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찌며"(레 16:8)
대제사장 아론은 두 염소를 성막안 북편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 둔 후(1:11; 16:7), 항아리속에서 제비를 뽑았다. 칼피(Calphi)랄 불리우는 이 항아리(urn) 속에는 똑같은 크기나 모양를 가진 두 개의 제비가 들어 있었는데, 각각의 제비에는 '여호와를 위하여'(라예호와 לַיהוָ֔ה)라는 글과 '아사셀을 위하여'(라아자젤 לַעֲזָאזֵֽל)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 앞에서 항아리를 흔든뒤, 두 손을 넣고 한 손에 하나씩제비를 집어 두 마리의 염소들 각각의 머리 위에 그 제비를 놓았다. 이때 그 머리 위에 '여호와를 위하여'(la-JEHOVAH)라는 제비가 얹힌 염소는 그 목에 붉은 천을 두른후 여호와께 속죄제로 드렸고, '아사셀을 위하여'(la-Azazel)라는 제바가 얹힌 염소는그 뿔에 붉은 천을 맨 후 무인지경의 광야로 내보냈다고 한다(The Preacher'sHomiletic Commentary, Vol.III. p. 200-201)
레 16:9-10/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찌니라
즉 제비뽑은 결과, 이스라엘 전 회중의 속죄를 위해 희생 당하여 여호와께 속죄 제물로 드려지도록 결정된 염소 한 마리를 의미한다.
즉 제비뽑은 결과, 이스라엘 전 회중의 회중의죄짐을 지고 무인지경의 광야로 내보내지도록 결정된 또 다른 염소 한 마리를 가리킨다.
"그것으로 속죄하고"에서 알 수 있듯이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힌 그 염소를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물(the object of expiation)로 삼아(21절), 광야로 내보내라는 뜻이다(Keil & Delitzsch, p.398).
여기서 아사셀(scapegoat)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 견해가 있다.
1) 아사셀은 히브리어 '아자젤(עזאזל)'의 음역인데 이것은 '염소'란 뜻의 '에즈(עז)'와 '가버리다', '사라지다'란 뜻의'아잘(אזל)'의 합성어로서 곧 '속죄의 염소' 또는 '내보냄을 받은 염소'를 뜻한다는 견해이다(Luther, cyril of Alexandria, Symmachus, Theodotion, Vulgate,Septuagint).
2) 아사셀(Azazel)은 '쫓겨난 악령', '귀신'이란 뜻의 히브리어 '아잘젤'이 유음화(流音化)된 것으로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 곧 '사단'을가리킨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아사셀을 위하여'란 말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짐을 진염소를 죄의 장본인인 아사셀이 사는 광야로 다시 되돌려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주장한다(Gesenius, Ewald, Rosenmuller, Wette, Knobel, Origen, Hengstenberg,Keil).
3) 아사셀은 히브리어 '아자젤'의 음역이다. 따라서 히브리어 '아자젤'은 '제거하다', '없애다'란 뜻의 아랍어 동사 '아잘'의 강세형으로 그 의미는 '완전한 제거'인데,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나가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이멀리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시 103:12; 사 38:17; 렘 31:34; 히 9:26)는 견해이다(Tholuck, Thompson, Bahr, Winer).
4) 쫓겨난 염소가 거하게 될 광야의 어느 장소를 가리킨다는 견해이다(Vatlabus, Deyling, Kimchi, Abenezra, Bochart, Carpvoz).
한편 우리는 상기한 네 가지 견해 중 어느 것이 옳은지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공통적인 점은 이 염소가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지고 멀리 떠나 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홀로 담당하고 광야로 멀리 떠난 이 아사셀의 염소는, 인류의 죄악을 도말하시기 위해 그 죄짐을 지고 성문 밖 골고다로 향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한다는 점에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The Preacher's HomileticCommmentary, Vol.III. pp. 200-202; Keil & Delitzsch, Vol.I. Pentateuch, p.398).
히 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대제사장은 광야로 내보낼 그 염소의 머리 위에 양손을 얹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한다. "오, 주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 집이 잘못을 범하고, 배반함으로 당신 전(前)에 죄를 지었나이다! 오, 주여!간절히 비노니, 이제 주께서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기록된 바, '속죄의날에 너희가 내 앞에 지은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하리라'하신 그 말씀대로 이제 주의 백성이 당신께 지은 모든 허물과 죄악을 이시간 용서하소서!"
아세셀이란?
아세셀은 히브리어 ‘아자젤’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의미는 ‘완전한 제거’라는 뜻이지만 이 단어가 이전부터 존재했던 고유명사인지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단어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 부분 역사 학자들간의 논쟁거리다. 이 부분은 후에 추가적으로 다룰 것이다. 오늘은 구약의 본문과 신약의 의미를 연관시켜 설명하고자 한다.
대속죄일의 염소
아세셀의 염소는 대속죄일에 행하는 퍼포먼스다.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죄에서 놓여 자유롭게 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일단 아사셀이 등장하는 단어는 모두 세 구절이며, 레위기 16장에 등장한다.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레위기 16장8절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레위기 16장10절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위기 16장26절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며
대속죄일이 다가오면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한다. 한 마리는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고, 다른 한 마리는 광야로 보내진다. 광야로 보내지는 염소를 아사셀의 염소로 부른다. 아세셀의 염소는 돌아갈 수 없을 정도의 먼 광야로 버려진다.
대제사장은 ‘여호와를 위한 염소’에게 안수하고 이스라엘의 죄를 사한다. 먼저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며, 수송아지의 피를 뿌린다. 다시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동일하게 피를 뿌린다. 대속죄일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위한 속죄일이다.
히 9: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안수한 후 한 사람을 지명하고 그 사람에게 광야로 끌고 들어가게 한다. 광야로 보내진 염소는 광야에서 기다리던 야수들에의해 목숨을 잃는다.
신약적 의미
아사셀의 염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먼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해 홀로 그 죄를 졋다는 점에서 동일한다. 두 번째는 예수님은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이것은 버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드시 자신의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고 내침을 받는다.
히 13: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히 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아사셀 염소는 레위기 16장의 마지막 속죄제물입니다. 그 어원은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떠나다(아잘) 과 염소 (에즈)의 합성어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자젤(עֲזָאזֵל) 쫒겨난 귀신 추방당한 악령이란 뜻의 아잘젤의 유음화로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 사탄을 나타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두가지 다 복음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먼저 레위기 16장 7절에서 10절 말씀을 보면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하나님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하나님을 위하여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하나님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 16장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는 대속죄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마지막 의식으로 아사셀 염소를 정해 한 마리는 여호와께 속죄제물로 잡고 (제사장은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한 첫째 염소의 각을 뜬후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르고 그 피는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가 언약궤에 뿌립니다. 그러면 지성소안에 하나님 쉐키나(영광)이 가득하게 되고, 이는 이스라엘의 죄가 속해져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졌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한 마리는 아론이 그 머리에 안수해서 광야로 보냅니다 이것 역시 이스라엘의 죄를 아사셀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 아사셀 염소는 인적이 없고 짐승들만 있는 광야에서 굶어 죽거나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 두 마리의 염소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입니다.
첫 번째 염소는 히 7:27의 말씀처럼 완벽한 희생제물이신 예수님의 영단번의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단번에 흠없는 자기를 드려 다 이루셨기에 더 이상 드릴 제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레16장 8절 말씀처럼 이제는 더 이상 제비뽑을 염소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아사셀이란 이름대로 하나님과의 단절을 보여주신 십자가의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이며 하나님의 품을 떠나 짐승의 구유에 누이신 예수입니다.
두 번째 염소 역시 마가복음 1장 12절의 광야로 몰아내신 예수님을 모형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들짐승들이 있는 광야로 성령께서 몰아내셨다고 하지요? 그리고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하심으로 원수들 앞에서 천사들이 상을 베푸는 것입니다 (시23:5) 사탄의 영토에서 전리품을 빼앗은 완전한 승리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 아담이 실패한 그 시험을 주께서 다 이기심으로 둘째 아담 안에 있는 성도가 사단의 시험에 더 이상 실패하지 않고 들짐승들에게 뜯겨 죽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아사셀 염소는 자기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광야로 보내진 예수 그리스도를 앞당겨 보여주는 대속죄제이며 십자가 승리의 증거인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아사셀이 실제로 고대부터 있었던 중동의 토템 신앙이며 악신에게 드린 제사의 일종이었다고 하는데 레위기의 아사셀은 그런 고대의 의식 안에 오실 그리스도를 담아서 우리에게 넘겨주신 은혜의 복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레위기의 모든 의식이나 제사법 정결 규례 안에도 복음이 있고 그것들을 그리스도 예수와 십자가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피로사신 교회, 진리의 영이 임한 여러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도 예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 영적 광야로 나아가는 아사셀이 되길 빕니다. 주님은 그곳에 계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