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조용히 쉬는 시간이다. 마치 구멍이 뚫린 듯 퍼붓던 눈발이 뚝 끊겼다. 세상은 어마어마한 적막 속에 잠겨 있다. 차를 마시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작은 주전자’ 동요를 흥얼거리면서.
나는 작고 통통한 주전자
손잡이 하나 주둥이 하나
뽀글뽀글 물이 끓으면
쭉 기울여 따라주세요
뽀글뽀글 랄라랄라 뽀글뽀글 라라랄라
주전자에서 ‘톡톡 떼르르’ 알맹이 구르는 소리가 난다. 쇼팽의 ‘빗방울’ 같은 소리를 기점으로 ‘치익’하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이내 구수한 냄새가 사방에 번져 난다. 나는 이렇게 옥수수차를 끓여 마신다. 생수도 수돗물도 믿을 것이 못 되기에 원시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보리차나 옥수수, 때로는 둥굴레나 결명자를 계절에 따라 바꾸어 끓인다. 결명자를 끓여 차갑게 식혔다가 유리잔에 따르면 가네트 빛깔의 보석이 거기에 담겨 있는 듯하다.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목 안을 적시는 기쁨을 만끽한다.
때로는 도라지도 한 조각 넣고 영지버섯도 넣고, 결명자며 산수유, 대추도 조금 넣고 끓인다. 뭘 알고 넣는 게 아니라 그저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넣는다. 주전자의 물을 끓이노라면 집안이 훈훈해진다. 물이 끓는 소리, 그리고 차 한잔의 행복. 삶이란 아주 가끔씩 나를 멈추는 행복 속에서 사는 것이다. 나를 멈추면 그 속에 비로소 완벽한 행복이 존재한다.
때마침 주전자에 물이 거세게 끓기 시작하며 김을 내뿜고 있다. 잠시 떨림이라고 생각했다. 비등점. 나에겐 이 비등점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늘 끓기 전에 멈춰버렸거나 식은 내 몸과 영혼을 달래며 다시 끓기 직전까지 올려놓는 데도 오래 걸렸다. 돌아보면 반복을 하고 있었다. "괴로움이 비등점에 이르면, 무언가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그곳을 바라보고만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곳을 향하여 늘 심지를 달궈야 한다는 것이다.
한 주전자 잘 끓인 물을 컵에 쭈르르 따른다. 두 손은 컵에 대고 뜨거운 물이 만들어 내는 그 따뜻한 열기를 먼저 즐긴다. 손을 댔다가 ‘앗 뜨거!’ 하며 얼른 떼고선 또다시 댄다. 뜨거운 걸 알면서도 뜨거운 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후후후 불어 홀짝거리는 물맛이라니. 따끈해서 좋다. 몸이 훈훈해서 좋다. 이윽고 몸이 편안해진다. 무엇보다 잔뜩 긴장해 있던 마음이 녹느라 누글누글해져서 좋다.
문득 어린 시절 시린 손 호호 불며 주전자 들고 막걸리 받으러 가던 추억이 떠오른다. 고사리손에 주전자 들고 고개를 넘던 기억은 아버지와 관련된 소중한 추억 중 하나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전방 중대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중대행정실에는 커다란 연탄난로가 있었다. 당번병이 언제나 난로 위에 누런 양은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덕분에 행정실 내에는 보리차 끓는 냄새가 언제나 구수하게 났다. 그곳에서 행정병들은 내가 부재중일 때 군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난로 위에 양은 냄비를 올려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행정실에서 이루어지는 사병들의 일탈을 나는 알고도 모른 체하며 넘어갔다. 50여 년 전 일이다.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다. 추억은 그토록 힘이 세다.
겨울엔 큼직한 주전자로 끓여 낸 물이 있으면 며칠은 목마를 걱정이 없다. 밥 먹고 사이사이 속이 허전할 때 이것저것 군것질하는 대신 잘 끓인 물 한 컵을 마시면 시들었던 몸이 푸득푸득 펴지는 걸 느낀다.
몸이 늘 피곤해 읍내 동네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나를 잘 아는 의사가 말했다.
“물을 많이 드세요. 몸에 수분이 적어서 오는 피로감입니다.”
의사는 약 처방도 하지 않고 나를 돌려보냈다. 그 후 나는 알아서 대추며 도라지 등속을 조금 조금씩 넣어 끓여 마신다.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 주전자는 그렇게 목마른 나의 목을 축여준다.
사실 나는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신다. 하지만 술자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탁주라거나 소주 한 병을 주전자에 부어 보면 안다. 주전자가 얼마나 마음 씀씀이가 넓은지, 고단한 인생 때문에 목말라하는 이들의 목과 마음을 얼마나 촉촉이 적셔주는지.
“자 한잔 받게나. 빈 잔을 내미는 뒷배에 마음을 기울여 주는 주전자가 있다. 주전자는 스스로 배가 불러 언제나 가진 것을 아낌없이 부어준다. 그가 죽마고우든 아니면, 처음 만나는 친구든, 아니 지금은 척지고 사는 이웃이든, 그와 마주 앉으면 나보다 먼저 마음을 써주는 것이 주전자다. 주전자는 상대를 향한 나의 닫힌 마음과 상관없이 술 한 잔씩 가득 채워준다.
주전자엔 그런 오랜 약속처럼 인정과 우정과 사랑과 관심을 채워주는 좋은 성품이 있다. 그렇게 서로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면 이내 몸은 훈훈해지고 벽은 허물어지고 굳었던 마음이 이윽고 말랑말랑해진다.
내 시골 친구 중 술병으로 술을 마시지 않고 주전자에 부어 마시는 친구가 있다. 예의가 아니라는 거다. 그는 식당이건 포장마차건 술을 마실 때면 꼭 주인에게 주전자를 청한다. 술병에 술이 줄어드는 걸 빤히 보면서 마시면 술이 풍기는 넉넉한 정이 사라진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술은 주전자가 적격이지” 그의 말대로 주전자는 오랫동안 우정과 회한과 목마른 인생을 적셔주는 일에 한몫을 해왔다. 늦었지만 나도 누군가의 빈 잔에 마음을 기울여 주는 주전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