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금) 사순절 15일 – 경제주의를 넘어서
말씀제목
– 경제주의를 넘어서
말씀본문 – 마태복음 18장 12-13절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는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남겨 두고서, 길을 잃은 그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가 그 양을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새번역)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개역개정)
말씀묵상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경제적 필요를 무시하지 않으셨지만, 그것만으로 결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양 아흔아홉 마리를 산속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는 목자의 이야기는 경제적 효율을 따지는 세상에서 무척이나 어리석어 보입니다. 이 비유는 경제적 계산에 잡히지 않는 영역에 인간 삶을 위한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돌봄경제학’을 제안하는 낸시 폴브레의 『보이지 않는 가슴』(Invisible Heart)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대한 비판이지요.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데,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는, 오늘까지 세상이 유지되는 것은, 이기적인 동기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이들뿐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으로 가족을 돌보고 약한 이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시장이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노동들, 예를 들어 엄마가 집에서 가족을 먹이고, 아이들을 기르고, 아픈 어르신들을 돌보았기 때문에 사회가 이만큼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동안, 지금까지도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못했습니다. 그 통렬한 반성의 방향이 잘못되어 이제는 그 가치와 의미들을 돈으로 바꿔내려고 합니다. 이제는 아픈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은 저임금의 간병인에게 맡깁니다. 가사도 돌보미에게, 육아도 돈을 주며 어딘가에 맡겨야 합니다.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아서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 가지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은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고령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많은 노동은 로봇이나 AI기술이 대신할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부의 편중 또한 상상도 못하게 심해질 것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세워진 운동장이 될 것입니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것에서부터 인류가 살 길,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경제주의’(Economicism) 는 경제적 이익과 효율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세계관으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경제적 관점으로만 평가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경제주의를 넘어서는 가치관이 절실합니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 동기를 넘어 돌봄의 소중함을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조건 없이 보상없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들이 기쁨과 감사로 행하고 이들이 격려받고 존중받는 문화, 제대로 대우하는 제도가 절실합니다.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마음을 배우고 본받는 교회가 이 일에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 우리는 맘몬의 힘에 굴복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아파합니다. 성장의 그늘에 소외된 이웃들, 효용성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시당하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한 생명을 위해 목숨을 거시는 주님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