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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象牙塔)
속세를 떠나 오로지 학문이나 예술에만 잠기는 경지.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생트뵈브가 낭만파 시인 비니의 태도를 비평하며 쓴 데서 유래한다. 대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象 : 코끼리 상(豕/4)
牙 : 어금니 아(牙/0)
塔 : 탑 탑(土/10)
(상대어)
우골탑(牛骨塔)
예술지상주의의 사람들이 속세를 떠나 정적한 예술만을 즐기는 경지, 또는 학자들의 현실도피적이고 관념적인 학구생활을 비유한 말이다. 한편, 대학 또는 대학의 연구실을 지칭하는 말로 전용되기도 한다.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정적(靜寂), 고고(孤高)한 예술지상주의 입장을 취한 19세기의 프랑스 시인이자 비평가인 생트뵈브가 낭만파 시인 비니의 태도를 비평하며 쓴 데서 유래한다.
프랑스 낭만파 4대 시인의 한 사람인 A. 드비니는 여성은 구약성서 가운데의 데릴라 같은 존재이며, 자연은 아무 위안도 주지 않고, 하나님도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채 영원의 침묵을 지킬 뿐이라고 했으며 하늘과 땅과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묵묵히 죽어가는 것이 최대의 덕(德)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정적(靜寂)이고 고고(孤高)한 예술지상주의의 입장을 취했다.
이에 프랑스의 비평가 생트뵈브는 이러한 비니의 시(詩)가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다고 말했다. 예술지상주의 경향을 평가하며 상아탑(象牙塔)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후에 상아탑(象牙塔)의 사전적 해석이 변하게 되는데 학자들이 오로지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실 또는 예술지상주의의 사람들이 속세를 떠나 오로지 예술만을 즐기는 지경을 가리키는 말로 변하게 된다. 또 여기서 유래가 되어 현실과 거리가 먼 정신적 행동의 장소라는 개념으로, 유럽 대학들이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참고로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동족(同族)들이 죽은 장소로 모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코끼리의 무덤은 상아만이 남아 탑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육중한 몸은 다 썩어 없어져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상아가 코끼리의 진수이다. 뭐 이런 의미에서 상아탑(象牙塔)이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을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상아탑(象牙塔)
상아탑이라는 말의 기원과 그것이 왜 대학을 가리키게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상아로 만든 탑’이라는 표현은 성경의 아가서 7장 4절에서 성모의 목을 고귀하고 순결한 것으로 묘사하면서 사용되었고, 중세에는 채색 필사본에서 성모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상아탑이 오늘날의 의미로 사용된 최초의 사례는 19세기 프랑스의 문학 비평가 '생트 뵈브'가 동시대 낭만주의 시인 '드 비니'를 비판한 글에서 등장한다. 생트 뵈브는 사회 참여적 작가 빅토르 위고를 갑옷 입고 싸우는 전사로 비유하는 반면에 드 비니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상아탑으로 물러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후로 현실을 벗어난 학문 태도나 예술지상주의를 상아탑에 비유해 표현하게 됐고, 특히 영어권에서 상아탑은 부정적인 의미로 대학을 가리키며 많이 사용돼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대학의 모습을 상아탑이라고 부르며 비난할 수 있을까? 법인화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이미 20세기 말 이후 서울대를 비롯한 한국의 대학들은 세계화, 상업화와 더불어 기성 질서에 편입해 국가나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이끌려가며 그 기호에 맞는 연구에 초점을 맞춰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변했다. 대학은 이제 학문의 전당이자 현실에서 벗어난 상아탑이 아니며, 독립성을 잃고 외부의 이익들로부터 끊임없이 간섭을 받으며 사회에 포섭된 것이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서울대를 포함한 대학 정책이 회자되고 있는 것도 대학의 위치가 변화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인 서열화라는 것도 결국 학문에서의 서열화가 아니라 사회 구조 내에서의 서열화를 의미한다. 이렇게 대학의 현재 모습은 고귀함이나 순결함과는 거리가 먼, 이익을 추구하며 경쟁하는 사회 집단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바뀐 대학에서 학생들은 세상에 대해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존재로서의 지식인이 아니라, 기성 질서에 순응하는 상품화되고 기능적인 지식인이 되고 만다.
사실 한국의 경우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부를만한 적이 없었다. 80년대까지는 부당한 사회에 저항하도록 요구받아왔으며, 이후에는 점차 사회 구조에 편입돼 요구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만 중점을 맞춰왔다. 그 결과로 양적인 팽창을 통해 세계대학평가 순위에서는 가시적인 향상을 보여줬지만, 실제로 격변하는 시대에서 대학이 사회를 선도하거나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홍콩에 교환학생을 가서 느꼈던 점 중 하나가 홍콩 학생들은 졸업 후 경력에 대해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대학에서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순진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자유로운 시스템 속에서 세계적인 석학들의 수업을 들으며 큰 꿈을 키워가고 있어 부러움을 느꼈다.
홍콩정부가 기본적으로 대학 교육에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홍콩의 모든 대학들은 외부의 간섭을 덜 받으며 대학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홍콩 사람들은 대학의 서열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모든 대학들이 고르게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대학 정책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대학의 기본적인 역할에 대한 성찰이 근본적으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학이 고등 교육기관으로서 국민들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사회의 이익에 휘둘리지 않는 상아탑으로 변해야 한다. 대선을 앞둔 최근의 논의들이 대학이 추구해야할 가치를 재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상아탑(象牙塔) 정신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연구해야 할 상아탑이 무너지고 있다. 입시와 취업문제가 대학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상아탑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근 한국의 상아탑들은 진리를 탐구하고 인재를 양성한다는 대학 본연의 사명감을 망각한 채 자신들의 입지만을 내 세우며 경제논리에 치우치고 있다. 또 개인의 영달을 위하고 패거리문화를 조장하는 정치판에 끼어 욕망을 펼치려하는 모습들이 역력하다.
아마도 상아탑은 학문이나 예술지상주의를 뜻하는 단어로써 정치, 경제와는 동떨어져 진리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상아탑은 원래부터 구약성경 아가 7장 4절 “너의 목은 상아로 만든 탑 같다”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또 현대적 의미로 상아탑은 프랑스의 비평가 샤를 오귀스탱 생트뵈브가 쓴 tour d'ivoire라는 표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즉, 문학평론가 생트뵈브는 현실에 초연한 시인 알프레드 비니를 상아탑 안에 스스로를 가둬 두고 살았다라고 평했고 이것이 상아탑이라는 말의 기원이 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대학의 본질적인 문제는 대학내부의 시각에서 성찰하고 연구해 진리를 추구함은 물론 대학의 이념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상아탑의 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정치적 불안심리와 경제적 위축심리가 작용해서인지, 상아탑 본질이 사라지고 상아탑 정신까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다. 다시 말해 학생들 마음 저변에 깔려있는 현실적 상아탑은 권력과 돈이다. 권력과 돈을 어떻게 거머쥘 것이며 어떠한 방법으로 자기화 시킬 것인가에 혈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리탐구와 실용을 둘러싼 상아탑의 현실은 미묘한 긴장감을 빚어내고 있다 할 것이다. 시대의 변화속에서 상아탑 정신을 들추고 상아탑의 본질을 논한다는 것은 뒤쳐진 생각으로 오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래의 대학들이 세계화와 선의의 경쟁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상아탑 정신의 진리탐구와 학문탐구는 불변하리라 믿는다.
우리나라에 근대교육이 시작된지는 어언 백년이 남짓하게 되었다고 한다. 흔히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로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곤 한다. 한 때는 어디를 가나 해마다 늘어나는 적령아들의 증가로 우리나라의 교육기관은 해마다 늘어나고 농어촌에도 초등교육기관은 말 할 것도 없이 중고등학교도 읍면 단위를 기준으로 많이 늘어 나고, 이제는 대도시로 가지 않고도 중,고등교육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여건으로 전국 어디를 가나 학교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교육의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게 된지도 오래 되었다.
우리네 부모들은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교육의 헤택을 받을 수 없고, 본인들의 못 배운 한을 자식들에게는 남기지 않기 위하여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너도 나도 자식들을 진학을 시키고, 공부를 하라는 채근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교육이 양(量)보다는 질(質)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된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고 하는 제도로 누구나 배워야 한다고 생각되나 고등학교부터는 적성도 생각하고, 특기와 소질을 살리는 교육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도 생각하고, 국가의 미래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무엇으로 사회를 위하고,국가의 일익을 담당하는 국민으로서 본분을 다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대학을 진학하고, 전공을 선택하고, 학문을 연구해야 하는 가를 생각해야 하나 그렇지 못한 교육여건으로 우선은 들어가고 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대학의 문을 두드리고 어려운 경쟁력을 뚫고 대학에 입학을 하고는 4년 동안 무위도식(無爲盜食)으로 세월만 죽이고는 막상 졸업을 하고 나면 갈 곳은 많아도 오라는 데가 없으니 고등실업자로 전락하고 해마다 고급인력이 일자리를 찾아서 헤메야 하는 잠재적인 실업자로 이들이 정부를 비판하고 정치를 잘못 하고 있다는 비판세력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불만세력으로 정부가 하는 일을 두고 사사건건 비판으로 국민들의 단결을 저해하는 반정부세력으로 국익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시대로 만들고 있는 주체세력으로 국론을 분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면 과히 틀리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200개가 넘는 대학으로 전국에서는 해마다 수십만명의 4각으로 된 학사모를 쓴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들을 받아 들일 만큼의 사회구조는 되어 있지 못하고 많은 학사 출신의 국민들은 전공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생소한 분야에서 다시 배워야 하는 실정으로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라고는 졸업을 하는데 필요한 학점이나 따고 학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야만 했으니 실사구시(實事求是)가 되지 못하고 졸업을 하고는 다시 배워야 하는 실정으로 해마다 많은 수의 대졸자들이 자기의 학력을 숨기고 적성과 특기에 맞는 특성화된 전문대학에서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교육을 다시 받는다고 하는 사실이 한국의 고등교육의 현실이라고 하면 틀리지 않는다.
한 때는 대학을 두고,학문의 전당이라고 하여 상아탑이라는 이름으로 배움의 권위를 생각하고 연구의 상징으로 여겼으나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고 농촌의 학생들이 농우(農牛)를 팔고 농지(農地)를 팔아서 등록금을 마련하여 공부를 하게 된다고 하여 우골탑(牛骨塔)으로 상징하기도 하였으나 이 때만 해도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생활이 낭만이 있고 젊음이 있는 학창시절을 보내며 꿈을 키울 수 있었으나 이념의 갈등에 여론의 지배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곳이 대학으로 툭하면 정책을 반대하는 데모에 투쟁으로 학생들이 동원되고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해야 하던 시절에는 대학가에는 최류탄이 날아다니고 사찰형사(司察刑士)의 난입으로 대학은 상아탑(象牙塔)도 우골탑(牛骨塔)도 아닌 최류탑(催溜彈)이나 눈물탑으로 전락을 하고 말았으니 대학은 국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대학따로 국민따로 완전한 따로국밥 신세로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들이 학문의 연구는 뒷전으로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본거지로 이념의 틈새에서 갈등을 겪어야 했으나 이제는 대학들이 본연의 임무인 연구와 강의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교수는 연구에 학생은 강의를 들으며 꿈을 키우는 전당으로 발전하고 있으나 너무나 많은 대학으로 학문의 권위는 바닥을 헤메고 사각모를 쓰고 사회에 나오게 되면 지도적인 위치에서 국민들은 지도해야 하나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호구지책(胡口之策)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이는 대학이 너무나 많이 생기고 배출하는 인력이 너무나 많은 탓으로 대학도 이제는 소수절예화(小數正銳化)로 달라져야 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상아탑(象牙塔)은 오래 지속된다
상아탑은 말 그대로 상아로 만든 탑이니 순백의 순결성을 상징한다. 그 연원과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통상 대학을 지칭할 때 상아탑이라는 표현을 쓰고 또 그 앞에 ‘진리’라는 단어를 덧붙여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쓰기도 한다. 그 표현이 아리송하여 대학시절 ‘진리의 상아탑’이 맞는지 ‘상아의 진리탑’이 맞는지를 놓고 학우들 사이에 치기어린 논쟁이 벌어졌던 기억이 있을 정도다.
상아탑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구약성경 아가서 7장 4절에 성모에게 “너의 목은 상아로 만든 탑 같고”라는 표현이 있다고 하는데 이로부터 상아탑을 성모의 상징으로 여기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한다. 순결과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상아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상아탑이라는 표현은 19세기 프랑스의 문학 비평가 '생트뵈브'에 의해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동시대의 낭만주의 시인 '드 비니'를 비판하면서 현실과 유리된 순수 예술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의미에서 이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로부터 현대적 의미의 상아탑이라는 표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서구 사회에서 대학을 상아탑에 비유할 때는 현실로부터의 도피 또는 외면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여전히 내포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상아탑은 현실의 부당한 압력 속에서도 자유와 진리의 가치를 지켜내는 공동체라는 다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상아탑 앞에 ‘진리’라는 용어를 덧붙여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경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상아탑이라는 표현이 유래한 서구 사회에서도 그 의미가 변화해 왔으니 우리나라에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아니다.
상아탑이 우리나라에 와서 ‘자유와 진리의 공동체’로 탈바꿈한 데는 나름의 역사적 이유가 있다. 지금은 이미 먼 과거의 일처럼 여겨지지만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엄혹한 독재 정권의 치하에 있었다. 그 속에서 학문과 사상, 양심의 자유는 가히 말살이라 할 정도로 억압되었고,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는 것이 역사의 당연한 이치이듯이 독재 정권의 억압이 거셀수록 그에 맞서 학문과 사상, 양심의 자유를 지켜내려는 노력 또한 세차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 당연히 대학이 있었고, 그러한 연유로 대학을 의미하는 상아탑이라는 표현이 자유와 진리의 공동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민주화와 더불어 학문과 사상, 양심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사라지거나 현저히 감소하였다. 우리 대학이 진정한 자유와 진리의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실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독재의 논리가 사라진 자리에 시장의 논리, 자본의 논리가 들어서면서 상아탑이라는 대학의 가치가 또 다른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무한 경쟁이라는 시장의 논리 속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대학 본연의 사명인 것처럼 되어 버린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우리 사회의 동량이 될 경쟁력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학의 자명한 사명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동량이 될 경쟁력 있는 인재는 시장의 논리에서는 탄생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시장의 논리와 교육의 논리는 본질적으로 상충적이다. 시장의 논리에는 공공성(公共性)이라는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반면, 교육은 그 자체로 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대학은 기업이 될 수 없으며 더구나 기업의 보조기관이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기업은 새로운 소비품을 끊임없이 개발해냄으로써 생존하지만, 대학은 단기적인 소비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키워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몇 년 전부터 정부의 주도 하에 대학 개혁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시대와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대학 또한 변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대학 개혁의 철학과 방향이다. 교육과 본질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시장과 자본의 논리가 개혁의 척도가 된다면 그것은 철학 없는 개혁일 따름이다. 그리고 철학 없는 개혁은 맹목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뛰세르는 사후에 출간된 자신의 자서전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는 말로 명명한 바 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꿈, 결코 없어지지 않을 꿈과 가치를 미래에 빗대어 사용한 표현이다.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우리의 상아탑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또 그 실현이 요원해 보이기만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오래 지속된다. 알뛰세르의 미래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상아탑 또한 오래 지속된다.
▶️ 象(코끼리 상)은 ❶상형문자로 코끼리 모양으로 코와 귀의 특징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象자는 '코끼리'를 그린 글자이다. 象자는 단지 자형에 豕(돼지 시)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豕자 부수에 들어가 있지만 ‘돼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象자는 코가 긴 코끼리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는 황하 유역까지 코끼리가 서식했었다. 그래서 象자는 고대 중국인들이 직접 코끼리를 보고 만든 글자이다. 중국의 많은 역사기록에도 코끼리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고 코끼리를 본뜬 여러 유물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만을 봐도 코끼리는 고대 중국인들과 매우 가까운 동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은(殷)나라 이후 기후변화와 함께 농경문화가 확산하면서 코끼리의 개체 수는 급감하였고 지금은 동남아시아와 맞닿아 있는 일부 경계지역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코끼리가 일찍 사라져서인지 象자는 '코끼리'라는 뜻 외에도 '모습'이나 '형상'이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象(상)은 (1)장기 짝의 하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코끼리 ②상아(象牙) ③꼴, 모양, 형상 ④얼굴 모양, 초상(肖像) ⑤법(法), 법제(法制) ⑥징후(徵候), 조짐(兆朕) ⑦도리(道理) ⑧점괘(占卦: 점을 쳐서 나오는 괘) ⑨통변(通辯) ⑩역법(曆法) ⑪통역관(通譯官) ⑫문궐(門闕: 교령을 게시하는 곳) ⑬무악(舞樂)의 이름, 춤의 이름 ⑭술잔 ⑮천상(天象: 천체가 변화하는 여러 현상) ⑯상징하다 ⑰유추하다 ⑱본뜨다, 그리다 ⑲표현하다 ⑳본받다 ㉑따르다 ㉒같다, 비슷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모양 형(形)이다. 용례로는 추상적인 사물을 구체화 하는 것을 상징(象徵), 사물의 형상을 본뜸을 상형(象形), 코끼리의 어금니를 상아(象牙), 코끼리가 끄는 수레를 상거(象車), 코끼리의 뼈를 상골(象骨), 용모가 공손함을 상공(象恭), 붓을 달리 일컫는 말을 상관(象管),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목적이 되는 사물이나 상대가 되는 사람을 대상(對象), 눈 앞에 나타나 보이는 사물의 형상을 현상(現象), 온갖 물건의 형상을 만상(萬象),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하였을 때 그 대상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느낌을 인상(印象), 마음속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을 심상(心象), 관찰할 수 있는 형체로 나타나는 사물이나 현상을 사상(事象), 코끼리는 상아가 있음으로 해서 죽음을 당한다는 뜻으로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화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상치분신(象齒焚身), 여러 맹인이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뜻으로 즉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함을 이르는 말을 군맹무상(群盲撫象),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이르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우주 안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을 이르는 말을 삼라만상(森羅萬象), 천하가 태평할 때는 이를 지적하여 말할 만한 형상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태평무상(太平無象) 등에 쓰인다.
▶️ 牙(어금니 아)는 ❶상형문자로 상하 서로 물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송곳니도 아래위 교차해서 서로 물고 있는 데서 牙(아)를 송곳니의 뜻으로 빌어 쓴다. 전(轉)하여 엄니의 뜻이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牙자는 '어금니'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牙자는 윗니와 아랫니를 함께 그린 것이지만 '어금니'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牙자는 사람이 아닌 동물의 이빨을 그린 것이다. 금문에서 나온 牙자를 보면 동물의 앞니가 서로 맞물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유래와는 관계없이 牙자는 단독으로 쓰일 때만 '이빨'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발음역할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牙(아)는 ①어금니, ②대장기(大將旗) ③관아(官衙) ④말뚝 ⑤도와서 지켜주는 물건 ⑥이처럼 생긴 물건 ⑦본진(本陣) ⑧바퀴의 테 ⑨깨물다 ⑩이를 갈다 ⑪싹트다 ⑫곧지 아니하다 ⑬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상아로 만든 그릇을 아기(牙器), 장물인 줄 알면서 매매를 주선하여 구문을 받는 짓을 아보(牙保), 흥정을 붙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아인(牙人), 사고 파는 사람 사이에 들어 흥정을 붙이는 일을 하는 사람을 아쾌(牙儈), 대장이 있는 본진을 아영(牙營), 상아를 재료로 하여 만든 조각을 아조(牙彫), 이가 박혀 이어진 부분을 아계(牙綮), 입속 구석의 윗잇몸과 아랫잇몸이 맞닿은 부분을 아관(牙關), 병영의 안을 아문(牙門), 흥정을 붙여 주고 그 보수로 받는 돈을 아전(牙錢), 상아로 만든 주판을 아주(牙籌), 어금니와 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아치(牙齒), 흥정을 붙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아행(牙行), 어느 부류의 세력이 자리잡고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지를 비유하는 아성(牙城), 이의 점잖은 일컬음을 치아(齒牙), 코끼리의 어금니를 상아(象牙), 개의 이빨같이 사물이 서로 어긋나서 맞지 아니함을 견아(犬牙), 사나운 짐승의 송곳니를 대아(大牙), 호랑이의 이빨로 용사나 장수를 달리 일컫는 말을 호아(虎牙), 서로 뒤섞임을 반아(盤牙),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 즉 지기지우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을 백아절현(伯牙絶絃), 개의 어금니가 서로서로 맞지 않는 것같이 국경선이 볼록 나오고 오목 들어가 서로 견제하려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견아상제(犬牙相制), 몹시 분하여 이를 갊을 이르는 말을 교아절치(咬牙切齒), 개의 이빨처럼 서로 어긋남을 이르는 말을 견아상치(犬牙相置) 등에 쓰인다.
▶️ 塔(탑 탑)은 ❶형성문자로 嗒(탑), 墖(탑)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 흙)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荅(답, 탑)으로 이루어졌다. 탑은 흙으로 만들므로 土(토)를 덧붙였다. ❷형성문자로 塔자는 '탑'이나 '층집', '사찰'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塔자는 土(흙 토)자와 荅(좀콩 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荅자는 '답→탑'으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塔자는 사찰에 있는 탑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질 때 부처님의 형상은 알려지지 않은 채 들어왔다. 그래서 열반하신 부처님의 사리를 탑에 봉안해 모시게 되었는데, 이것이 탑의 시초이다. 그러니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축조물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탑은 인도에 존재했던 무덤 양식에서 기원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유골을 매장한 무덤'이라는 뜻에서 스투파(stupa)라고 했는데, 塔자는 이 '스투파'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래서 塔(탑)은 (1)대개 절에 세워지는 부처의 유골(遺骨), 유품, 머리카락을 안치(安置)하고, 공양(供養)하기 위하여 세운, 좁고 높은 건축물(建築物). 목재(木材)나 석재(石材) 따위를 다듬어 만듦. 후에는 영지(靈地)임을 나타내거나 덕을 앙모하는 뜻으로 세워진 것들을 두루 일컫게 됨. 삼중탑(三重塔), 오중탑, 칠중탑 따위가 있음 (2)어떤 일을 선전(宣傳), 기념(紀念)하기 위하여 세워진 높고 좁은 부분. 공(功) 등의 뜻으로 ①탑(塔) ②층집 ③절, 사찰(寺刹) ④탑처럼 생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탑에 관한 기록을 탑지(塔誌), 탑의 등불을 탑등(塔燈), 동네 어귀에 세우거나 쌓아서 동네 수호신을 상징하는 돌탑이나 돌무더기를 탑신(塔神), 건물의 옥상에 돌출한 부분을 탑옥(塔屋), 뾰족탑에서 탑의 맨 위의 뾰족한 부분을 탑첨(塔尖), 탑이 우뚝 솟아 있는 모양을 탑세(塔勢), 탑의 맨 꼭대기를 탑정(塔頂), 탑처럼 생긴 모양을 탑형(塔型), 나무로 만든 탑을 목탑(木塔), 돌로 쌓은 탑을 석탑(石塔), 뾰족한 탑을 첨탑(尖塔), 절에 있는 탑을 사탑(寺塔), 절에 세운 탑으로 부처님의 유골 즉 사리를 모신 무덤을 불탑(佛塔), 귀한 보배로 장식한 탑 또는 미술적 가치가 많은 탑을 보탑(寶塔), 한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탑을 사탑(斜塔), 불경을 안에 넣고 쌓은 탑으로 경문을 새긴 탑을 경탑(經塔), 부처의 사리를 모셔 둔 탑을 골탑(骨塔), 다리의 입구나 다리의 기둥 위에 탑 또는 문같이 만든 구조물을 교탑(橋塔), 탑 모양으로 된 꼭대기에 등이 있는 높은 시설물을 등탑(燈塔), 달걀 모양의 탑이 있는 장소란 뜻에서 묘지를 이르는 말을 난탑장(卵塔場), 우골은 학비 마련을 위해 학부형이 내다 판 소의 유골의 뜻으로 학생의 등록비를 재원으로 하여 건물이 섰다 해서 대학을 빈정대어 이르는 말을 우골탑(牛骨塔), 이집트의 피라밋을 번역한 말로 그 모양이 金자와 비슷한 데서 온 말로 길이 후세에 전하여질 만한 가치가 있는 불멸의 업적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금자탑(金字塔), 예술지상주의의 사람들이 속세를 떠나 정적한 예술만을 즐기는 경지 또는 학자들의 현실 도피적이고 관념적인 학구 생활을 이르는 말을 상아탑(象牙塔)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