어
논바닥 길바닥에 깔린
서리 낀 지푸라기들을 밟으며
아버님의 마을까지 가는 동안
마을마다
몇 등씩 불빛이 살아 있고
새벽닭이 우는구나.
우리가 여기 나서 여기 사는 것
무엇무엇 때문도 아니구나.
시절이 바뀔 때마다
큰소리 떵떵 치던
면장도 지서장도 중대장도 교장도 조합장도 평통위
원도
별것이 아니구나.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동경도 서울도 또 어디도
시도 철학도 길가에 개똥이구나.
아버님의 마을에 닿고
아버님은 새벽에 일어나
수수빗자루를 만들고
어머님은 헌 옷가지를 깁더라.
두런두런 오손도손 깁더라.
아버님의 흙빛 얼굴로,
아버님의 소나무 껍질 같은 손으로
빛나는 새벽을 다듬더라.
그이들의 눈빛, 손길로 아침이 오고
우리들은 살아갈 뿐,
우리가 이 땅에 나서 이 땅에 사는 것
누구누구 무엇무엇 때문이 아니구나.
비질 한번으로 쓸려나갈
온갖 가지가지 구호와
토착화되지 않을
이 땅의 민주주의도,
우리들의 어설픈 사랑도 증오도
한낱 검불이구나.
빗자루를 만들고 남은 검불이구나 하며
나는 헐은 토방에 서서
아버님 어머님 속으로 부를 뿐
말문이 열리지 않는구나.
목이 메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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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살던 집터에서
네가 살던 집터에 메밀꽃이 피고
달이 둥실 떴구나.
저렇게 달이 뜨고
이렇게 네가 보고 싶을 때
나는 너의 희미한 봉창을 두드리곤 했었다.
우리는 싱싱한 배추밭머리를 돌아
달빛이 저렇게 떨어지는 강물을 따라서 걷곤 했었지.
우리가 가는 데로 하얗게 비워지는 길을 걸어
달도 올려다보고 땅도 내려다보며
물소리를 따라
우리는 어디만큼 갔다가는 돌아오곤 했었지.
물기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이마를 마주대고
오불오불 꽃동네를 이룬 하얀 가을 풀꽃들
이슬을 머금어 촉촉하게 반짝여
가슴 서늘하게 개던 풀꽃들을 바라보는
달빛 비낀 네 옆얼굴은 왜 그다지도
애잔스러워 보였었는지.
앞산 뒷산이 훤하게 드러나고
우리 가슴속에 잔물결이
황홀하게 일어 돌아오는 길
우리는 동구 앞 정자나무 아래
우리 그림자를 숨기고
소쩍새 울음소리를 아득하게
때론 가까이
우리들 어디에다 새겨 듣곤 했었지.
그때 그 두근대던 너의 고동소리가
지금도 내 가슴에 선명하게 살아나는구나.
네가 네 집 마당
달빛을 소리없이 밟고 지나
네 방문 여닫는 소리가 가만히 들리고
불이 꺼지면
내 방 달빛은 문득 환해지고
나는 달빛 가득 든 내 방에 누워
먼데서 우는 소쩍새 소리와
잦아지는 물소리를 따라가며
왜 그리도 세상이 편안하고 아늑했는지 몰라.
눈을 감아도 선연하구나.
네가 꼭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은 철석같은 믿음이 되어
네가 곧 나타날 것 같아
나는 숨을 죽이며
온 세상을 향해 내 마음은 모두 열리고
나는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들리었었지.
그럴 때마다 너는 발소리를 죽여 와서
(나는 그때마다 네가 아무리 발소리를 죽여 와도
온갖 이 세상의 소리 속에서도
네 발소리를 가려 들었었지)
내 봉창을 가만히 두드리던
아득한 그 두드림 소리가
메밀꽃밭 속에서 금방이라도
들릴 것 같아
숨이 멈춰지는구나.
너는 가만히 문을 열고
떡이나 감홍시, 알밤이나 고구마를 들이밀곤 했지.
아, 그때 동백기름 바른 네 까만 머릿결 속에
가락 같은 가르맛길이 한없이 넓어지고
가르마 너머 두리둥실 떠오르던 달과
동정깃같이 하얗게 웃던 네 모습이
지금도 잡힐 듯 두 손이 가는구나.
생각하면 끝도 갓도 없겠다.
강 건너 나뭇짐을 받쳐놓고
고샅길을 바라보면
총총걸음하는 네 물동이 속 남실거리는 물에
저녁놀이 반짝일 때
나는 내 이마가 따가운 것 같아
이마를 문지르곤 했었다.
어쩌다 사람들이 있을 때
어쩌다 고샅길에서 마주칠 때
너는 얼른 뒤안으로 달아나거나
두 눈을 내리깔고 비켜서곤 했었지.
네 그 치렁치렁한 머리채와
빨간 댕기.
오늘밤도 저렇게 달이 뜨고
네가 살던 집터는 이렇게 빈터가 되어
메밀꽃이 네 무명적삼처럼 하얀한데
올려다보는 달은 이제 남 같고
물소리는 너처럼
저 물굽이로 돌아가는데,
살 사람이 없어
동네가 비겠다고
논밭들이 묵겠다고
부엉부엉 부엉새가
부엉부엉
저렇게도 울어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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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페
봄꽃들이 지는 날, 너의 글을 읽는다.
땅위에 떨어져 있던 흰 꽃잎들이 다시 나무로 후루루 날아가 붙는다
인생은 꿈만 같구나.
다시, 꽃나무가, 시한편이 고스란히 세상에 그려진다.
흰 꽃 속에서 새가 운다.
아이들이 꽃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꽃 이파리들이 아이들 사이를 날아다닌다.
아이들이 날아다니는 꽃잎을 쫓고, 의현이와 은미가 시를 쓴다.
벚꽃잎이 하나씩 날아갑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안가서 빙글빙글 돌려 떨어질 걸요
향기로운 꽃은 누굴 주고 싶어서 피었을까.
나도 꽃을 좋아한다. 아, 아, 나에게도 누가 꽃을 줄까
꽃나무 아래에서 하루,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인이라고 했다
* 시의 맨 끝줄은 김종삼의 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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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평화동 사거리
그때 당신은
평화동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당신의 치
맛자락에 산들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이 불자, 이마에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당신은 손가락으로 빗어 올렸지
요. 손가락을 따라 올라간 당신의 까만 머릿결을 곱게
따라 흘러내려간 햇살이 당신의 등뒤 치마 끝 마른 허공
에서 반짝 떨어졌습니다
나는 그때 머리를 빗고 내려가는 당신의 흰 손가락 끝
에서
문득 가을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코스모스꽃처럼 화사한 무뉘가 박힌 치마를
하늘거리며 또박또박 걸어 내 차 앞을 무심히 지나 시내
쪽으로 가고
나는 차를 타고 구이 쪽으로 갔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당신이 세상 속으로 그렇게 가고 내가 가는 세상
에는
가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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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강산
느티나무 잎 다 졌네
꽃보다 고운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느티나무 밑을 돌아오는
내 여인이 그렇고
햇빛 좋아 바람 없는 날
강가에서 늦가을 물을 보는
농부의 일 없는 등이 그렇다
꽃보다 고운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느티나무 잎 다 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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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
머리가 허연 할머니 한 분이 마을에서 걸어나와 옷을 입은
채 강물로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허연 머리끝까지 강물에 다
잠기고, 연분홍 산복숭아꽃 이파리 한 장이 물 위로 떠 오른
다 꽃잎이 일으킨 물결이 강기슭에 닿을 때, 강굽이를 돌아가
던 꽃 이파리가 마을을 잠깐 뒤돌아본다
햇살이 고운 봄날이다
<시집 ; 그래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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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
잎이 필 때 사랑했네
바람 불 때 사랑했네
물들 때 사랑했네
빈 가지, 언 손으로
사랑을 찾아
추운 허공을 헤맸네
내가 죽을 때까지
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
<시집 ; 그래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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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꽃 졌다
능소화 진다
한낮 불볕 속
깊이 살을 파는
생살의 뜨거움
피가 따라 흐른다
우지 마라
말을 죽이고
나를 죽이고
도도해져서
산처럼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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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끝
세상의 끝에서
시가 길을 잃었다
절망의 절정이 희망의 절정을 끌어올 때까지
절정은 불처럼 뜨겁다
울어라 봄바람아!
<창작과비평. / 2006.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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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 받아라
-박수근
내 등짝에서는 늘 지린내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업은 누이를 내리면 등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지요
누이를 업고
쭈그려 앉아 공기놀이나 땅따먹기를 하면
누이는 맨발로 땅을 차며
껑충거렸지요 일어나보면
땅에는 누이의 발가락 열개 자국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나는 누이 발바닥에 묻은 흙을 두 손으로 털어주고
찬 두 발을 꼭 쥐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동이 가득 남실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서서 나를 불렀습니다
용태가아, 애기 배 고프겄다
용태가아, 밥 안 묵을래
저 건너 강기슭에
산그늘이 막 닿고 있었습니다
강 건너 밭을 다 갈아엎은 아버지는 그때쯤
갱기 지고 큰 소를 앞세우고 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이 소 받아라
아버지는 땀에 젖은 소 고삐를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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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꽃산 가자
꽃 피고 새 우는 봄날
우리 민세 할매 따라
저 강 처음 건넜네
민세 뒤 따라 아장아장 걷다가 주저앉아
풀꽃 뜯어 할매 부르면
할매 돌아서서
꽃 받아 들었다가 민세 도로 주네
꽃 주고 받으며
밭에 들면
민세 어깨까지
보리밭 속에 묻히네
할매는 앞서 보리밭에
키 큰 풀 뽑아 들고
민세 장다리꽃 꺽어 들고
할매 뒤 따를 때
노랑나비 흰나비 꽃 따라가네
민세 넘어졌네
보리 넘어졌네
저기 저 남산 꽃산 넘어졌네
나비 날아 저 산 꽃 찾아가고
민세 할매
민세야 민세야 민세 찾네.
시 : 1988년 소월시문학상작품집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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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편지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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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편지
가을비 오고
지하철 5호선 보라색 기차 난방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뜻함이 편안한데 오히려
쓸쓸해집니다.
비
그치고
해 난다
환한 해 아래 편지를 읽다가
편지 들고 한참을 서서
거참, 나도 되게 쓸쓸하네.
<시집 ; 연애시집'중에서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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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인
이웃 마을에 살던 그 여자는
내가 어디 갔다가 오는 날을 어떻게 아는지
내가 그의 마을 앞을 지날 때를 어떻게 아는지
내가 그의 집 앞을 지날 때쯤이면 용케도 발걸음을 딱
맞추어가지고는
작고 예쁜 대소쿠리를 옆에 끼고 대문을 나서서
긴 간짓대로 된 감망을 끌고
딸그락딸그락 자갈돌들을 차며
미리 내 앞을 걸어갑니다
눈도 맘도 뒤에다가 두고
귀도, 검은 머릿결 밖으로 나온 귀도 뒤에다가 다 열어
놓고는
감을 따러 갑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저만큼 서 있는 길
샛노란 산국이 길을 따라 피어 있는 길
어쩌다가 시간을 잘못 맞추는 날이면
그 여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를 높이높이
올라가서는 감을 땁니다
월남치마에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그 여자는 내가 올
때까지
소쿠리 가득 감이 넘쳐도 쓸데없이 감을 마구 땁니다
나를 좋아한 그 여자
어쩔 때 노란 산국 꽃포기 아래에다 편지를 감홍
시로 눌러놓은 그 여자
늦가을 시린 달빛을 밟으며 마을을 벗어난 하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느티나무 등뒤에다 등을 기대고 달을 보며 나를 기다리던
내가 그냥 좋아했던 이웃 마을 그 여자
들패랭이 같고
느티나무 아래 일찍 핀 구절초꽃 같던 그 여자
가을 해가 이렇게 뉘엿뉘엿 지는 날
이 길을 걸으면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살아나와
저만큼 앞서가다가 뒤돌아다보며
단풍 물든 느티나무 잎사귀같이 살짝 낯을 붉히며 웃는
웃을 때는 쪽니가 이쁘던 그 여자
우리나라 가을 하늘같이 오래 된 그 여자
제12회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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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길가
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그 여자네 집 / 창작과 비평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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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꽃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그 여자네 집 / 창작과비평사, 1998
~~~~~~~~~~~~~~~~~~~~
가을
산그늘 내린 메밀밭에 희고 서늘한 메밀꽃이라든가
그 윗밭에 키가 큰 수수 모가지라든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깊은 산 속 논두렁에 새하얀 억
새꽃이라든가
논두렁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노랗게 고개 숙인 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농부와 그의 논이라든가
우북하게 풀 우거진 낯선 길섶에 붉은 물봉숭아꽃 고마
리꽃 그 꽃 속에
피어 있는 서늘한 구절초꽃 몇송이라든가
가방 메고 타박타박 혼자 걸어서 집에 가는 빈 들길의
아이라든가
아무런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높고 푸른 하늘 한쪽에
아이도 농부도 암소도 없이 저녁 연기 오르는 산 아래
마을까지 가서
하얗게 저녁 연기 따라 하늘로 사라지는
저물 대로 다 저문 길이라든가
한참을 숨가쁘게 지저귀다가 금세 그치는 한수형님네
집 뒤안 감나무가 있는 대밭에 참새들이라든가
마을 뒷산 저쪽 끄트머리쯤에 깨끗하게 벌초된
나는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무덤들이라든가
다 헤아릴 수 없이 그리웁고
다 헤아릴 수 없이 정다운
우리나라의 가을입니다
제12회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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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작은 바람결에도
멀리 흔들리는
아주 작은 풀잎같이
얇은 산그늘에 붙잡혀도
가지 못하는 풀꽃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네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이 지어 준
작은 강마을 작은 흙집에서 살며
그 집 그 방에 달빛이 새어 들면
달빛으로 시를 쓰고
해와 달이 별과 사람들이 찾아와
밥 먹고 놀고 잠자고 가는 집
아침에 새들이 불러 잠 깨우면
아침 이슬을 털며 들길을 가고
이슬이 옷깃을 적시면 무거워 쉬고
눈 맞으면
어깨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사람
아,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이 세상을 다 갖고
이 세상에 꽃 다 져도
늘 피는 강길 산길 들길을 가진 사람
긴 고독과 오랜 적막과 고요를 가진 산이 되어
어린 산들을 데리고 걷는 사람이 있다네
작은 바람결에도
멀리 흔들리는
아주 작은 들꽃같이
산그늘 끌어다 덮고
꽃같이 행복하게 그는 산다네
그 사람 그런다네
제10회 소월시문학상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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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당신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제12회 소월문학상 수상작품집
~~~~~~~~~~~~~~~~~~~
꽃 한송이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그 끝에 눈이 부시게 서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꽃과 사랑을 기다리는
길고 지루한 날들
네가 내려준
은빛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너의 향기로운 환한 집에 내가 아무도 몰래 숨었으니
네 손에 쥐어진 꽃을 던지고
아, 열렬하게 돌아서서 너는 내게 안기었네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송이
~~~~~~~~~~~~~~~~~~~~~~~
사랑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 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 겠지요.
그래도 마음 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맑은 날 /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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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씨
달이 높다
추수 끝난 우리나라
들판 길을 홀로 걷는다
보리씨 한 알 얹힐 흙과
보리씨 한 알 덮을 흙을
그리워하며 나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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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그 여자네 집 /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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