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편지 🌿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봄 햇살이 마루 끝에 조용히 내려앉은 아침이었습니다.
칠순을 훌쩍 넘긴 한 노인이 따뜻한 막걸리 한 사발을 앞에 두고 마당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바쁘다며 지나쳤을 작은 풀잎 하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하나까지도 이제는 눈에 들어옵니다.
“참 많이도 변했구먼…”
노인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립니다.
젊은 시절에는 남보다 앞서야 했고, 더 가져야 했고, 더 높이 올라야 한다 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쉼 없이 달렸습니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화려한 것보다 소박한 것이 더 오래 남고, 강한 향기보다 은은한 향기가 더 깊이 스며들며, 잘난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더 귀하다는 것을…
노인은 천천히 일어나 마당 한쪽에 핀 이름 모를 꽃을 바라봅니다.
“너도 참… 조용히 잘 사는구나.”
그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노인의 마음은 이상하게 따뜻해졌습니다.
문득 지나온 세월이 떠오릅니다. 힘겨웠던 날들, 억울했던 순간들, 그리고 치열하게 버텨냈던 젊은 날…
그 모든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평온함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노인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 해도… 난 지금이 더 좋다.”
빠르게 달리던 세상 대신 느리게 흐르는 바람이 좋고, 요란한 파도 대신 잔잔한 물결이 좋으며, 비싼 술잔보다 이 소박한 막걸리 한 잔이 더 깊은 위로가 됩니다.
세월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끝이 멀지 않았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서 더 오늘이 소중하고, 이 순간이 고맙습니다.
노인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보고는 잔을 들어 천천히 비웁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합니다.
“남은 날은…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야지.” 햇살은 여전히 따뜻했고, 바람은 여전히 부드러웠습니다.
그날 아침, 노인의 마음에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잔잔한 행복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세월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우리를 더 깊고 넉넉하게 만듭니다.
오늘도 서두르지 말고, 조금 느리게…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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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톳길에서 만난 길손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며..♣︎
어느 날 어느 노년 신사와 계족산
(대전광역시 대덕구와 동구에 걸쳐 있는 산높이는 429m) 황톳길을 함께 걷게 되었다.
그는 75세 된 말기 암 환자였다.
부인과는 작년에 사별을 했고, 혼자 사는데 자식들은 1남 1녀로 모두 서울에 산다고 했다.
여기 황톳길 오기 전에 자식들과 상의 없이 APT 등 모든 재산을 정리했고,
여행용 가방에 옷과 생활 용품만 가지고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APT에 있던 가재도구는 모두 중고업체에 넘겼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인근에 있는 보리밥집에 맡겨 놓은 여행용 가방과 통장, 체크카드 뿐이라고 했다.
여기서 내려가면 미리 예약한 요양원에 입실하면 된다고 했다.
계족산부근이 고향이고 해서 인근 요양원을 택했다고 한다.
함께내려오면서 길손이 되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 젊은 시절에 서울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 합격 후 서울시에 첫 공직생활을 한 뒤 총무처, 청와대 등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앞뒤 안 보고 열심히 일해서 차관보까지 승진해 잘 지내다가 퇴직무렵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부인이 병간호 몇 년간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했다.
부인이 죽고 나서 혼자 병원 통원 치료와 입원을 몇 년간 반복했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하면 자식만 왔다가고, 며느리는 잘 오지 않았다고 했다.
딸은 가끔 병원에 오면 시어머니가 아파서 병간호에 너무 힘들다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병원서 퇴원 후 잠시 딸 집에 들렸더니 손주들이 할아버지한테서 냄새 난다고 잘 오질 않았다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이다 보니 조금 앉아 있다가 약속 있어 간다고 하고 황급히 나왔다고 한다.
인근에 살고 있는 아들 집에도 들려서 초인종을 누르니 며느리가 '아이고, 아버님! 연락도 안 하시고 이렇게 불쑥 찾아오시면 어떡하냐'며
문전 박대를 받았단다.
아들에게는 집에 잠시 들렸다고만 했다.
아들은 퇴근길에 아버지 아파트로 들릴테니 아파트에 가 계시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뒤돌아서며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고 한다.
병들고 늙어서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뒤로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여행 경비는 매달 나오는 연금과 아파트 팔고, 재산 정리하면 몇 십억 되니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여
대학시절 연애했던 경포대, 속초 등을 다니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여행 중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다시 찾아가니 대장암 말기라고 했다.
황톳길을 걸으면 좋다고 하여 여기를 왔는데 오랜만에 대화를 할 수 있는 길손을 만나서 즐겁다고 했다.
꼭,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고 몇 번을 사정하기에 신탄진 부근 부추 칼국수 식당에 갔다.
대장암이지만 칼국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 칼국수를 많이 먹어 그립다고 했다.
식사를 하고, 요양원에 입실한다고 하여, 보리밥집에 맡겨 놓은 짐을 찾아 내 캠핑카로 이동했다.
한참을 캠핑카에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같은 공직생활 동지라 생각하고 자주 황톳길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며 운동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이후, 계족산 황톳길을 오게 되면 미리 연락해서 요양원에 들려 허락을 받고, 캠핑카로 오셔서 함께 황톳길을 걷게 되었다.
어느 날 함께 황톳길을 내려오는데 저 멀리서 아버지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서로 한참을 얘기하더니 아들 차로 요양원에 들어갈 테니
고맙다고 인사하고, 서로 헤어졌다.
며칠 있다가 요양원에 전화를 했다.
잘 계시는데 아들과 딸, 가족을 만나고 나서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고 했다.
그다음 날 요양원에 직접 방문했더니 면회
사절이라고 한다.
여자 원장님한테 부탁하여 황톳길 김 과장이 왔다고 한 번만 말해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내려오시는데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고 하면서 자식들이 찾아와서
몰래 재산 처분한 것에 대한 것만 다투고 상경 했다고 한다.
잘 모르는 길손이지만, 나도 너무 화가 났다.
내가 죽거든 자식들에게 알리지 말고, 요양원에서 화장하여 계족산 깊은 곳에 뿌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죽은 뒤 통장에 남은 돈은 요양원에 전액 기부하고, 시설도 보완해서 어려운
사람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도와주라고 했다고 한다.
가슴이 멍하고, 뭉클해 지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다음에 건강이 회복되면 함께 황톳길을 걷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나도 시골에 돌아와 들깨를 베어 털고 난 뒤 이 주일 후쯤 비가 부슬거리는 아침에 요양원에 들렸다.
그런데 그는 지난 금요일에 하늘나라로 가셔서 토요일에 자식을 불러 유언장을 보여주고,
인근 화장터에서 요양원 원장과 함께 화장을 하여 산꼭대기에 뿌려 주었다고 했다.
ㅛ
공직에서 차관보까지 승진했으니 일단은 성공한 사람인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길손이었지만, 같은 공직 동지애로서 서로 재미있게 대화를 했었는데..
세상사 벼슬에 관계없이 '인생무상'을 생각하며 빗속에서 눈물을 한참 흘렸다.
왜 하필!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김계전 칼럼]
■나는 이 카톡의 글을 눈물을 흘리며 두 번 세 번을 읽었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국민소득이 4만 불의 선진국이 되었다고 그렇게들 좋아했는데,
원래 선진국은 그런 것인가요?
물질 앞엔 천륜도 오륜도 인의예지도 없고, 금수(禽獸)같이 살아도
자기 자신만의 잘 먹고 잘 살면 선진국의 국민인가요?
비록 헐벗고 배고팠지만 냉수도 선후가 있고 시래기죽 한 그릇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겸양지덕(謙讓之德)으로 살아 온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모든 희생 감내하면서 자식을 키울 적엔 물론 보험(保險) 성격으로 기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간의 기본 가치관마저 저버리는 오늘날 세태가 너무나 서글퍼 백세 장수시대를 살아가자니 한없이 원망스러워 옮깁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분들! 늘 건강관리에 유념하셨어 행복한 나날보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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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웃겨서 ♣︎
같이 웃어요!' ㅎㅎ
《한국어 만세! ^.^》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 교포 3세 입니다.
저 한국에 온 지
몇 년 됐어요ᆢ
저 처음에
한국 왔을 때,
한국은
간식도 너무 무서운 거 같았어요.
저 점심먹고 왔더니 과장님이,
"입가심으로 개피사탕 먹을래?" 했어요.
저 한국사람들
소피 국 먹는 거 알았지만,
개 피까지 사탕으로 먹는 줄은 몰랐어요.
저 드라큐라도 아니고,
무슨 개 피로 입가심 하냐고 싫다고 했더니,
"그럼 눈깔 사탕은 어때?" 하셨어요.
저 너무 놀라서
"그거 누구꺼냐고?" 했더니,
과장님
씨익 웃으면서ᆢ
"내가 사장꺼 몰래 빼왔어~" 했어요.
저, 기절했어요~~
눈 떠 보니
과장님 저 보면서
"기력이 많이 약해졌다며 몸보신 해야 한다고,
내 집으로 가자" 고 했어요
그래서 저 너무 불안해서
"무슨 보신이냐?" 했더니ᆢ
과장님
제 어깨를 툭 치시며
"가자, 가서 우리 마누라 내장탕 먹자" 했어요.
저ᆢ
3일간 못 깨어났어요ᆢ
집에 가는 길에서,
식당 간판보고 더 놀랐어요!
'할머니 뼈다구 해장국ᆢ '
미칠뻔 했어요~
근데
이거 보고는 완전 돌아버렸어요~
ㆍ
'할머니 산채 비빔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