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당신이』(길옥윤 작사/작곡)는 1970년 발표한 당시
잉꼬 부부였던 시절 '길옥윤', '패티김'이 발표한 곡입니다.
6·25전쟁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
했던 1959년 한국의 대중음악사는 그 이후로 30년 이상을 통치 하게
될 두 사람의 위대한 디바(Diva)를 데뷔시킵니다.
한 사람은 엘레지의 여왕으로 제2의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게 되는
'이미자'.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미 8군 쇼 무대에서 발아한 새로운 음악
양식인 스탠더드 팝의 여왕인 '패티김(본명 김혜자)' 입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풍의 발라드로 1950년대의 미국 백인 사회를
장악했던 금발의 스탠더드 팝 뮤지션 'Patti Page'의 이름을 딴
'패티김'의 신화는 1960년대와 함께 시작된 TV의 시대에 이르러 아름
답게 개화(開花)하게 됩니다.
한국의 TV 브라운관은 매혹적인 풍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을 두루
갖춘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오리지널 히트곡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1966년 동양방송은 '패티김 쇼'라는 고정 프로그램을 헌사했고,
이 방송의 정규 멤버 중의 한 사람인 색소폰 주자이자 작곡가 '길옥윤'은
'패티김'에게 어쩌면 첫 오리지널 히트곡인 "사월이 가면"을 헌정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해 말 결혼식을 올렸고 '패티김-길옥윤' 2인 3각의
전성시대가 개막됐습니다. '패티김'의 목소리는 장르의 한계를 초월합니다.
'대형 가수'라는 영예로운 별칭이 주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국악원(國樂院)에서 전통 음악과 남도 창을 배웠고
국악 콩쿠르에서 서울 시장 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홍난파의 '봉선화'를
녹음한 것으로 유명했던 소프라노 '김천애'에게 성악(聲樂)을 사사(師事)
했습니다. 미 8군 쇼 무대를 통해 대중 음악으로 데뷔한 '패티김'은 데뷔
하면서 부터 Global한 행보를 과감하게 내디딥니다.
일본 음악계의 거물인 재일 교포 '와타나베 히로시'의 초청을 받아 그의
빅 밴드 [Stardust]의 전속 보컬리스트로 명성을 높였고, 이후 '패티김'은
미국의 프로모터 '밥 맥머킨'에게 스카우트 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뮤지컬 무대에 섰으며, NBC의 '투나잇 쇼'에서 "Summer Time"을
불렀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그녀의 무대 장악력은 1960년대 전반 일본과
미국의 무대를 종횡무진한 다양한 경험에서 구축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귀국한 그녀는 1966년 '최창권'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주연을 맡아 동명(同名)의 주제가를 성공시켰고 '박춘석'이
작곡한 "초우"를 영화 주제가로 불러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냅니다.
이 곡은 30년 뒤 대중 음악계가 뽑은 애창곡 100곡 중 7위로 선정됐습니다.
인생과 예술 모두의 동반자가 된 '길옥윤'과의 히트곡 행진은 일일이
밝히기 조차 힘듭니다. 1969년 "사랑하는 마리아"에서 이듬해
"사랑이란 두 글자", "사랑하는 당신이", 그리고 파격적인 판탈롱 패션을
선보인 1971년 "님에게"로 이어지는 사랑의 행진은 '패티 김'의 성가
(聲價)를 한껏 드높였습니다. 그리고 서울시의 위촉을 받아 만든
"서울의 찬가"(1969)는 '패티 김'에게 '국민 가수'의 휘장을 가슴에 달아
주었습니다.
압도적인 성량과 극적인 표현력을 지닌 그녀의 목소리는 일제(日帝)
강점기와 전쟁을 딛고 근대화를 향해 질주하던 1960, 70년대 한국
사회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당당한 여왕이었고 당시 여성 엔터테이너로서는 치명적
일 수도 있었던 이혼(1973)의 위기도 노래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이혼을 암시하는 그의 최대 히트곡 "이별"(1972)과
이혼을 발표한 날 밤 '길옥윤'이 만들어 이듬해 동경 음악제에서 동상
(銅賞)을 차지한 大曲 "사랑은 영원히"가 발표됐습니다.
두 명곡으로 이 부부의 이혼(離婚)은 그들의 결혼을 넘어서는 세기의
이혼이 됩니다. '길옥윤'과의 마지막 인연인 "사랑은 영원히"에서
패티김이 보여준 오페라 틱한 절창(絶唱)은 '박춘석'과 콤비를 이룬
"추억 속에 혼자 걸었네"를 지나 1983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이 후기의 대표 곡은 1970년대의 명곡 "사랑이여 다시
한번"과 쌍벽을 이루는 가곡 풍 대작으로 오늘날까지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패티김'은 196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는 서구적 발라드의
초안자이며 동시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도 합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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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이 울어버리면
난 몰라 난 몰라
나도 같이 덩달아 울어버릴까
난 몰라 난 몰라
아니 아니 울지 말고 달래줘야지
쓰다듬고 안아줘야지
끝없는 내 사랑 당신이니까
사랑하는 당신이 화를 내시면
난 몰라 난 몰라
나도 같이 덩달아 화를 낼까 봐
난 몰라 난몰라
아니 아니 무릎 꿇고 빌어야 하지
그러면은 용서하겠지
정다운 내사랑 당신이니까
사랑하는 당신이 먼저 죽으면
난 몰라 난 몰라
나만 혼자 남아서 살 수 있을까
난 몰라 난 몰라
아니 아니 나도 같이 따라 갈테야
사랑하는 당신 곁으로
둘이는 나란히 잠이 들 거야
루루루 루루루 루루루 루루루 루루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