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7년 5월 8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카페의 글을 쓰지 않은 "어제 하루"......
멍한 시선으로 바보스런 오늘이라는 그 하루를 보냈습니다.
병문안차 지인의 집을 찾아 잠시 TV를 보았는데
채널마다 진실이 없는 세태를 그대로 방영하였습니다.
아직도 "대통령"을 희롱하고 조롱하는 종편의 패널을 보면서
여전히 진실이 없고 그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하고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 자신의 죄악이 그 입을 가르치는 간사한 자의 혀를 가졌다는
성경의 말씀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종편의 악질적인 뒷담질은 악을 생산하는 복마전, 그 자체였으며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종편의 패널에 대한 이해는 "종일 지들끼리 낄낄낄대며
지나라 대통령 조롱이나 해대는 쓰레기 종편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 생계형 패널들....
그 면상에 구제역소똥이나 쳐발랏으면......"하는 분통일갈로 가득합니다.
국민의 의식이 각성되는 과정은
이러한 종편의 뒷담질은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종편의 정치 폄론을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이 가능한 사람은
이미 종편의 좀비가 되었으며 소위 말하는 언론의 개, 돼지로 전락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종편의 뒷담질에 마음의 분노가 들끊는 사람은
언론의 좀비가 되지 않고 각성된 국민의 입문 단계 들어섰습니다.
탄핵 정국과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가장 임팩트 있는 말은
"국민은 개, 돼지"란 말인 것 같습니다.
태극기 집회의 구호가운데서도
국민은 개, 돼지가 아니다는 절규를 하였습니다.
국민의 주권을 강조하였던 광화문의 촛불은 소위 적폐청산의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자칭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새로운 대통령을 청와대의 주인으로 안착시켰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개, 돼지가 아니다는 절규를 하였던 태극기 애국 국민은
각성된 자기 이해로 국민은 개 돼지라는 의식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 돼지 취급받았다는
피해의식에 사무쳤습니다.
처음에는 언론과 방송의 개 돼지가 되었다가
다음에는 국회와 검찰과 특검과 헌재의 권력에 농락 당하는 개 돼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탄핵 정국의 전리품인 대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국민은 개 돼지라는 사실을 인식하였습니다.
투표용지와 투개표 상황에 대한 눈뜬 장님이 되어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는 투표를 하고도 집단 정신착란증이라는 매질을 당하였습니다.
각성된 국민의 자기 이해로 느끼는 스릴 넘치는 정신병자 취급은
개 돼지로 살 수 밖에 없다는 또 다른 자기 인식의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각성되면 각성될수록 국민은 개 돼지라는 인식은
종교적 신념의 확고부동한 믿음이 되었습니다.
국민에 대한 개 돼지의 사회적 인식은
2015년 11월 19일에 개봉된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에서 운을 띄웠습니다.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한 먹을거리, 유흥거리만 던져주면 결국 따라올겁니다."
이렇게 국민을 개 돼지로 우롱하고 암시하는 말을 듣고도 7백만 관객은 분노하기보다
영화의 감동으로 흥행몰이의 또 다른 개 돼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2016년 7월 9일에 알려진 "민중은 개 돼지 라고 하면서 신분제를 공고히 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는 말과 결부하면.....
그 동안 지배 계급의 적폐는 국민을 개 돼지로 취급하면서 사냥몰이를 즐겼습니다.
마지막으로 2017년 1월 18일 개봉된 영화 더 킹의 대사 가운데
"넌 오직 너뿐이야. 먹고 싶으면 먹고, 싸고 싶으면 싸고. 비슷한 애들 어디선가 보지 않았어?"
"개, 돼지들. 걔들 그러잖아. 아무 데서나 먹고 싸고 물고 뜯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젠 무시하려고 상대하다간 같이 개, 돼지 될 판인데"라는...
개 돼지의 언어유희(言語遊戱)는 대중적인 소통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국민은 개 돼지라는 의식이 없는 사람과
국민은 개 돼지라는 의식으로 각성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국민은 개 돼지가 아니다고 절규하였지만
개 돼지라는 인식은 깊어졌습니다.
소용돌이치는 우리 사회의 진실과 거짓의 싸움은
국민은 개 돼지라는 각성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법치와 자유의 실종은
국민의 주권과 권리가 약탈되었습니다.
전체주의적 권력과 언론과 방송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민의 주권을 왜곡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았습니다.
대중을 개 돼지로 취급하며 적당한 먹을거리, 유흥거리만 던져주면 결국 따라올 거라는 적폐지대는
민중은 개 돼지라는 신분제를 공고히 하자는 결의를 낳았습니다.
최근 국민은 개 돼지기 아니다는 마지막 몸부림을 쳤던 태극기 애국 시민은
또 다시 국민의 머슴으로 살겠다던 새누리당 집행부의 개 돼지 취급을 받고 절규하고 저항하는
분노의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탄핵 정국에서 대선 정국에 이르기까지 배신의 도미노 현상은
국민은 개 돼지라는 각성을 일깨우는 가혹한 매질이 되었습니다.
개 돼지로 살아가는 국민은 대오각성하였지만
여전히 언론의 거짓에 농락 당하고, 패권에 짓밟히고, 주권을 강탈 당하고,
표현의 자유는 허공의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일을 시험하사 짐승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순종하여 사람의 본분을 행하게 하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 개 돼지의 각성은 그대로 개 돼지로 살아라는 일축이어서
각성된 국민의 분통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