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가난의 한
蓬門未識綺羅香(봉문미식기라향), 가난한 집안이라 비단옷은 알지도 못하고,
* 蓬門(봉문) : 지붕을 쑥으로 인 대문이란 뜻으로 ‘蓬戶(봉호)’라고도 표현한다. 빈한한 집을 지칭하며, 자기 집에 대한 겸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 綺羅(기라) : 비단을 뜻하는데, ‘綺羅香(기라향)’을 모른다는 것은 가난하여 비단옷을 구경한 적도 없다는 뜻이다.
擬託良媒益自傷(의탁량매익자상). 좋은 중매인에게 부탁하고 싶어도 마음만 더 상하네.
* 擬託(의탁) : 헤아려 부탁한다는 뜻이다.
* 媒(매) : 중매인을 뜻한다. 良媒(량매)는 좋은 매파에게 잘 부탁하고자 하나 그럴수록 자신의 처지로 인해 더욱 슬퍼진다는 뜻이다.
誰愛風流高格調(수애풍류고격조), 격조 있고 품위가 있다 한들 누가 알아주리오.
* 風流(풍류) : 풍채와 행동거지를 뜻한다.
共憐時世儉梳妝(공련시세검소장). 다들 요새 유행하는 특이한 차림이나 좋아하는걸.
* 時世(시세) : 그 때의 세상.
* 梳妝(소장) : 머리 빗고 단장함. 化粧(화장).
* 儉梳妝(검소장) : 기이한 화장을 뜻한다. 여기서 ‘儉’은 ‘險’과 통한다. ≪新唐書(신당서)≫ 〈車服志(거복지)〉에 “높은 상투, 기이한 화장, 눈썹 깎기, 이마 넓히기 및 오월 지방의 높인 머리와 풀로 만든 신발을 금한다.[禁高髻 險妝 去眉 開額及吳越高頭草履]”라고 하였다.
敢將十指誇偏巧(감장십지과편교), 열 손가락 바느질 솜씨는 대놓고 자랑할지언정,
不把雙眉鬬畫長(불파쌍미투화장). 두 눈썹 예쁘게 그려 남과 겨루진 않지.
* 雙眉鬪畫(쌍미투화) : 두 눈썹 그리기를 다툼.
苦恨年年壓金線(고한년년압금선), 한스럽구나. 해마다 금빛 자수를 놓아,
* 苦恨(고한) : 괴로움. 고통.
* 壓金線(압금선) : 손으로 눌러 금실로 수를 놓는다는 뜻이다.
爲他人作嫁衣裳(위타인작가의상). 남의 집 신부 옷이나 지어주고 있으니.
―‘가난한 여인(빈녀·貧女)’ 진도옥(秦韜玉·생졸미상 당 말엽)
가난 때문에 세인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처녀. 빼어난 바느질 솜씨를 자부할지언정 외모를 치장하는 것으로 남과 경쟁하진 않는다. 하나 이런 매력이 무슨 소용이랴. 지금 세태는 온통 특이한 차림, 예쁜 화장 등 화려한 외양만 중시하는 것을. 여자에게 중매가 없으면 혼인이 어렵다는 건 아득한 옛날부터 굳어진 풍습. 기원전 5, 6세기의 민요 ‘시경’에도 늦어진 혼사를 두고 여자가 ‘제가 시기를 늦춘 게 아니라, 그대에게 좋은 중매인이 없었기 때문이라오’라며 남자를 원망하는 시구가 나온다. 사실 이 사내는 뜨내기 건달이었는데 막살이를 하더라도 매파의 중매가 꼭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 역시 가난의 설움보다는 중매가 없어 혼사가 무망(無望)해진 여자의 낙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인이 여인을 실제 목도했는지 아니면 떠도는 풍문을 들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둘 사이엔 은연중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관직에 뜻을 품은 선비라면 자신을 요로에 천거해 줄 ‘좋은 중매인’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굳이 여인의 ‘격조와 품위’를 내세운 것도 선비 정신과 연결해 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자부심과 열등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두 형상이 묘하게 오버랩되고 있다.
✵ 진도옥(秦韜玉·생졸미상 당 말엽) : 晩唐(만당)의 시인. 자 仲明(중명). 섬서성 長安(장안) 사람. 일찍이 僖宗(희종, 재위 873~888)을 따라 黃巢(황소)의 난을 피해 蜀(촉) 땅으로 간 일이 있고 벼슬은 工部侍郞(공부시랑)을 역임했으며, ‘詩集(시집 3권)’을 남겼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2월 16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