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중에서 가장 연약한 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것을 분쇄하는데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줄기의 수증기, 한 방울의 물로도 넉넉히 그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그것을 분쇄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한층 고귀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엄성은 사고 속에 있는 것이다..."
까마득한 고교시절 국어교과서에 나를 매료시키는 몇 줄의 문장이 등장했다.
그것이 위의 인용문이다. 그 문장 속에 잠재한 의미의 깊이와 문장의 수려함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 얼마 후 나는 어떻게 마련했는지 몇 백원을 들고 청계천 서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은 복구된 청계천이 당시엔 아스팔트로 덮여서 그 위에 중고서점이 즐비했던 것이다.
그때 거기서 구입한 을유문화사 판, 아득한 세월의 흔적이 배인 종이 냄새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이 책 파스칼의 팡세.
가격표를 보니 천원이 찍혀 있는데 좀 더 싸게 구입했을 것이다.
감동적인 구절은 빨간 밑줄을 긋고 외워가면서 고교시절에만 세 번 읽었던 이 책.
팡세란 '생각'이란 뜻이다. 파스칼이 죽은 후 1670년
그의 누이와 유족이 파스칼의 글을 모아 팡세라는 이름으로 펴낸 것이다.
생각하는 갈대, 내기의 필연성, 세 종류 인간, 인간은 만유와 허무의 중간자, 클레오파트라의 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신앙 등,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팡세의 내용들은 거의 그때 머리에 남은 것들이다.
나의 경우 지금까지의 독서 중 나는 이 책을 능가하는 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 책에 비견할만한 것으로는 어거스틴, 존 번연, 마틴 루터, 포사이즈, 키에르케고르 등 몇 권뿐이었다.
파스칼이 신앙적 지성으로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그래서 기독교 변증학적 성격을 띤
이 책을 나는 사랑한다.
밀턴의 실락원과 함께 이 책이 꽂혀있는 책꽂이 앞에 뽀얀 먼지가 끼었다.
손가락으로 훑어보니 까맣게 묻어나온다.
이것은 세월이다. 이것은 인간 세계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지금 아무리 고도의 문명이라도 이 세상엔 죄악이 관영하고
인간의 빌딩이 아무리 화려하고 현란해도 거기에다 손가락을 훑어보라.
당신의 손은 세척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현 세상을 자랑한다.
인간이 자랑하는 것은 인간의 과학과 기술과 문명이다. 인간의 능력이다.
그러나 그것은 먼지에 불과하다.
한 번의 지진, 한 번의 해일, 한번의 강력한 전쟁으로 그것들은 초토화될 것이다.
인간의 자랑은 허탈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먼지다.
그러나 한 방울의 물로도 죽일 수 있는 인간에게 탁월한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 생각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가?
당신의 근원을 생각하라. 당신의 의미를 생각하라. 당신의 목적지를 생각하라.
창조주를 생각하라. 그것이 팡세다.
2024. 5. 28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창조주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고,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