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적 구미국민학교에 다니던시절 아버님이 경찰직에 계시다가 근무를 그만 두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4학년때부터는 신늪에서 구미까지 학교를 다녀야만 했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인해 쪼그마한놈이 큰 자전거로 형과 함께 3년을 하루도 빠지지않고 열심히도 다녔었죠.
그 당시에는 중학교 진학시에도 입시제도가있어 늦은시간까지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하고 집에 오려면
항상 어둠이 짙어져 있었답니다.
지금은, 옛 신부동에서 구미까지는 별로 멀게는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무척 먼거리였고 힘들고
무서운 그런 곳이었지요.
등교시에는 아침 일찍 중학생 선배팀과 함께함으로써 힘은 들었지만 나름의 즐거움도 있었지요. 하지만 하교시에는 무서움에
배고픔에, 항상 지쳐서 집에 오곤 했더랍니다.
비오는 날에는 우산도없이 ( 있다해도 자전거타느라 쓸수가없고 ) 질퍽한 길을 신늪, 장동지나 구미까지 가면은
그야말로 새앙쥐가 되어 수업은 어떻게 받았는지 생각하기도 싫고 학교파하고 배가 너무 고파 형과 함께
실비식당에서 풍겨오는 우동냄새를 맡으면 배 부를까 그 집앞을 몇바퀴나 돌아보고...
눈오고 추운 날에는 낡고 소매 짧아진 꺼먼 교복에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속살이 그대로 내비쳐 구미서 불어오는
맞바람을 맞으면 왜 그리도 추운지 온 몸이 동태가 되어 걷기도 힘이 들고...
밤늦게 하교시에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오려고 신평 술도가를 지나서 차돌배기를 거쳐 쌍미뿔 사이를 지나칠려면
등골이 오싹해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다른길을 택해 광평국교를 지나 하천길을 따라 미륵배기 고개를
올라 가려면 귀신 허상이 보이는 것 같아 헛기침을 치려해도 소리가 나질 않고... 고개너머 겨우 숨을쉬며
장동가는 오르막을 발악을하며 올라가면 산자락에 물흐르는 소리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것 같아
발걸음도 떨어지질않고...겨우 정신차려 장동지나 신늪에 도착하면 온몸은 항상 식은 땀이 축축했더랍니다.
어린마음에 전학을 시켜주시지않은 아버지와 엄마를 무척 원망도 했지만 후에 그 마음을 알았을 때에는
나자신의 노력을 제대로 못했음에 얼마나 울고 불고했는지...
이렇게 어릴 적 구미에서 신늪까지 오가는 길도 힘이들었지만, 지금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 신부동을 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40여년을 잊고 지내다 어느날 갑자기 고향의 냄새를 맡는다고 흥분된 마음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너무나
죄스러운것 같아 이제부터는 덜떤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씩 조금씩 고향님들께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짧은 지식에 고향을 다 아는양 이것 저것 올려놓은 글 죄송하구요 선후배님께 결례되는
행동이 있었더라도 용서와 이해를 바랍니다.
좀더 기억을 더듬어 후에는정말로 정감가는 글을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첫댓글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지나고보면 괴로웠던 일도 즐거웠던 일 못지않게 좋은 추억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쪼록 늘 기쁘고 행복한 날만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꿈에도 그리던, 어린시절 등하교길의 추억을 소상 하게도 써내려가시는 안산부라님 !! 아버님이 공직에 계셨기에 구미 인근 관청으로, 이사도 몇번 있었던걸로 짐작이됩니다만, 부라보님의 뿌리는 분명코 신늪이고, 인촌댁으로 존경받던 할아버님과, 저의 할아버지와는 친분이 두터어 잔심부름도 가끔 다녀온걸로 기억이 됩니다. 특히나 어깨동무님과는 앞뒤집이라 개구장이 동심을 함께한 시간이 더욱 많았었지요 . 이렇게 평생을 두고 잊지못할 추억들이 너무도 많은데 . 흥분된 마음으로 닥아옴은 필연인것을, 들뜬마음을 가라않히고, 조금씩 닥아 온다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요, 부라보님 ! 고향은 당신을 잠시도 잊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