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금융위기를 되돌아보는 영작가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지 않는 한 다시 일어난다」 / 6/4(일) / 코바야시쿄코 저널리스트
(웹사이트 「논좌」가 7월말에 폐쇄되게 되어 필자의 기고 기사를 보충한 후 전재하고 있습니다.)
금년 3월, 미 은행 실리콘 밸리·뱅크(SVB)가 경영 파탄했다. 미국 은행으로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경영파탄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9월 15일 미국 대형 증권사 리먼브러더스가 경영파탄을 내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꺼번에 가속화됐다. 우리는 더 안전한 세상에 있는 것일까?
위기 10년 뒤인 2018년 위기의 배경과 앞으로 비슷한 위기가 발생할지에 대해 런던 금융권을 숙지하는 전문가 2명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 영국 「노던 록」의 충격
첫째, 세계 금융위기(2007~2008년)의 영국 상황을 간단히 되돌아본다.
위기 발생의 직접적인 계기는 신용력이 낮은 개인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다. 이 대출은 일반 대출보다 심사 기준이 느슨하고 금리가 높게 설정되어 있었다. 집값이 오르던 2000년 이후 급속히 건수가 늘었지만 가격이 하락하자 부실이 잦아졌다.
영국 금융기관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어 부실로 생긴 신용경색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리먼 쇼크에 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07년 9월이다. 주택담보대출 전문 금융기관 노던록이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에 긴급대출을 요청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예금 인출을 원하는 고객들이 대거 매장으로 몰렸다. 19세기 이후 처음 있는 은행 출금 소동이다.
1년 뒤에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 영국 대형 은행들도 줄줄이 위기 상태에 빠졌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 자본 투입, 예금보호 보증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세금 구제가 필요한 은행 경영진, 규제가 느슨하다는 말을 들은 금융규제당국 금융서비스청(FSA)은 국민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불경기가 확산되면서 금융위기를 막지 못한 당국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국제금융센터로 영국이 자랑하는 시티(런던 금융가)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다.
◎ 영국의 유럽연합 이탈에도 영향?
이때 당국에 대한 강한 불신이 유럽연합(EU) 가입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2016년) 탈퇴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식자도 있다. 금융위기가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각국 그리고 미국으로 확산된 보수 포퓰리즘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애초 금융위기 발생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와해된 금융체제에 문제는 없었나?
그 답을 찾기 위해 처음 인터뷰한 사람은 작가 필립 오거 씨다.
그는 씨티의 여러 은행에서 주식중개인, 조사부장으로 근무한 뒤 금융가를 주제로 한 논픽션을 써왔다. 최근작은 바클레이즈 은행의 역사를 그린 '즐긴 은행(The Bank that Lived a Little)'(앨런 레인사, 2018년.)이다.
***
◎ 금융위기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쯤인가
오거 씨 : 나는 신사적 자본주의의 끝판(Death of Gentlemanly Capitalism2000년.)을 냈다. 런던 금융가 시티의 역사를 그린 것이었지만 당시 시티는 승승장구했다. 세계적 금융센터로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나 자신은 헤어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은행가 고객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미국 금융가에서의 비슷한 이야기를 탐욕스러운 상인(Greed Merchants2005년미역)으로 썼는데, 미국 월스트리트도 런던 시티만큼이나 나는 새를 떨어뜨릴 기세였다. 주가가 상승하면서 은행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 '나는 틀렸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한 적도
2006년부터 2007년에 걸쳐, 나는 「어쩌면, 나는 틀렸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은행원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고 이대로 호경기가 계속되면서 금융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하지만 2007년경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불거져 왔다. 내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불편함이 형체가 되어 나타난 것 같았다. 이 정도 규모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 줄은 예측하지 못했는데요.
2007년 9월 주택담보대출 전문 금융기관 '노던 록'이 자금사정이 어려워 잉글랜드 은행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음날 은행 인출 소동이 벌어졌는데.
인출 소동에는 정말 놀랐다. 지금까지 금융밭 경험 중 가장 놀란 사건이었다. 노던록은 인출파동 직전까지 그 경영을 높이 평가받은 금융기관이었다. 하지만 대출금을 갚을 가망이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대량으로 대출을 해주게 됐다. 당초 예금자가 맡긴 돈을 대출로 돌렸으나 다른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대출하게 됐다. 마지막에는 현금이 부족해져 잉글랜드 은행에 지원을 부탁해야 했다.
금융기관들이 신용도가 낮은 개인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속속 시작한 배경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
1980년대나 1990년대에 시카고 학파의 시장주의 경제학이 절대적인 주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경제활동에 가급적 관여하지 말고 시장에 맡기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실제로는 당국의 간섭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재직 19872006년)은 시장에 문제가 있으면 금리를 조절해 해소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게 잘 된다'는 생각이 당연시됐고, 부정적인 부분은 충분히 눈이 가지 않았다.
사실 기업 차원, 개인 생활 수준, 그리고 모든 면에서 부채를 바탕으로 경제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다. 어딘가가 하나 미치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서브프라임 모기지도 단기적으로 이익이 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우선시됐다.
증권화도 현실을 잘 보이지 않게 하고 있었다. 이는 금융기관이 보유한 다양한 형태의 부채(주택담보대출 부동산담보대출 자동차대출 신용채권)를 하나로 묶어 다른 금융기관 등 제3자에게 증권으로 파는 행위다. 그동안 은행들은 자체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부채를 두고 있었지만 증권화로 변혁이 일어났다.
시장주의 경제(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잘 된다), 규제완화, 증권화로 금융권에 자신감이 생겼고 이것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은행가는 마치 마술사 같았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잘된 얘기였는데.
런던 금융계의 규제는 당시 금융서비스청(FSA)이 하고 있었다. 항간에서 흔히 들은 말이 런던의 규제는 라이트 터치(가벼운)라고. 이것이 은행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증대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라고도 한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자유주의 경제의 사고방식 하에서 정부는 가급적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이를 조금만 진행하면 규제감독업도 간섭하지 않는 게 낫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기관 스스로 자율규제할 수 있으니 당국의 관여는 필요 없다고.
1997년 출범한 FSA는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출범 이후 10년간 규제완화를 추진할 것을 독려하며 라이트터치 규제를 자부했다. 다른 나라 금융기관들이 런던의 규제는 라이트터치이기 때문이라며 영국으로 이동할 정도였다.
반대로 엄격한 것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였고, 미국 투자은행과 다른 금융기관들은 정부 연준 규제당국에 규제를 완화하라고 로비했을 정도다. 금융규제에 있어서 미국과 영국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계속된다)
https://news.yahoo.co.jp/byline/kobayashiginko/20230604-00350332
世界金融危機を振り返る 英作家「ビジネスモデルが変わらない限り、また起きる」
小林恭子ジャーナリスト
6/4(日) 21:37
2008年9月15日、NY証券取引所の様子(写真:ロイター/アフロ)
(ウェブサイト「論座」が7月末で閉鎖されることになり、筆者の寄稿記事を補足の上、転載しています。)
今年3月、米銀行シリコンヴァレー・バンク(SVB)が経営破綻した。アメリカの銀行としては、2008年の金融危機以来で最大の経営破綻と言われている。
米シリコンヴァレー・バンク破綻、預金者を「完全に保護」と米政府
焦点:シリコンバレー銀破綻、超緩和局面終了で早くも金融システムにほころびか
2008年9月15日、米大手証券会社リーマン・ブラザーズが経営破綻し、世界的な金融危機が一気に加速した。私たちはより安全な世界にいるのだろうか?
危機から10年後の2018年、危機の背景と今後同様の危機が発生するかについて、ロンドンの金融界を熟知する専門家2人に話を聞いた。
英「ノーザン・ロック」の衝撃
最初に、世界金融危機(2007~08年)の英国での状況を簡単に振り返ってみる。
危機発生の直接のきっかけは、信用力が低い個人や低所得者層を対象にした米国の住宅ローン「サブプライム・ローン」の焦げ付きだ。このローンは通常の融資よりも審査基準が甘く、かつ金利が高く設定されていた。住宅価格が上昇していった2000年以降急速に件数が増えたが、価格が下落に向かうと焦げ付きが多発するようになった。
英国の金融機関もサブプライム・ローンを積極的に手掛けており、焦げ付きから生じた信用収縮問題は他人事ではなかった。
米国の「リーマン・ショック」に当たる事件が発生したのは、2007年9月だ。住宅ローン専門の金融機関ノーザン・ロックが英国の中央銀行にあたるイングランド銀行(BOE)に緊急融資を求めたことが報道され、預金引き落としを求める顧客が大量に店頭に押し寄せた。19世紀以来初めての、銀行の取り付け騒ぎだ。
1年後にはリーマン・ブラザーズが破綻し、英国の銀行大手も次々と危機状態に陥った。
政府や金融当局は信用不安を解消するために銀行への資本注入、預金保護の保証など対策を講じたが、税金を使っての救済が必要となった銀行の経営陣、「規制が緩い」と言われた金融規制当局「金融サービス庁(FSA)」は国民の強い非難の的になった。不景気が広がる中、金融危機を防げなかった当局や政府に対する不信感が高まった。国際金融センターとして英国が誇る「シティ」(ロンドンの金融街)の評判は、地に落ちた。
英国の欧州連合離脱にも影響?
この時の当局に対する強い不信感が、欧州連合(EU)への加盟継続か離脱かを決める国民投票(2016年)の離脱決定に結び付いたと主張する識者もいる。金融危機が、英国を含む欧州各国そして米国に広がった保守系ポピュリズムにつながった、という見方である。
そもそも、金融危機発生の背景には何があったのか。サブプライム・ローンの焦げ付きで瓦解した金融体制に問題はなかったのか?
その答えを見つけるため最初にインタビューしたのは、作家のフィリップ・オーガー氏だ。
同氏はシティの複数の銀行で株式仲買人、調査部長として勤務後、金融街をテーマにしたノンフィクションを書いてきた。最新作はバークレイズ銀行の歴史を描いた『楽しんだ銀行(The Bank that Lived a Little)』(アレン・レイン社、2018年。未訳)である。
***
金融危機が起きるかもしれないと思いだしたのは、いつ頃か。
オーガー氏:私は『紳士的な資本主義の終えん』(Death of Gentlemanly Capitalism、2000年。未訳)を出していた。ロンドンの金融街「シティ」の歴史を描いたものだったが、当時、シティは絶好調だった。世界的金融センターとして一目を置かれていた。
しかし、私自身は割り切れないものを感じていた。銀行家が顧客に対して本当のことを言っていない感じがしていた。その後、米金融街での同様の話を『強欲な商人』(Greed Merchants、2005年。未訳)で書いたのだけれども、米ウォールストリートもロンドンのシティ同様に飛ぶ鳥を落とす勢いだった。株価が上昇し、銀行はどんどん大きくなっていた。
「自分は間違っていたのかも」と思ったことも
2006年から2007年にかけて、私は「ひょっとしたら、自分は間違っ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と思いだした。「銀行家が言うように何の心配もする必要がないし、このまま好景気が続き、金融市場は大きくなり続けるのだろう」、と。
しかし、07年頃から、米国や欧州でサブプライム・ローンの焦げ付き問題が表面化してきた。自分が言葉では説明できなかった居心地の悪さが、形になって表れてきたように思った。これほどの規模の世界的な金融危機になるとは予測していなかったけれども。
2007年9月、住宅ローン専門の金融機関「ノーザン・ロック」が資金繰りに窮してイングランド銀行から援助を受けるという報道が出た。翌日、銀行の取り付け騒ぎが起きたが。
取り付け騒ぎには本当に驚いた。これまでの金融畑の経験の中で最も驚いた事件だった。ノーザン・ロックは取り付け騒ぎの直前まで、その経営を高く評価された金融機関だった。しかし、ローンを返す見込みが低い人にまで大量に貸し付けをするようになった。当初は預金者が預けた分を貸し出しに回していたが、ほかの金融機関からお金を借りて、貸し出すようになった。最後には現金が足りなくなってしまい、イングランド銀行に支援を頼まなければならなくなった。
金融機関が信用力が低い個人や低所得者層を対象にしたサブプライム・ローンを続々と手がけた背景には、どのような考え方があったのか。
1980年代や1990年代において、「シカゴ学派」の市場主義経済学が絶対的な主流になったのだと思う。政府は経済活動になるべく関与せず、市場に任せるのがよいという考え方だ。ただ、これはあくまでも理論で、実際は当局による干渉がないというわけではない。例えば、米連邦準備制度理事会(FRB)のアラン・グリーンスパン議長(在職1987年~2006年)は市場に問題があれば、金利を調節して解消すると言っていたからだ。
それでも、当時は「市場に任せれば、すべてがうまくいく」という考え方が当然視されており、負の部分には十分に目がいかなかった。
実は、企業レベル、個人の生活のレベル、そしてすべての面において負債を基にして経済が回っていたのだが、多くの人が気づいていなかった。どこかが1つ狂うと、すべてが崩壊してしまうことを。サブプライム・ローンも短期的に利益が出ればいい、という考えが優先された。
証券化も現実を見えにくくしていた。これは、金融機関が保有する様々な形の負債(住宅ローン、不動産ローン、自動車ローン、クレジットの債券)を1つにまとめ、ほかの金融機関などの第三者に証券として売る行為だ。これまで銀行は自行のバランスシートに負債を置いていたが、証券化によって変革が起きた。
市場主義経済(「市場に任せれば、すべてがうまく行く」)、規制緩和、証券化によって、金融界に自信が生まれ、これが世界中に広がった。銀行家はまるで魔術師のようだった。何でもできると自負した。今から思えば、できすぎた話だったが。
ロンドンの金融界の規制は、当時「金融サービス庁」(FSA)が行っていた。巷でよく言われたのが、「ロンドンの規制はライトタッチ(軽い)」である、と。これが銀行のサブプライム・ローンの貸し出し増大を招いた原因の1つとも言われている。実際にはどうだったのか。
自由主義経済の考え方の下では、政府はなるべく干渉をしないこと、それが一番となる。これを少し進めれば、規制監督業も干渉しないほうがいいという解釈となる。金融機関自身が自主規制できるのだから、当局の関与は必要ないのだ、と。
1997年に発足したFSAは「市場に任せればよい」という姿勢を明確にしていた。発足から10年間、規制緩和を進めることを奨励し、「ライトタッチ」規制を自負していた。他国の金融機関が「ロンドンの規制はライトタッチだから」と英国に移動してくるほどだった。
逆に厳しいのが米国の証券取引委員会(SEC)で、米国の投資銀行やほかの金融機関は政府、FRB、規制当局に対し、規制を緩和するようロビー活動をしていたぐらいだ。金融規制において、米国と英国には大きな違いがあった。(続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