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민주·인권 광주가 수십 년 학살 진압군 혼령 받들며 왔다니...
- 민선 9기, 첫 사업으로 학살 진압군 ‘상무’ 명칭 정비 나서야 -
광주가 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인 계엄군 진압작전(상무충정작전)과 이를 지휘했던 군부대 명칭 ‘상무’(尙武) 이름을 수십 년간 아무 문제의식 사용해 오고 있었다는 15일 자 경향신문 기사 참으로 당혹스럽고 부끄럽다.
보도에 의하면, ‘상무’(尙武)라는 이름을 쓰는 공공기관과 공공시설은 총 38곳으로, 학교가 5곳, 행정기관 6곳, 공공시설 4곳, 공원 2곳, 교통 관련 4곳, 도로명 13곳, 교량 1곳, 교차로 3곳 등이다.
상무충정작전이 무엇인가. 80년 5월 신군부의 광주학살에 맞서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쟁을 벌이던 시민들을 폭도를 소탕한다는 구실로 새벽 공수부대와 탱크를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한 작전이 바로 그것 아닌가.
그런데, 민주·인권도시를 자부한 광주가 학살 진압군이자 광주를 피로 물들인 작전 이름에서 따온 명칭 ‘상무’를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의식 한번 없이 행정동과 공공기관, 공공시설, 학교 이름에 수십 년 동안 앞다퉈 사용해 왔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
무엇보다 자치단체와 교육 당국의 책임이 크다. 앞서 2014년 문제가 됐던 광주 서구 화정동에 위치한 구 백일초등학교(현 성진초등학교) 사례가 적절한 예다.
과거 광주시가 역사적 검토 없이 인근에 위치한 ‘백일사격장’ 이름에서 착안해 대규모 택지를 조성하는 과정에 ‘백일택지개발지구’라고 명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백일지구’가 되어 버렸고, 1992년 개교한 초등학교 역시 광주시교육청이 아무런 검토 없이 ‘백일’을 가져다 사용함으로써 ‘백일초등학교’가 되어 버렸다.
뒤늦게 ‘백일사격장’의 ‘백일’은 항일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결성된 특수부대 ‘간도특설대’의 핵심이었던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초대 보병학교장을 지낸 ‘김백일’ 이름을 사용한 것이라는 시민단체(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이후 학교 구성원, 지역 주민, 자치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댄 끝에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역사 청산 차원에서 도로명 ‘백일로’→‘학생독립로’, 공원명 ‘백일어린이공원’→‘학생독립어린이공원’(2015.3), 학교명 ‘백일초등학교’→‘성진초등학교’(2016.3)로 변경(개명)한 바 있다.
혹자는 ‘상무’가 과거 1952년~1994년까지 광주에 ‘상무대’가 위치해 있던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도 사실 역사적 연원을 따지고 보면 일제가 1937년 중일 전쟁을 계기로 과거 광주군 극락면 치평리 일대에 군사전략상 목적으로 비행장을 조성하면서부터 비롯됐다. 1945년 일본 해군성이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로 동원하기 위한 연습장으로 쓰던 이곳은 해방 후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1952년 이승만에 의해 ‘상무대’로 명명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상무’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의 한반도 불법 점령과 식민 통치의 아픈 역사와도 직결된 곳이다.
광주가 군사도시도 아닌 마당에, ‘무를 숭상한다’는 ‘상무’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데다, 더군다나 80년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잔인하게 학살했던 계엄군과 그 작전 명칭을 민주·인권 도시 광주가 신주단지 모시듯 수십 년간 사용해 온 것은 자기모순이자,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광주가 수십 년간 학살 진압군의 혼령을 함께 받들면서 위령 기념사업을 펼쳐 온 것과 다름없다. 오른손에는 5월 영령들을 추모하고, 왼손에는 그 가해자의 영혼을 추념해 온 것과 같다.
각설하고, 광주전남이 통합돼 출발하는 민선 9기 첫 과제는 광주에서 학살의 주체이자 진압군 ‘상무’를 뽑아내는 일이어야 한다.
2026년 5월 15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