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하고 올라가게 하심
에스라 8장 21절 – 27절 2024년 8월 11일 주일 오전 말씀지
갈수록 짐승처럼 육신의 배만 위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빌3:19) 이때에 먹는 것을 초월하며 살게 하시려 양식을 주시는데 기명과 예물들을 가지고 에스라와 함께 성전을 아름답게 하시려 수종드는 자들까지 모집하여 예루살렘까지의 먼 길을 떠나기 전 금식하게 하신 역사입니다. 오늘날 내 육신이 강해져서 영은 무시하고 육으로 나가려고 할 때에, 그리고 중대한 일이 있을 때에 육신의 밥만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낮추는 금식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아브람 때에 지시할 땅인 가나안 (낮은 땅) 본토(육신 정욕), 친척(사람의 도움), 아비 집(부모 재산)을 떠나는 것입니다. 창12:1-
그런데 오늘날 바리새인들처럼 믿는다 하면서 사람 앞에 자랑하려 금식하는 자들이 있고 사두개인처럼 육신 평안하니 아예 금식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자들도 많고 헤롯당처럼 병이나 고치고 무슨 교인 수나 늘리는 이적이나 보려 억지로 금식하는 자들도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특히 자주하는 기도까지도 조심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셨을까요? 무조건 열심 기도가 아닙니다. 또한 시편은 다윗의 찬송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기도를 유심히 살펴 그러한 기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엡1:16-
양식은 부지런히 받고 앞선 자의 영적 생활은 반드시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11:1-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본받을 만한 자들이 있나요? 자라났다면 다행이나 없다면 목자 없는 양같이 가련한 자리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9:36-
21절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러 가기 위해 제사장 레위인 봉사자들 그 봉사자들을 돕는 자 일하는 자들 그리고 필요한 물질까지 다 주신 때입니다. 이제 아하와 강가에서 삼일 동안 금식을 하고 올라가게 하시는데 에스라가 금식하라 명하니 합니까? 하나님이 금식하게 하시는 것으로 알고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까? 삼일간의 금식은 육신의 양식을 끊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것으로 살 빼려 다이어트하는 세상 적인 금식과는 다릅니다. 창세기에는 금식이라는 단어가 없는데 노아 때에 용사 곧 네피림이 나오는데 육신적으로 용사같이 튼튼하고 못하는 일이 없는 유명한 자들은 전혀 금식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창6:4) 그들은 육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유명해질수록 더 기고만장하여 육적으로 사는 네피림이 되었는데 그 결국은 홍수로 인해 모두가 쓸어버림을 당했습니다. 창7:22-
왜 금식을 합니까? 내 영은 약해있고 잘못되어 있는데 육체는 강해져 마음이 고집부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식을 함으로 육체와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는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후 두 번째 두 돌판을 주실 때 모세로 40일을 금식하게 하신 후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신9:18-
레위기 16:29에는 모든 백성들은 속죄일을 당했을 때에 스스로 괴롭게 하고 하셨는데 이것이 금식입니다. 지난날 애굽에서 육신으로만 산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그 죄를 속죄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고 자기 육신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삿 20:26에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엎드러뜨립니다. 정욕을 이기지 못한 레위 지파로 인해서 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금식을 합니다. 시 35:13에 다윗을 사울 왕으로 연단하실 때에 다윗은 굵은 베옷 곧 죽은 자들이 입는 옷을 입고 금식을 하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오는 것은 사랑 실천을 한 것이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시 69:10에 내 영혼이 잘못가려 할 때에 곡하고 금식해야 합니다. 영혼을 앞세우고 사는 자들은 육신에 치우칠까봐 때때로 자기 육성을 죽이는 금식을 하며 죄짓지 않기 위해 경계를 합니다. 시 109:24에 육체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금식입니다. 육체에 치우치는 자들은 자기가 하나님인 양 자기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지 않습니다.
슥 7:5에 5, 7월에 금식의 절기를 정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이전에는 속죄일에나 1년 두 번씩 단체 금식을 하였습니다. 오랫 동안하다 보니 의미도 생각지 않고 외식하는 것이 습관되었습니다. 욜 1:14에 육적인 금식을 통해서라도 영이 살기를 바래야 합니다.
그런데 에스라와 함께 올라가는 자들은 성전이 무너진 것을 보았던 자들은 올바른 금식을 하지만 그 자손들은 형식적으로 부모만 따라 할 뿐입니다. 과거 사 58:3에 금식 일에 오락을 좇아 행했으므로 렘 14:10-12에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멸하십니다. 오늘도 영광길을 간다고 하면서 기도 특히 금식기도가 떼를 쓰듯 잘못 하는 자들의 그 육신을 치십니다. 글자로 성경을 읽는 자들은 지금도 무조건 금식을 앞세우며 금식 기도원을 세우고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를 받은 후에도 원죄가 역사해서 자꾸 죄를 짓게 되니 그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금식을 하는 자들이요 바리새인들은 이레에 두 번을 금식일로 정했으니 사람 앞에 나타내기 위해서 형식적인 금식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과 함께 있는 신부들은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슬퍼하지 않고 금식하지 않는데 그것은 일하기 위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이요 신랑을 빼앗길 날은 첫 삼년 반 환난 때입니다. 마9:15-
극심한 첫삼년반 환난이 가까온 이때에 영의 양식이 공급되지 않으면 이제까지 받아먹은 말씀으로 그 길을 가야 하는데 그때에 금식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금식은 하나님 앞에 겸비하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왜 함께 올라갈 자들에게 금식을 하라 합니까? 4개월을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에 하나님께 즐거이 드릴 예물을 가지고 가게 되는데 대적자들이 있고 매복한 도적 떼들에게 기명과 예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며 나가기 위해 섭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이라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겸비하지 않고 교만한 자입니다. 복음과 진리가 믿어져 자라난 자들은 예수님을 신랑 삼고 살아가니 힘있게 달려가기 위해서 육적으로 보여주려는 금식이나 기도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6:17-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무조건 가족과 주신 소유를 위해 금식하면 기복신앙 신비주의자들입니다.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할 일이 주어졌고 그 일을 하라고 주신 가정이요 자녀들이요 물질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금식한 것입니다. 직분 자들이 반드시 해야 할 기도입니다.
22절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들은 지금도 새벽을 깨우며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랍니다. 에스라의 이름의 뜻이기도 합니다. 이방 나라 왕들에게 하나님은 도우시는 분이라고 소개했던 에스라요 성전을 아름답게 하려 왕에게 구하는 것마다 얻은 것입니다. 스7:6-
예루살렘에 올라가다가 그 맡긴 것을 대적들에게 빼앗기면 너희 하나님은 믿을 바가 못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금식하며 겸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지혜를 구하는 것으로 영의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잠8:17) 그렇다면 채워주셔서 선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주셨다면 또한 잃지 않기 위해 경성 할 것입니다. 아사 왕 때에도 오뎃의 아들 아사랴를 통하여 나타내주셨습니다. 대하15:2-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하나님을 모르거나 잘못 알면 조금만 어려우면 배반하는 자가 됩니다. 거짓되고 악한 자들을 아직도 두신 이유는 복음과 진리를 배반하는 자들에게 진노의 손을 펴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는 막대기요 바벨론은 몽둥이였던 것입니다. 사10:19-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왕도 일개 사람이니 그 왕에게 자기들을 도울 보병과 마병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고 군대까지 붙여 우리를 지켜달라고 하지 않은 에스라입니다. 시146:3-
그 어떤 사람의 도움까지 끊어버리는 것이 올바른 금식인 것입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인 것입니다. 내 영을 살려주셨고 자라게 하셨으니 이제 영을 앞세워서 살아가면 열매를 하나라도 더 맺게 하시고 생명 역사가 있게 하시는 것을 굳게 믿은 것입니다. 오늘도 목사 장로 권사라고 하면서 사람을 의지하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십니다.
23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자기를 낮추고 새벽을 깨움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임하는 것입니다. 시46:5-
금식까지 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선하게 말씀하신대로 이루신 하나님이십니다. 금식을 앞세우는 자들은 내가 금식했더니 기도한대로 주시더라 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직분 감당을 위해서 양식 채움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해서 금식을 할 것입니다. 자칫 거머리의 두 딸처럼 무엇이나 더 얻기 위해 욕심으로 금식하는 자들이 거짓된 신비주의 자들인 것입니다. 잠30:15-
24절 그 때에 내가 제사장의 두목 중 십 이인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 형제 십인을 따로 세우고 왕에게 받은 하나님께 바칠 귀한 기명과 예물을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옮겨야 하는 임무를 제사장의 두목 12명에게 주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서 성전 기명을 돌려주게 하셨고 그들의 예물을 가지고 올라가기 위해서 따로 세운 믿음직스러운 자들입니다.
25절 저희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기명들을 달아서 주었으니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자들에게는 성전에 기명뿐 아니라 바사 나라에 왕과 방백들의 정성 어린 예물들을 가지고 가는 직분이 주어졌기에 하나님 앞에 가서 바치기 전까지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습니다. 행여 그 예물에 탐심이 있으면 아간같이 가족까지 다 멸함을 받습니다. 수7:21-
26절 내가 달아서 저희 손에 준 것은 가지고 가야 할 기명과 그 예물이 많았고 그 예물들을 가지고 가는 길은 멀고 수많은 도적 떼가 있음으로 그 예물들을 달아서 나눠 가지고 가야 하고 군대가 호위하지 않기에 금식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란 것입니다.
은이 육백 오십 달란트요 은 기명이 일백 달란트요 금이 일백 달란트며 1달란트는 34키로로 현재 금은의 값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그만큼 맡기신 영광의 직분이 중차대 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때 두로의 히람 왕이 많은 달란트를 보내었습니다. (왕상9:14)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에 금과 은이 많았는데 은은 돌같이 흔했습니다. 왕상10:27-
27절 또 금잔이 이십개라 중수는 일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 같이 보배로운 놋그릇이 두 개라 금은 기명들은 다 솔로몬이 번성할 때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기명들을 외식주의자들은 다 만들어 제사하듯 예배하고 성령의 사람들은 자기를 금과 은과 같이 보배로운 깨끗한 그릇으로 여겨 양식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함입니다. 딤후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