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십년은 되었을 겁니다.
서울에 가 본지.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건만 여전히 사람 많고 차 많고 빌딩들 많더군요.
다만 이십여 년 전에 잠시 살았던 삼성산 아래 달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변한 풍경이 시간의 흐름을 실감케 할 따름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마눌님이 교육출장을 이틀간 가야 된다며 동행을 제안하길래, 실은 꼬시길래 어리숙한 척 넘어가주면서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보랴, 더구나 숙식 무료라 웬일이냐 싶어 따라나선 서울행이었습니다.
십년 전, 비자문제로 프랑스 대사관에 간 후 왠지 서울 갈 일이라곤 없었던 거죠.
이른 아침, 길치에 가까운 마눌님과 서울역 찍고 방배동 효령대군 사당 옆 교육장까지 데려다준 다음, 사당역 4번 출구로 가니 버들치님께서 이미 와 계시더군요.
마침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 평일에도 시간을 낼 수 있었다며 흔쾌히 산행을 함께 해주셨던 건데, 그동안 공산 자락에서만 만나다 이렇게 관악산 자락에서 만나니 더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지하철 출구에서부터 서울둘레길 이정표가 잘 되어 있더군요. 우리는 둘레길을 따라 관악산을 우측으로 돌아가며 밀린 이야기도 나누는 등....
북녘이라 남측 공산자락에서는 이미 진, 복사꽃이며 수달래, 개나리, 벚꽃 등등이 이제 한창 만발해 있어 더 즐거운 산책, 산행이었습니다.
종종 빗방울 흩날리는 잔뜩 흐린 날씨, 걷기에는 더없이 좋더군요.
한 시간 정도 걸어 낙성대에 이르러 버들치님의 30대 조상님 강감찬 장군 사당을 참배하고 계속해서 둘레길을 따랐습니다.
곧 서울대 입구를 지나 삼성산 자락에 이르렀는데, 이 즈음에서 우리는 계속 자락길을 걷기보단 산악인 기질이 발동해 능선길도 걸어보자 싶어 칼날 능선을 타고 올랐습니다.
차츰 오르며 바위능선, 전망 트인 지점에서 뒤돌아보니 신림동쪽뿐 아니라 서울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더군요.
이십년 전에 산 아래, 신우초등학교 근처에서 몇 년 살았던 추억이 떠올라 주변을 살펴보니 학교는 그대로이지만 운동장 한편에 큰 체육관이 생겨났고 산 아래 양궁장 옆 공터에 인조 잔디 축구장이 들어서 있더군요.
그리고 서편 산언덕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등. 당시 이곳에 살게 된 건 아마도 90년대 중반 식목일 행사가 당시엔 삼성산에서 했기에 저의 역삼동 및 삼성동 직장생활 시 아마 이곳이 산과 가까운 숙소로 안성맞춤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당시 학교 운동장 한 켠에 이층 높이의 폭포가 있었는데, 한겨울 홀로 빙벽등반 삼아 얼음을 찍어본 추억도 떠오르더군요.
평일이라 사람 한 명 다니지 않는 능선을 따라 호젓하게 오르며 간혹 바위 능선도 지나고 잘 놓여진 계단도 오르는 등...
종종 바위 능선에 세워진 국기 게양대에 힘차게 휘날리는 태극기도 지켜보는 등...
관악산 주변에 유독 국기 게양대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는 버들치님 말에 정치인들이 산에라도 좀 자주 다니면, 그런 좁쌀만한 이해타산에 덜 아웅다웅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국익을 위한 순항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으니....
이제 복사꽃 핀 능선을 올라 삼막사 쪽으로 둘러보고 제법 빗줄기 굵어진 가운데, 삼성산 정상을 지나 서울대 쪽으로 하산했으며 여전히 현역 클라이머로 맹활약 중인 버들치님 고향 친구 분과 마눌님 등 넷이서 오랜만에 만난 클라이머들의 정을 나누며 즐거운 저녁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 버들치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함을 표합니다.
이튿날엔 마눌님 교육 받으러 가고 시내로 향했는데, 남대문 시장을 경유해 광화문 쪽으로 걸었습니다.
한때 매일 드나들다시피 하던 그 길들, 먹구름 낀 잔뜩 흐린 하늘 아래였지만 역시나 활기찬 면면들을 접하면서 그래, 이게 바로 우리들 저력이 아니냐 싶더군요.
꽤 변한 교보문고를 둘러보고 선배 산악인 광수형을 만나 광수 생각을 즐겁게 듣기도...
이어 수업 후 곧장 달려오며 알프스 산악서적부터 펼쳐놓은 민 선생님과 등반이야기도 나눴으며 근처에 계셨던 조형사님과 함께 인사동에서 막걸리 잔을 돌리며 피켈이나 등산책 이야기, 그리고 조형사님 증조부님의 별기군 활약상 등으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눈 후 밤늦게 귀향했습니다.
이틀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다섯 분 다 따뜻한 환대에 감사함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들 서울, 충청, 전라, 경상 지역 태생으로 다양하게 따뜻하게 어울려 사는 서울의 모습을 뒤로 하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보다 많은 분들을 만나 뵙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안고 내려왔습니다.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아래 사진들 설명무입니다. 다들 저보다 더 잘 아시는 길들이겠기에...ㅎㅎ)
첫댓글 그날 함께 걸었던 행복한 시간들이 다시금 떠오르는 글 잘 읽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서로 생각만 하다가...
만날 시간이 딱 맞아 떨어진 것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지극했던 까닭인 듯합니다.
먼길 오셔서 함께 보낸 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예, 시간적 물리적 정서적으로 모든 게 딱 좋았던 만남이라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산행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화창한 봄날들 즐겁게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사람 많고 복잡한 서울도 반갑고 좋은 분들이 계셔서 산에 있는 것처럼 즐겁고 좋았습니다.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는 즐거움도 찾아가 만나는 즐거움도 전부 사람 사는 큰 기쁨 중 하나겠지요?^^
두 분 덕택에 저도 간만에 사람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선생님을 서울에서 만난 것이 처음이네요... 교육을 좀 더 자주 받으셔야 되겠네요.ㅎㅎ
다음엔 장샘도 같이 서울 근교의 산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버들치 ㅎㅎ두 분이서 오붓하게 삼성산 오른 장면 보고 조금은 약 올랐습니다.
중간에 살짝 빠져나올 수 없는 철통같은 교육이라 다음에도 서울 산을 구경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조용하신 어느날 팔공으로 오시면 텐트 명당도 내드리고 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