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인 소조상
요령성 요하 유역에 있는 동산취라는 곳에서 홍산문화의 제사 유적지를 발굴하였다. 발굴지는 산등성이가 돌출되어 있는 둔덕의 앞쪽 끝부분이었다. 그 아래쪽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 두 점의 소형 나체 여인상을 발굴했다.(사진)
여인상은 머리부분과 오른쪽 어깨 및 무릎 아래 부분은 파손되어서 없어졌다. 배는 불룩하여 임신 상태임을 모여준다. 남아 있는 몸통의 크기는 겨우 5-6cm 정도인 소형 소조상이다. 미술적으로는 상당히 잘 다듬어진 작품이다.(표면은 흙을 입혀 붉은 색을 띄고 갈아서 윤이 났다. 그러나 미술적인 설명은 생락햔다.)
요령성의 서부에 있는 우하량 지구에서도 여신을 발굴했다. 비교적 완전한 여신의 두상과 흙로 만든 인물상(얼굴)을 발굴했다. 거의 실물 크기이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위엄이 서리고, 엄격한 인상을 주었다. 이 두상 외에도 부셔져서 잔편으로 나온 여인 두상이 여럿이었다. 잔편을 조사해보니 실제의 사람보다 세 배나 큰 인물상도 있었다. 아주 크게 만든 돼지용(돼지의 몸체를 용형산으로 표현한)도 나왔고 새 등 다양한 동물의 조각상도 나왔다.
홍산 문화의 지역에서 발굴한 여인상은 대부분이 나체상이고, 책상다리 자세를 하였다. 신발을 신고 있는 소조상도 있었다. 여인상은 거의 대부분이 임신을 한 모습이다. 홍산문화의 유유적지에서 발굴한 여인상을 통해서, 이들은 신전에 모셔진 여신이며, 임신을 한 모습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했던 그 시대 사람들의 신앙 형태를 알 수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제일 바라고 바랐던 소망은 배불리 먹는 일이었다. 사람은 바로 노동력이다. 식량을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식량을 얻기 위해서는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 노동력과 직결되는 사람이 많아야 식량도 더 많이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풍요와 다산’이었다. 풍요와 다산은 모든 고대인의 염원이었다. 여인의 몸에서 생명이 태어난다는 신비성으로 여인을 신격화 하여 신앙으로, 종교로 격상시킨 모신신앙이 유행했다. 모신 신앙은 모계사회와 맞물려 있다.
여인 모양을 한 주전자는 거의가 앙소문화 지역에서 발굴하였다. 미술사 책에서 가장 많이 소개한 여인상(사진)은 여인머리를 조각한 주전자이다.(帶流人頭像) 이런 형태의 주전자는 제사 때 사용한다. 전체의 높이가 23cm나 됨으로 실제로 사용하는 주전자였다. 얼굴의 모양은 약간 위로 처다보는 자세이다. 입 모양은 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상당히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주전자 뿐아니고 다양하지만 항아리 모양을 한 항아리도 있다. 항아리의 불룩한 배는 임산부를 연상시킨다.
후기로 가면 남성성기를 뚜렷하게 표현한 나체 소조상도 나온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시대가 변할 때는 구체제와 신체제가 혼용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녀의 성기를 함께 표현한 것도 있다. 더 나아가면 석조(石祖-돌로 만든 남근상)가 나타난다.
대류인두상은 입모양이 노래하는 모습이다. 제사는 유교식 제사가 아니고, 무당이 굿을 하는 형식에 가깝다. 춤과 노래가 따른다. 노래말을 통하여 절대자가 기원을 하는 수도 있고, 절대자에게 찬가를 보내는 수도 있다. 고대 제사의례에서 춤과 노래가 따르는 것은 필수이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바뀌면 여신들은 모두 숙청당해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형식으로든지 후대에 흔적을 남긴다. 중국의 여와, 서왕모, 항아 등은 모두 모계시대의 여신이 남겨두고 간 흔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