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여행4 -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역사!
우리 부부는 10월 18일 포르투갈 포르투 에서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스페인 비고
에서 1박한후 19일 아침에 기차를 타고 산티아고 에 도착해 라코루냐 를 다녀온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보고 밤기차로 부르고스 를 거쳐 빌바오 로 갑니다.
이처럼 우리 부부는 비록 기차 를 타고 왔다가 가지만 처음에는“까미노 데 산티아고”
그러니까 세계 문화유산 으로 지정된 그 유명한.....
“순례자의 길”을 전부는 아니라도 일부라도 한번은 걸어 보고 싶어 준비를 했습니다!
자료를 찾아 보니 "연금술사" 며 "흐르는 강물처럼" 등 몇권으로 전세계에서 1억부 이상
을 판매한 작가“파울로 코엘료”가 저 "순례자의 길" 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코엘료의 연금술사 책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 에 감명을 받아 KBS 아나운서 를
사표내고 스페인에 언어 유학을 가서는 "스페인 너는 자유다" 라는 책을 낸 손미나 씨...
해서 "순례자의 길" 에 대해 호기심 을 가졌는데 내 처지로는 800km 전부는 물론 안되는
것이지만 그중에 100km 라도 걸어 보았으면 하는 막연하지만 오랜 바램 이 있었습니다.
순례자의 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는 프랑스 생장 St. Jean 에서
피레네 산맥 을 넘어 론세스 바예스를 지나 팜플로나 와 푸엔테 라 레이나 를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에 이르는 800km 에 달하는 길로 걸어서 한달 이 걸리는데...
스페인 아라곤 지방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위 푸엔테 라 레이나 에서 합류한다고 합니다.
프랑스 에서 오는 순례객들을 맞이하는 도시 팜플로나 는 예전에 로마의 식민지 로
건설되었고....
나바라 왕국의 수도 였으며 7월 초순에 소를 쫃고 쫃기는 산페르민 축제 도시 입니다!
팜플로나 에서 서쪽으로 푸엔테 라 레이나와 로그뇨 를 거쳐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부르고스 까지가 220km 이고....
부르고스 에서 카리온과 사아군을 거쳐 레온 까지가 170km에 이르며......
레온 에서 라 리오하와 폰 페라다를 거쳐 비야프랑카 까지가 210km 그리고 200km 를
더 가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에 이르는 800km....
한달간의 여정은 출신지 기톨릭 사제의 소개장 을 가져가면 아주 유용 하다고 합니다.
중세 시대 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는 성 야고보의 무덤 발견으로 갑자기 유명해져
예루살렘 과 로마 다음으로 카톨릭의 세번째 성지 가 되었습니다!
이슬람 과 레콩키스타 성전 이 수행되던 12세기에는 종교적 열정 으로 연간 50만이
걷는 "산티아고 가는 길" 은 유명한 성지 순례길 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간에 몇백년 침체기도 있었지만... 오늘날 산티아고 성지 순례길 은 유명하여 2008년
에만 800km 중 100km 이상을 걸은 순례객만 해도 12만명 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 800km 긴 여정 을 한달간 도보 로만 걷는 사람들은 대단한 순례객 이고,
보통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대중교통편 을 이용하다가.....
도중에“100km 이상을 걷거나 200km 이상 자전거”를 타면 순례자로 인정 이 된다고
하니 산티아고 에 도착해서 콤포스텔라 라고 부르는 증명서 를 받으려면......
순례자 출발지 도시의 성당 에서 크레덴시앙 Credencial 이라 부르 순례자 전용 여권
을 받아 도중에 들러는 순례지 성당 에서 스탬프 를 받아야 합니다.
길은 야고보의 상징 인“조개 껍질 아래에 노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으니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도중에 알베르게 라고 부르는....
순례자 전용 숙소 가 있어 5유로 내외의 싼 가격에 숙박 할 수가 있습니다.
취사시설 이 있어 저녁은 스스로 해서 먹는데, 가톨릭에서 도네이션 형식으로 운영하는
파로키알 알베르게 는 저녁과 아침 까지도 제공해 준다고 합니다.
곳곳에 푸엔테 라고 부르는 식수 시설 이 있으니 출발할 때 보카디요 라고 부르는
샌드위치 만 준비하고는....
지팡이 를 짚으면 배낭의 무게를 줄일수 있는데, 그외에 침낭과 모자 를 준비합니다.
산길 을 지나 들판 길은 로마시대 돌길, 오래된 교회, 서 십자군전쟁의 흔적 이며 성당
기사단과 마녀 처형대 까지 역사가 서린 길 이라고 하는데, 까미노 데 산티아고 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제주올레길 은 규슈에 수출해 규슈 올레길로 로열티 를 받는다네요?
사도 야고보 는 예루살렘에서 스페인으로 건너와 복음 을 전했다는데... AD 40년경에
성모 마리아 가 각지에 흩어져 있던 12사도 들에게 나타나서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 을 알렸다는데 12 사도는 유대인들의 12부족 에게서 유래했다고 여겨집니다?
사도 야고보 는 스페인 사라고사의 필라르(기둥) 성당 에서 성모 마리아 를 보았다고
하는데 야고보 는 성모 마리아의 죽음을 지켜보기 위해 예루살렘 으로 급하게
돌아갔다가 예루살렘에서 AD 44년에 헤롯 아그립바 에 의해 참수 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의 제자들이 유해를 배 에 실었는 데, 이 배가 지중해 를 지나 대서양으로 나와 북쪽
으로 올라가서 스페인 서북부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해안 에
도착했으니 이런 연유로 야고보의 유해가 이곳 스페인 에 묻히게 되었다는 것이네요?
또는 다른 설에 의하면 813년에 반짝 거리는 별 이 야고보가 묻혀있는 무덤을 비추면서
위치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곧 해석하자면“별이 반짝이는 산티아고”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사람마다 걸어온 거리는 다를지라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의 오브라도이로 광장
Plaza del Obradoiro 에 도착해 대성당 카떼뜨랄 을 보면....
그 고행의 길을 걸어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뿌듯한 희열 을 느끼게 되는 것이니
야고보 의 손에 입을 맞추고는 광장에서 마음 을 추스린 후......
12시에 성당에서 행하는 미사에 참석 함으로써 긴 순례자의 길 을 마치는 것입니다!
야고보 는 예수님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 세베대의 아들 이며 사도 요한의 친형 이기도
한데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와 구별하기 위해 큰 야고보 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외에 예수의 친동생 인 야고보 도 부활후 예루살렘에서 중심 인물이 된후 순교 합니다.
"이 무렵, 헤롯 아그립바 왕 은 교회에 속한 몇 사람을 박해하려는 계획 을 가지고
그들을 사로 잡았습니다.
그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 를 칼로 죽였습니다." ( 사도행전 12:1-2 )
헤롯 아그립바 1세왕 의 할아버지는 헤롯대왕 으로 불리는데 왕이 될 예수가 탄생했으니
베들레헴 일대 신생아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때문에 특히나 기독교도들이 싫어하는데
그는 사해 서쪽에 에돔인 이지만 유대인들이 정복해 개종시켰으니 유대교인 은 맞습니다.
헤롯 은 로마로 도망쳐 안토니우스 지지 를 받아 원로원에 의해 유대왕 에 임명된후 3년
전투 끝에 BC 37년에 안티고누스를 물리치고 예루살렘 을 차지한후 유대인들의 환심 을
사기 위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 솔로몬성전을 재건 했으며 성벽을 쌓았고 로마인을 위해
예루살렘에 아우구스투스 신전 을 건설하고 카이사레아 항구를 건설 하며 영토를 늘립니다!
손자 헤롯 아그립바 는 로마에서 함께 자란 가이오가 로마황제가 되자 지원을 받아 유대왕
이 되었는데 유대인들 특히 제세장들의 환심 을 사기 위해 야고보를 죽였으며 베드로 까지
죽이고자 했으나 탈옥 하는 바람에 못했는데 로마 황제가 예루살렘에 신이 된 황제 동상을
세우고 참배를 명하자 로마 까지 달려가 유대인들의 일신교를 설명하며 저지했던 왕 입니다!
야고보 유해 가 배에 실려 팔레스타인에서 스페인 까지 저절로 왔다는걸 믿을수 있느냐?
장정만도 60만 이 넘었다는 240여만명 의 모세의 출애굽 이라는 엄청난 규모 대사건은
수나라 113만 대군 이 탁군(북경)을 출발 하는 데만 무려 한달 이 걸렸다고 하니.....
이집트 라암셋 을 출발할때 소나 양등 가축에 식량이며 세간살이를 우마차에 실었다고 보면?
이집트 라암셋에서 대열 후미가 출발 하는데는 3개월 은 걸렸을 거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하지만 출애굽기 성경 을 읽어보면..... 선두와 후미의
출발 간격 이 석달 은 커녕 한두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런 거대한 무리 가 움직였으니.... 가나안(팔레스타인) 지역에 평지풍파 를 일으킬
미증유의 대사건 도 성경의 기록 외에는 다른 나라 에는 단 한줄의 기록도 없으니???
당시 서기 를 두고 매일의 역사 를 기록했던 이집트 는 물론이고, 그 영향을
받았던 주변국으로는....
곰꼼히 역사를 기록했던 히타이트 와 바빌로니아, 팔레스타인과 그리스....
어느 나라의 기록 에도 단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대규모의 출애굽 은 없었
던 것 이라고 궂이 말할 수 없듯이......
일부 성서학자들 이 야고보가 스페인에서 복음 을 전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또 야고보가 예루살렘을 떠난 정황도 없다 고 주장 하는데......
그러니까 성경에는 야고보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라?
그리고 야고보의 유해 가 스페인에서 발견 되었다는 전승도 먼훗날 이슬람이 침입 한
9세기 위기 상황이 되어서야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심하게 말하자면 역사적 사실 로서의 신빙성 은 거의 없다고도 본다지만......
출애굽의 예 에서 보듯이 설사 당시대 어느나라에도 단 한줄의 기록도 없었다고
해서 우리가 오늘날 궂이 대규모의 출애굽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듯이
야고보의 스페인 행 을 사실이 아니라고 궂이 부인할 필요야 없지 않겠는지요?
종교란게 "사실이어서 믿는게 아니고 믿기 때문에 사실" 인 것을..... 그러니까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 전파 에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지는데,
특히 사도나 성인들의 유해가 기적을 일으키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믿음이 퍼집니다!
유해 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생겨났으니 828년에 이집트에 콥트파 기독교의 시조 로
죽은지 780년이나 된.....
마가의 묘 를 궂이 도굴 하여 베네치아로 옮겨 산마르코 성당 을 건립했던 것이지요?
성모 마리아 도 승천설 외에 예루살렘에 묻혔다는 설, 터키 에페소에 요한과 함께
피신해 살다가 죽었다는 설 외에도 막달라 마리아 와 함께...
프랑스 마르세유 에 와서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죽었다는 네가지 설이 있으니!!!
다시말해 스페인은 8세기에서 15세기 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왕국 들과
8세기에 걸친 기나긴 레콩키스타 라고 불린 국토 회복 전쟁 을 벌였는 데....
이 어려운 전쟁은 이교도 이슬람 과 싸운터라 종교 전쟁 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산티아고 ( 스페인에서 성 야고보 를 부르는 이름 ) 는....
이교도 이슬람군 을 격퇴 시키는 기독교도들의 수호 성인 이 되어야 했던 것은
가히 그 시대에서 요구되는 것이니 곧 필연적인 것 이라....
스페인 병사들이 적군을 향해 돌격할때 외치는 구호 가 "산티아고!" 라고 합니다?
이는 고려가 몽고의 침략 을 당해 임금과 최씨 정권이며 고려군은 강화도로 도망쳐
버리고 백성들은 스스로 마을을 지켜야 하는 오랜 세월 절체절명의 민족
수난기 를 거치며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처참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자연스레....
“단군 신화가 형성”되었던 사실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라고 했던가요?
몽고군의 오랜 침략이 없었다면 단군 신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중요한 것은 실제 사실 여부 보다도 그런 "전승이 의미하는 뜻" 을 살피고, 또 그런
정신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고통을 참아가며 멀고도 먼 순례자의 길을 걸은 사람들의 마음 에 "종교적
희열과 은혜" 가 넘치고 신앙심 이 깊어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설사 비 신자 라고 하더래도 순례자의 길 을 걸었다면...... 보람과 자신감 그리고
충만한 성취감 으로 인해 세상을 살아가는 힘 을 얻을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제 산티아고역 으로 가서 22시 30분 밤기차 로 부르고스 를 거쳐 빌바오 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