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사랑의 아르바이트 *하나*
드뎌!!!!!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울방학.^*^
고딩 2학년이 겪기에는 너무도
많은 경험을 한 우리들은
겨울방학이 오기를 기다린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때문이다..
그때는 아르바이트란 말이 생소했죠..
남학생들은 한다는것이
어디 디스코장에 웨이타 같은것
아님 신문배달 뭐 이런것이 대부분이였고
지금은 편이점이다 주유소다
페스트푸드점 같은것이 많이있었지만
그때는 그런것이 아직은 생소한 시대였지요..
우리들은 전자에 밝혔던바와 같이
선생님이 내주신 견학금을 마련키위해
뭔가 할일이 필요했고
다행히 아버지 친구분이 강릉변두리에서
화장지도매업을 했습니다..
정말 아무사고없이 열심히 일해서
효도하겠다는 대견한(?)우리들의 생각을
믿으셨는지 친구분한테 소개를 시켜주었고
우린 길거리로 나가 화장지를 파는 아주 기막힌
알바가 시작되면서 웃지못할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죠...
화장지가 그렇게 많이 있지 않던 ...그때 시골에서는
문화혜택을 받지못하다보니
공책이나 아님 농약사나 아님 약국에서 주는
일일달력 또는 시멘트 종이가 고작인
화장실에 문화 ㅎㅎㅎㅎㅎㅎ
우린 먼저 준비해야 할것은 폐차장에가서
카세트를 세대 준비를 하였고
또 전파사에서 소형마이크와 확성기를 준비하였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것은 리어카와 베니다 하판 한장
모두 세대의 리어카가 준비되었고
우린 여섯명이서 둘씩 한조가 되었죠..
원래는 다섯명이 해야하나
혼자서 하는넘이 도저히 못하다고 하기에
한명을 공수해 왔음 ㅎㅎ
이렇게 준비되었고 화장지는 상표는 고급화장지..
나이스 라는 상표이고 또 뽀삐가 한창 광고를 할때
유사상품인 뽀비 라는 짝퉁과 그림도 아주 흡사함
그리고 모나리자 고급화장지 였지만
우린 짝퉁 모나라자 라는 상표를 가진 아주 흡사한
그림과 재질을 갖춘 고급화장지..
나이스라는 화장지는 두루마리로
60m짜리 화장지로 여섯개가 한 다발에 천원이였고
짝퉁 뽀비는(뽀삐)25m열개 한다발이였고
모나리자(모나라자)짝퉁은 잘모름 그러나 모나리자와
같은 미터일것임 ㅎㅎ
나이스라는 화장지는 한다발에 천원하는것 팔면
200원이 남았고
짝퉁 뽀비는 1500원에 팔리는것이 400원이 남았고
모나라자 짱퉁은 2500백원에 팔리는것이 800원
남는 장사가 시작되었죠...
리어카 놓고 그 위에 베니다 화판을 깔고
마이크를 설치하고 화장지를 쌓고 또 베니다 화판 밑에
공간에는 번개탄 오십개 (열개짜리한다발)800원에 팔리면
300원이 남는 그런 장사였죠..
물론 재고는 없습니다..
그날 판 것에 대한 것만 먹고 나머지는 다시 반납이였죠..
이렇게 두명씩 짝이되어지고
수첩에는 시골 5일 장을 메모하고
큰 트럭에는 먼저 화장지는 쌓고 중간에는 우리 여섯명이서
탈수있는공간을 남겨두고
베니다화판을 덮은다음 우린 그 밑에서 쪼그리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장터로 나갔죠..
겹치는 장날이 많아 오늘은 진부장 봉평장 이렇게 흩어져
모두들 그렇게 한조씩 각각 시골장터에 마련해준 자리에서
리어카를 세워놓고 장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인들 못하리까..에서 이것만은 조금은 틀립디다..
장터에 물건떨구듯 떨구어놓고 가버리는 사랑
새벽에 도착한 저와 친구...제일 먼저 내려주고 그렇게
휑~~하니 가버리는 사장이 조금은 섭섭했지만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 냉정한것 아닙니까..
거창한 말은 몬쓰고 적자생존 ..자리 싸움이
무엇보다 강한 시골 장터 그것도 장날이면
어김없이 찿아오는 연래 행사처럼 좋은 곳에서 물건을
팔려는 사람과 그 자리를 먼저 차지 할려는 장사꾼
또 상가앞에서 못하게 하는 상가 주인들
이렇게 서로 새벽부터 시끄러운 시골 장터에
시베리아 원단 바람이 불어오는 그 추운 시골장터에
그렇게 덩그러니 둘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리 싸움에서 이리밀리고 저리밀리고 하다보니
사람도 없는 다니지도 않는 곳까정 밀려난 우리들..
서럽고 배고프고 거스름돈 오천원으로
우선 교대로 아침부터 먹고
용기가 나질않아 시장 구석진곳에서 연신 담배만
피워물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한심한 노릇....
가출을 밥먹듯 했고 또 남들이 평생 한번도 않가도
되는 경찰서 까정 배짱(?)좋게 다녀온 우리들인데..
여명이 밝아오고 조금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시간
겨울이라 그런지 장사가 않되고 한개도 팔지못한
우리들은 불안한마음에 몸을 떨고
장사가 않된다는 실망스러움에 몸을 떨고
누가 먼저 용기내어 화장지 사라구 소리처
주길 둘이서 간절히 기대하였지만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서로 둘이서 눈치만 보고있고
훈훈한 바람이 불어도 추운 골목길에
둘에 가슴속에는 시베리아 원단 바람이
세차게 몰고 또 몰고 가는것입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겨우 천원짜리 한다발 팔고
우린 천원팔았으니 이백원이 남는다는 계산을
열두번도 더하고 오후들면서 가지고온 거스름 돈으로
밥사먹고 담배한갑씩 사고 슈퍼들어가 군것질 할거
몇개 사고 하다보니 되려 적자가 되었죠..
오후들면서 추위가 조금 사라지고 따스함이 밀려오는
시간쯤 사람들은 장터에 북적대기 시작했고
우리는 꿔다논 보리자루처럼..그렇게 시간을 보내고있었습니다..
혹 가다가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사장한티 조금은 배웠지만 막상 배운대로 물어오는사람은
한사람도 없고
(사장이 갈켜준 내용은 이거 얼마죠..? 하고
물어보면 네!!얼마입니다!!아주 좋은 질에
화장지이면 아직은 티브광고를 못내서 그렇지
티브나오는것보단 싸고 질기고 부드럽습니다..
이렇게 가르켜줬는데..)
너희들 학생이니?
이거 자표아니야..ㅠㅠ
이거 먼지 많이 나는 화장지네..
이러니 어떤답변으로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혹 불쌍해서 얼굴 잘생긴 어린넘들이
이런거 하니 귀여워서(?)한개 씩 사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생이라고 고생한다고
한개씩 사주는 할머니들..
마이크는 왜 달았는지 용도조차 그 기능또한
잊어버리고 ...밧데리만 그저 한없이 닳아버리고
화장지 밑에 공간속에 숨겨진 번개탄은
햇빛도 못본채 그날 하루 매상은
가지고온 거스름돈도 못하는 그런 날이였죠..
친구들도 별반 차이는 없고
우린 되려 돈을 벌려다가 거슬름돈 오천원씩
제하고 나니 빛만 생기게 되고
하루 하였으니 내일은 괜찮을 거야 하면서
쓸쓸히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일을 기약하며
쓰디쓴 담배한갯피 하면서 돌아섰습니다..
사장은 이미 예상했다는 표정을 짖고
무거운 발걸음을 띄며 나오는 우리들 뒷통수에다
내일은 진부장하고 어디장하고 가야하니까
새벽 네시까지는 와야된다..하면서 목이 터저라
소리를 질러 댑니다..
처음이니까 그렇지 내일이면 괜찮아 질거야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우린 자취방으로
피곤한 몸을 연탄불 꺼진 냉기 가득찬
아랫목에 두세겹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선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새벽 세시 알람이 울리고 우린 고양이 세수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 사십분정도 걸리는
거리를 차디찬 바람과 싸우면서 그렇게 또
두째날 장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온 베터랑 장사꾼들은 벌써
화장지를 산처럼 리어카에싫고 거리로 나서고
우린 또 장터를 가기위해..사장한티 삼천원의
거스름돈을 받고 1톤 트럭차량위에 먼저
화장지들을 가장자리로 돌려버리고 중간자리에
공간을 만들고 높이 싼다음
우리는 다섯명이서 쪼그리고 앉고
사장은 베니다 화판을 덮고 그위에 리어카를 싫고
차는 꿈틀거리면서 시골 장터를 향해서
괭음을 내며 달렸고
화장지 틈새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은 에베르트산 정상에서
부는 바람보다도 추웠습니다..ㅎㅎㅎ
그렇게 둘째날이 되면서 조금은 마음가짐을
달리하자는 서로의 무언의위로를 하고
차가 세워지면 우린 꼭 포로수용소에서
다른곳으로 이송을 가는 느낌으로 한조씩 그렇게
떨구어 젔죠...
둘째되던날..또다시 우리는 시골 장터에 자리를 잡기위해
아무리 험한 인상을 써도
아무리 주먹불끈쥐고 완강하게 자리를 지킬려고 했으나
벌써몇년째 그자리만 고수하시던 토종들 한티
밀려나고 또 변두리 시장들어오는 골목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골목길에 또 그렇게 시베리아 원단 바람을 맞으면서
장사가 시작되었죠...
겨울이라 새벽 여섯시정도에도 아직 컴컴한 시각인데도
장사꾼들은 좋은 목에 자리를 구할려고
그렇게 그렇게 새벽부터 거적데기 하나 깔아놓고
들어가고 아님 박스하나 던져놓고 그렇게 또 들어가고
정작 우리들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사람도 없는 골목길에 그렇게 외로운 청춘처럼
서로 마주보면서 담배한갯피 위로하면서 추위와
싸워야 햇죠..
아무래도 않되겟다는 생각이 들고
전 또 어디서 힌트를 얻었는지 일단 시장보다는
찿아가는 서비스를 하게되였죠..
마이크에 용도를 알게되었고
다리품을 팔아야 돈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야 조금은 알것같았죠...
또한 배우지 못하면 手足이 고생한다는것또한
처절하게 느끼게 해주었죠..
뜨네기 장사꾼들은 거의가 그렇듯 가정형편상
배우지못하고 또 가진것 없고 하다보니
작은자본으로 물건을 띠어다 파는 그런 것 뿐이못하는
그런 장똘뱅이가 거의다 불류를 이루었고
그래도 우린 고등교육을 이수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수중이니 그사람들 보단 못할게 없다고 하는 자신감을
갖고 수족을 쓰고 머리까정 쓰면 저 사람들 보단
그래도 조금은 나을것이라 강하게 자신을 믿고
아침을 먹은후...그렇게 변두리 마을로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오늘은 이만 쓰겠습니다....................
꾸~~~벅
국화사랑이 였습니다..
첫댓글국화사랑 화이팅! 넌 할 수 있어~ ㅋ ..... 강산에를 먼저 만났어야 하는데 ^^* 갈수록 태산일세 ㅋㅋㅋ ... 도대체 하루도 바람 잘날이 없었겠어유... 열아들 안 부러운 딸하나 키우고 말지... 요런(?) 아들 머하러 키워 ㅋ... 부모님이 얼마나 맘 고생을 하셨으까잉!~ ㅋ 반성하세요! ... 그래서.. 그래서 어찌 됐냐구요?
첫댓글 국화사랑 화이팅! 넌 할 수 있어~ ㅋ ..... 강산에를 먼저 만났어야 하는데 ^^* 갈수록 태산일세 ㅋㅋㅋ ... 도대체 하루도 바람 잘날이 없었겠어유... 열아들 안 부러운 딸하나 키우고 말지... 요런(?) 아들 머하러 키워 ㅋ... 부모님이 얼마나 맘 고생을 하셨으까잉!~ ㅋ 반성하세요! ... 그래서.. 그래서 어찌 됐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