㉖ 이봉주 선수
나 스스로 깨우쳐 이겨내야 한다
◇ 미국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2'(2011) *사진=드림웍스 에니메이션
‘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학습 혹은 기술 습득이라고 정의하자니 어딘지 모르게 미진한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유교 전통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습득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배운 바를 곱씹고 또 곱씹어서 인격을 닦는 데까지 이르라는 말입니다.
유학의 최종 목적은 인격 수양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데 있습니다. 이와 달리 실리를 중시하는 이 시대에는 공부의 목적이 출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인격 수양과 출세 가운데 무엇이 더 나은 가치인지를 묻는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만, 제게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저는 인격 수양을 고르겠습니다.
‘공부(工夫)’의 중국어 발음은 쿵푸(kung fu)입니다. 중국어를 모르는 한국인이라면 ‘쿵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공부보다는 홍콩 영화에 나오는 무술 영웅들을 떠올릴 것 입니다.
영화 속 영웅들이 선보이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은 몸놀림과 엄청난 위력의 타격을 보노라면,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흘린 땀의 양을 가늠하기조차 힘듭니다.
그런데 무술은 몸으로만 익히는 것일까요?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2편을 보면 무술도 실은 공부임을 알 수 있습니다.
1편에서 악당 타이렁을 물리치고 용의 전사가 된 팬더 ‘포’에게 스승 ‘시푸’는 내면의 평화를 다스리라는 준엄한 가르침을 내립니다. 그러나 한입에 만두를 수십 개나 집어삼키는 포에게는 스승의 말이 소 귀에 경 읽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중 악당 ‘셴’의 일당이 포와 무적 5인방이 지키고 있는 평화의 계곡에 쳐 들어오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며 자기가 누구인지 고민하던 포는, 셴과 싸우는 도중 친엄마와 헤어지며 겪은 충격이 떠올라 대결에서도 지고 마음도 혼란에 빠 져 괴로워합니다.
이를 알아챈 셴은 포의 약점을 파고들지만, 포는 위기를 극복한 끝에 내면의 평화를 다스리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뭘 말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고 욕망의 그릇을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포와 무적 5인방은 셴의 무리와 싸워서 이깁니다. 진정한 공부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가 마라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긴 안목에서 보면 마라톤에서 최고의 적은 경쟁하는 선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마라톤에서는 결승점에 다다를 때까지 심신의 피로를 극복한 사람만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 96' 애틀란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봉주선수 *출처=대한체육회
한국을 대표하는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의 예를 한번 볼까요. 그의 별명은 ‘늦깎이 마라토너’입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야 했기에 육상선수 등록 4년 만인 스무 살이 되어서야 마라톤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봉주 선수에게도 슬럼프는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돌아봅니다.
“아무런 희망도 자신감도 없었고, 한없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뛰는 것만이 행복이었던 그에게 뛰는 것 자체가 고역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봉주 선수는 슬럼프를 이겨냈습니다.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못했다. 결국 나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는 것, 나 스스로 이겨내 홀로 서야 한다는 것을 혹독하게 깨달았다.”라는 그의 말을 들으면 가슴 한편이 뭉클합니다.
슬럼프를 이겨낸 뒤 그는 승승장구했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이봉주 선수는 은메달을 차지했습니다. 3초 차로 금메달을 놓친 게 두고두고 아쉬웠던지, 이봉주 선수는 넉 달 뒤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시아 투과니를 막판에 제치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습니다. 1999년 자신이 몸담고 있던 소속사가 선수들에게 부당하게 처우하는 것을 보고서 소속사를 탈퇴한 것입니다.
이봉주 선수는 충남 보령 여관방에서 홀로 지내면서 묵묵히 훈련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듬해인 2000년 2월 도쿄 마라톤에서 2시간 7분 20초의 한국 신기록을 세웁니다.
이봉주 선수의 마라톤 인생에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왜 제가 공부를 마라톤에 비유했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공부든 마라톤이든 멈추지 않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이봉주 선수가 마라톤을 늦게 시작했다고 지레 풀죽어 있었거나, 슬럼프에 빠졌을 때 마라톤을 포기했거나, 소속사를 나왔을 때 여관방에 머물며 홀로 훈련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그보다 먼저 이봉주 선수 자신이 스스로의 삶에 만족할 수 있었을까요? <계속>
글 | 마가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