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에게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해온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그럼요. 분명히 계시지요!”라고 힘주어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가톨릭 신자로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자부심을 가집니다. 제 일상(日常) 자체가 주님과 함께 하는 감사의 삶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새 날을 열어주신 주님께 감사로 시작하여 하루를 마치고 밤이 되면 무사히 하루를 마칠 수 있도록 동반해주신 주님의 은총에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또한 외출을 할 때나 산책을 할 때도 언제나 묵주를 들고 주님의 발자취를 묵상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으며,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즐거움이고 기쁨이며, 하루도 쉼 없이 미사에 참례하는 성당지기인 셈이지요.
차제에 잠시 제가 걸어온, 신앙인으로서의 길을 회상해보고자 합니다.
1989년 10월28일 아내 글라라와 함께 시흥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1992년 5월17일 다윗의 탑 Pr.에 입단하여 28년간 레지오에 몸 담아오면서 본당에서는 구역장, 총구역장, 선교분과장, 사목회 부회장직에 봉직하였고, 22년째 성체분배 봉사 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현재 예비신자 교리교사를 맡고 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에서는 꾸리아 단장(꼬미씨움 단장 포함)을 12년째 맡아 봉사하고 있습니다. 2007년 3월8일 거룩하신 어머니 꾸리아 단장을 하면서 신비로운 장미 꾸리아를 분단하였고, 거룩하신 어머니 꾸리아가 꼬미씨움으로 승격됨에 따라 초대 꼬미씨움 단장을 맡았으며, 2010년 2월21일 지금의 상지의 옥좌 꾸리아를 창단하였습니다.
2008년 6월29일 금천 꼬미씨움 초대 단장을 맡았는데, 그 과정이 참 신비롭습니다. 금천 꼬미씨움이 탄생하기 전에는 구로구와 금천구가 합쳐서 구로금천 꼬미씨움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서울 세나뚜스에서 구로구와 금천구를 분할하라는 지시에 따라 꼬미씨움 분할을 추진하였으나 금천지구 꼬미씨움을 유치하겠다는 본당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저희 시흥5동성당은 시흥동성당에서 분할되어 5개 성당 중 금천지구에서 제일 후발(後發) 주자였기 때문에 꼬미씨움을 유치할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본당에서 모두 꼬미씨움을 유치하지 못하겠다고 하니 정말 난감한 일이었지요.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습니다. 어느 본당은 꾸리아 단장이 꼬미씨움을 유치하려고 해도 주임신부님이 반대하였고, 여러 가지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꼬미씨움 분할 자체가 무산될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주임신부님(조재형 가브리엘)께 상황을 설명 드렸고 주임신부님의 승낙으로 저희 본당에서 금천지구 거룩하신 어머니 꼬미씨움을 창단하게 된 것이지요.
주님의 과분한 은총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2015년 6월 감기 몸살 증세로 개인병원을 방문하여 감기약을 복용하였으나 차도가 없어 일반적인 감기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호흡기내과에서 기관지 천식으로 진단 받고, 흉부 X-선 소견에서 이상이 있다고 하여 5개월에 걸쳐 폐 CT를 세 번이나 촬영하였는데, 주치의 선생님께서 전 암 단계(암 전 단계)라고 하면서 1년 후 다시 촬영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 말씀은 병소 부위가 암이라고 해도 잘 번지지 않는 곳이고, 수술을 하여 만약 암이 아니면 돈 들고 고생만 하게 되니 1년 후에 다시 CT촬영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강남성심병원에서 차트와 영상가록을 복사하여 3차 병원을 찾게 됩니다.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가 망설이다가 서울성모병원이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서울성모병원은 성모님께서 지켜주고 계시는 고향같이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거기엔 1층에 성모상이 모셔져 있고 성당이 있어 아무 때나 기도를 바칠 수 있는 곳, 묵주를 들고 활보하여도 누구하나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곳이란 생각에 서울성모병원에 예약을 하고, 가지고간 폐CT를 입력시켜 놓고 예약 일에 호흡기내과 선생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네, 폐암이 맞습니다. 바로 수술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병소 부위는 굳어지면 바로 번지는 곳입니다.” 같은 영상을 가지고 이렇게 다른 진단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사순시기인 3월29일 입원하여 4월1일 좌측 폐 1/2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고 4월4일 부활 대축일 전 토요일에 퇴원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강남성심 병원에서 세 번째 CT 촬영을 갈 때는 특별한 증세가 없어 먹던 약이 2개월분 이상 남아있었거든요. 안식구는 다 낳았는데 굳이 CT를 찍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는데도 고집스레 찾아가 CT를 찍은 사실 하며, 주치의가 전 암 단계라고 하면서 1년 후 다시 촬영해보자는 것을 뿌리치고 전원(轉院)을 결정한 일입니다.
또 하나, 2018년 3월28일(토) 제가 6개월 동안 봉사하던 교리반이 세례식을 하게 되었는데 주님께서는 그날 세례식까지 다 마치게 해주시고 다음 날 입원토록 일정까지 조절해주셨습니다. 사순시기인 3월29일 입원하여 폐암 절제술 받고 부활 대축일 전 토요일에 퇴원을 하였습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지요. 죽음에서 생명에로 이어지는 특별한 은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3월23일 완치 판정(5년경과)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섭리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드라마처럼 이루어질 수 있나요?
레지오 하면서 예비자 교리반 봉사 계속해와
저는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예비자 교리반 봉사를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레지오 단원이 되고서 교리반 봉사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2018년 6월3일 본당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세례식을 끝내고 신부님께서 새로운 교리반은 내년 4월에 시작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본당에서 제가 교리반 관리를 하고 있어 4명의 새로운 입교 희망자 명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 건의 드려 제가 교리를 맡는 조건으로 7월에 교리반을 신설하기로 신부님께 승낙을 받아 주보에 교리반 모집 공고를 하고 성당 입구에서 예비신자 접수를 받아 7월22이부터 새로운 교리반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19명이나 신청을 한 것입니다. 그중 한 분은 교리 도중에 이사를 가셨고, 2018년 12월16일 18명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폐 절제술을 받은 상태인데도 교리를 하는 동안 어떠한 장애도 느끼지 않고 그저 행복했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 때 주님의 과분한 은총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나이 금년 78세, 사회에선 고령으로 분류하고 열외 취급을 합니다만, 그러나 저는 아직 젊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주님 사업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제 등 뒤엔 주님이 후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집에 찾아오는 모든 분들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그런 마음으로 사랑하겠습니다. 오늘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려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포도나무에서 잘려진 가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구(聖句)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사진설명(위로부터)>
_ 가두선교(2019)
_ 공세리 예비자 성지순례(2018)
_ 당고개성지 예비자 성지순례(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