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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은 부귀영화, 건강과 장수, 가족의 행복등으로 복있는 사람인 지 아닌 지를 판단합니다. 특히 재산 정도를 따지며 재물이 많고 적음에 따라 ‘복받았다’ ‘복받지 못했다’ 판단하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사람들은 잘사냐? 못사냐?라고 물으면서 재산이 많으면 잘 사는 사람, 재산이 없으면 못사는 사람이라고 판단합니다. 재산이 ‘잘 삶’과 ‘못 삶’의 기준이 되는 이상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돈벼락 맞아봤으면 좋겠다’ ‘원 없이 돈 한 번 쓰고 죽었으면 좋겠다’ 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얻은 학위가 자랑거리가 되고 지식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권력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재물, 지식, 권력을 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 결국 그게 복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재산을 많이 가지고 명예를 크게 얻고 권력을 누리며 살아가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을 잃고 병원에 누워서 지내게 될 때가 되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건강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건강과 무병장수를 복의 기준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려야 할 근본적인 복은 방금 말씀드렸던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땅에서 진짜 소중한 복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복을 갈망하며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와 여러분은 어떤 복을 발견하고 어떤 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정말 우리가 누려야 할 복이 뭔지 제대로 깨닫고 참 복된 인생을 살며 진정한 복을 누리는 인생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가 참된 복을 누리는 은혜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누려야 할 복,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참된 복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사역을 보며 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복을 받았냐?’ ‘복을 받지 못했냐?’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볼 ‘영적 지식이 있냐? 없냐?’로 판정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2절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상에 존재하는 큰 종교중 하나의 종교의 창시자, 혹은 그런 사상을 만들어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계 사상사에 있어 4대 성인 중의 하나로 생각하며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교회 나와 예배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늬만 기독교인이지 참된 예수님의 사람, 천국백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어떤 위대한 선지자 혹은 세상의 큰 종교 창시자로 생각하여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유명한 연예인이나 내가 존경하고 따르는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있습니까? 이런 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진짜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닙니다. 저는 유명 정치인들도 많이 알고 유명 연예인들도 많이 알고 TV에 나오는 유명인은 모두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들은 저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알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알까요? 정말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 혹은 ‘예수님에 대해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라고 하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예수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아는 사람,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위대한 인물이고 뛰어난 일을 했던 유명하신 분이시기에 믿는 것이 아니고 내 삶의 구세주, 내 영혼을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과 영적인 삶을 허락하셨기에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아닌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요한일서 5장 20절입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에베소서 4장 13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취해야 할 지식, 꼭 가져야 할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영원한 생명을 깨닫게 되는 것은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우리가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26절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세상에서 온갖 학식을 가지고 똑똑한 사람들로 소문난 사람들입니다. 즉, 인간의 모든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연구하며 인간의 머리로 뭔가를 찾아내는 사람들입니다. 지성을 가지고 합리적인 사고로 생각하며 세상의 지식을 논리정연하게 깨달아 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런 사람들이 천국을 발견하지 않고 오히려 뭘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어린아이들이 천국을 발견하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간절함과 백지같은 무지함이 오히려 천국을 발견하기 쉽다는 말씀입니다. 이 ‘무지함’은 ‘순수함’과는 다릅니다. 간혹 ‘어린 아이들이 순수하다’느니 ‘죄가 없다느니’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죄인으로 정해져 있고 태어날 때는 죄인인 상태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천지창조 이후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로 이 땅에 오는 모든 인간은 어머니 배속에 생명이 잉태되기 전부터 죄인이며 더러운 존재, 지옥불에 던져질 운명인 상태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괴롭히고 형제와 다투고 주변의 사람들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오늘 본문에서 어린아이에게 천국을 나타내시고 어른들은 천국을 깨닫기 힘들다고 말씀하실까요?
마태복음 18장 3, 4절입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성경 말씀을 근거로 어린아이도 죄인이고 악한 존재라고 말씀드렸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실까요? 어린아이는 스스로 뭔가를 해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부모님에게 간절하게 매달리며 힘이 쎈 어른들에게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가 죄가 없기에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은 능력이 부족해서 자기 스스로 뭔가를 해내지 못하기에 항상 부모님과 어른들에게 간절히 매달려서 해결하는 존재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 4절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못하니 하나님이 다 해주셔야 하고 나는 부족하니 어떻게든 예수님께 매달려야 하고 나의 능력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니 성령님의 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찾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은 것을 아는 것이 천국 백성이라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참된 복을 받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참된 복은 예수님을 정말 알고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속에서 예수님과 내가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누려야 할 복, 둘째는 주안에서 쉼이 복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 “수고하고”라는 말에는 “피곤을 느끼다. 힘들게 일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많은 일들을 해서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에 지친 상태를 말합니다. 몸이 고달플 정도로 지나치게 일하거나 그것 때문에 피로가 지나치게 쌓이고 쌓인 상태를 “수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과로” 상태에 빠질 만큼 일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무거운 짐진 자”라는 말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억눌린 상태, 어려운 일로 인해 짓누르는 압박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내 욕심을 위해 쉴 새 없이 일하거나 내 출세를 위해 나를 짓누르는 상태, 어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쉴 새 없이 일에 파묻혀 살다가 몸이 고달프고 몸이 혹사당하는 일을 나타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이 더 이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몹쓸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전혀 나를 돌보지 않고 일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교회 일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후에 제가 깨달은 것은 주님을 위해 내가 헌신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나의 어떤 업적을 쌓기 위해, 내가 다른 사역자보다 더 인정받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지, 무엇이 본질인지를 모르고 내 자신이 세운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수고한다면 그것이 교회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를 상하게 만들고 나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시달린 사람들, 좌절하고 낙담하는 사람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내게 오라”며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부르실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그 이유를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찾는 사람, 예수님에게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쉼,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안식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로 오기만 하면, 누구나 쉴 수가 있습니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시원한 냉수를 마셨지만 금방 목마른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 안에서 쉬는 것은 완전한 편안함, 완전한 안식, 완전한 휴식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참된 쉼을 얻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께서는 “돈 없는 자, 목마른 자”도 와서 하나님 주시는 귀한 선물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주시는 귀한 포도주, 하나님 주시는 귀한 젖을 돈 없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것이지만 우리가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주 예수님을 찾아와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것을 받아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께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갈망할 때 세상에서 그 도움을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 38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계시록 22장 17절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즘은 폭염 속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길거리에 에어컨 설비가 된 버스정류장을 설치하고 어떤 경우에는 버스 정류소에 생수를 준비해 두고 무료로 꺼내 먹도록 해 놓은 곳도 있다고 합니다.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생수가 필요하고 열병을 막기 위해 시원한 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시원한 생명수를 받아 마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오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수를 마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목마른 우리를 부르십니다. 피로에 지쳐 있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그 누구일지라도, 참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다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면 참 평안을 얻고 완전한 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육체적인 고통도 해결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를 짓누르는 수 많은 근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맡겨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복된 은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누려야 할 복, 마지막 셋째는 주님 멍에를 함께 하는 것이 복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멍에’가 무엇일까요? 멍에는 말이나 소의 목에 얹어서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둥그렇게 생긴 막대입니다. 두 마리 이상의 소를 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혹은 밭을 갈 때 주인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 등에 짊어지게 만든 나무틀이 바로 멍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소나 말이 메는 멍에를 우리가 메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그것은 바로 가축이 주인이 시키는 대로 말을 듣듯이 우리도 주인의 명령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도 멍에를 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멍에를 쓰신 예수님께서 그 멍에를 우리도 함께 쓰며 예수님께서 움직이는 방향으로 우리도 함께 움직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지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함께 움직이는 것이 기쁨입니다. 반대로 세상과 접하며 세상 사람들과 멍에를 같이 할 때 우리는 멸망의 인생, 죽음의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멍에를 메라’고 명령하신 그 말씀은 ‘세상의 멍에’, ‘죄의 근원이 되는 탐욕과 욕심의 멍에’를 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주인이신 예수님 닮은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갈라디아서 5장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탐욕의 멍에를 메면 사람의 일을 생각합니다. 인간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세상적 가치관의 우리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멍에를 지면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며 하나님의 가치관, 영적 가치관을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의 가치관속에서 하나님의 일만 생각하며 사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맨다면 우리 또한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셨던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아무도 어른이 되지 않는다. 아이로서 나이를 먹을 따름이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키도 다 크고 배울 것도 다 배워 알아도 성숙하지 못하면 여전히 아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아이, 수염이 덥수룩한 아이, 흰머리가 힐긋힐긋한 아이, 지팡이를 짚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성장했다고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야 완전한 인간이 됩니다. 어른다운 어른,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성장했다고 신앙이 성숙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좋은 듯 보이지만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교회 생활은 오래했기에 직분은 무겁고 맡은 일은 많고 교회에서는 인정받는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인은 맞는데 신앙인이라고 보기 힘든 사람, 중직자이긴 한데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멍에를 요구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30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 예수님을 따르는 순종이라는 멍에를 우리가 깨닫고 그 멍에를 기쁨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께 매여 예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고통이겠지만 오히려 그런 신앙인으로서 삶이 우리에게 쉼과 같은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멍에가 행복입니다. 구속되는 것이 자유입니다. 멍에를 질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주님 멍에를 같이 지고 주님과 동행한다면 우리는 참된 인간의 인생, 복된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우리 주 예수님의 멍에를 매는 복을 누린다면 주님 믿고 따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땐 고통이라도 우리는 전혀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힘든 일도 주님 은혜 속에서 일이 잘 진행되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인생을 산다는 것이 정말 불가능하고 어렵겠지만 그런 삶이 가능하고 그런 삶 속에서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것입니다. 멍에를 짊어지는 것이 주안에서 쉬운 삶, 가벼운 인생이 되는 것을 체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가 이번 주 목요일 마을회관에서 815 고주리마을 섬김의 날 잔치를 진행합니다. 그전에 가가호호 선물도 전하며 복음도 전하며 사랑을 전하는 시간을 갖고 마을회관에서 무료이미용봉사도 하고 점심시간에서 함께 식사시간을 가지며 오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은혜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나누는 공연을 펼칩니다. 이런 시골교회가 없습니다. 이런 시골마을이 없습니다. 정말 이런 사역이 어떻게 가능했는 지, 또 이번에도 어떻게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이게 복받은 사람이 누리는 역사인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으로서, 우리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는 백성으로서, 우리 주님께서 지신 멍에를 함께 진 하나님의 종이 되었기에 이런 복을 누리게 된 것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것이 인간적으로 보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참된 안식이 되었고 참된 거룩한 사역이 되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되었고 어려울 것 같은 일이 쉽게 되었습니다. 이번 815 고주리마을 섬김의 날을 준비하면서도 이것저것 참 쉽지 않을 것 같은 일도 많았고 정말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영적 전쟁을 느낍니다. 사탄마귀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발악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이 사역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짓누르는 것을 느낍니다. 건강의 문제로 걱정하게 만들고 사역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에서는 하나님께서 승리해놓으신 것, 하나님께서 이기신 그 싸움을 우리가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고주리마을의 인간관계도 많은 불협화음을 심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역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며 미리 준비시켜 놓으시는 역사를 사역을 준비하면서 체험했습니다. 8월 15일 목요일 당일 사역도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나가면 우리 주 예수님만 의지하며 사역한다면 결코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다 하시기에 은혜로 역사가 이뤄지는 것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고주리교회 성도들, 그리고 이번에 함께 하시는 안산동산교회 11교구 식구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