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1. 06;00
바람이 분다.
지금 부는 바람은 끈적거리는 바람이 아니다.
무더위를 동반한 습한 바람이 아니고 서늘한 기운을
보내주는 고마운 바람이다.
세찬 빗줄기 속에 바람을 맞는 키 작은 나무들이
휘청이고 우산을 쓴 내 몸도 살짝 흔들린다.
어제도 땀에 젖은 티셔츠를 두 번 갈아입었는데,
하룻만에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호락호락하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았던 무더위가
하늬바람 한방에 물러났다.
내가 걷는 방향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분명
서풍(西風)인 '하늬바람'이다.
동서남북(東西南北) 방향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내일이 추분(秋分)이니 해가 지는 쪽이 정서(正西)
방향이라고 보면 된다.
상일동 지점 부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거래처 헬기
부대의 대위와 준위 등 헬기 조종사들에게
산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항공지도를 가져왔고,
생존훈련을 받은 조종사들에게 독도법(讀圖法)의
기본인 도북(圖北), 진북(眞北), 자북(磁北)에 대해,
자북과 진북이 6도 정도 오차가 나는 도자각과 도편각,
자편각을 배웠다.
나침반과 지도가 없을 때 북두칠성의 마지막 두 별을
잇는 선을 연장하여 북극성을 찾고,
지형지물을 이용하고,
나무의 나이테 방향, 북쪽 방향에서 더 많이 자라는
이끼를 활용하는 방법, 그림자 막대법,
그리고 북쪽을 향한 개미집 입구와 나뭇가지가
남쪽으로 더 많이 뻗는 습성을 참고하여 방향을 측정
하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산에 빠진지 40여 년,
전국 100대 명산은 물론 여기저기 산을 다니며 세 번
정도 많이 고생한 기억이 난다.
등산객들이 참선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각화사
스님들이 이정표를 없애는 바람에 2018. 7.18일
6시간이나 생고생을 했던 봉화 각화산(1176.7m),
2011. 9. 21일 영남알프스 구간인 능동산(983.1m)~
천황산(1189m)~재약산(1108m)을 종주하고 하산 중
고사리분교 근처에서 이정표를 믿고 가다 보니 길은
달라도 도로 정상 방향으로 올라간다.
하산길을 찾아 한참을 헤매다 해가 떨어진 18;35분에
민가 불빛을 보고 간신히 하산을 했는데 그날 산행
시간이 무려 8시간 반이었다.
식사 후 차에 두었던 산행지도와 내가 찍은 이정표
사진을 대조해보니 누군가 이정표 방향을 살짝 바꿔
놓은 거다.
같은 해 2011. 10. 20일
거창 금원산(1353m)~기백산(1331m)을 종주하고
하산 중 잘못된 임도 이정표로 헤매다 119 도움을 받았던
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정표가 잘돼있어서 조종사
들에게 배운 독도법을 제대로 써먹지는 못했다.
이렇듯 처음 가는 산에서 이정표는 등산객의 소중한
생명줄이라 함부로 장난을 쳐서는 안된다.
07;00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세게 불던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바람으로 바뀌어
부드럽게 내 몸을 감싼다.
진드기처럼 진득하게 눌러앉았던 여름을 밀어내는
서풍(西風)을 우리 선조들은 '하늬바람'이라 했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동풍(東風)은 샛(沙)바람,
남풍(南風)은 마(麻)파람,
북쪽에서 불어오는 북풍(北風)은 높(高)바람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밖에도 샛바람, 마파람, 뒤바람, 산들바람, 솔바람,
한들바람, 소소리바람, 명지바람, 냇바람, 살랑바람,
황소바람, 꽁지바람, 오솔바람, 재바람, 싹쓸바람,
갈바람, 돌개바람, 도리깨바람 등이 있는데,
이렇게 계절과 바람의 특성에 맞춰 아름답게 이름을
지은 선조들의 지혜에 탄복을 한다.
< 옥잠화 >
나는 동요를 참좋아한다.
지금도 오빠생각, 고드름, 반달 등 동요 수십 곡을
부르는데 그중에서도 윤석중 선생이 작사한 '산바람
강바람'을 좋아해 하늬바람을 맞으며 입으로 흥얼
거린다.
<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대요~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서 나룻배를 저어간대요~♪. >
나무꾼과 뱃사공에게 불어오던 서늘한 바람이 지금
나에게도 불어온다.
아일랜드의 설화적인 시(詩) '운명의 바람'에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 바람의 방향이
동풍이면 부자가 되고,
서풍일 때는 검소한 인생을 살고,
남풍일 때는 사치스러우며,
북풍일 때는 전사(戰士)가 된다고 했다.
바람은 또 다른 의미로
바람났다, 바람피운다, 바람 잡는다, 바람 들었다 등
부정적인 의미도 많지만,
'하늬바람에 곡식이 모질어진다'라는 속담도 있다.
즉 서풍이 불면 곡식이 여물고 대가 세진다고 하는
거다.
오늘은 하늬바람 불어 기분 좋은 날,
너무나 즐거워 입을 좁게 오므리고 휘파람을 분다.
하늬바람과 내입에서 나오는 휘파람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글을 쓰는 동안 Tv에선 충청도, 전라도와 남부지방에
홍수경보가 발령 되었다는 자막이 나온다.
농민들과 비 피해자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
2024. 9. 21.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