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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24일 (목)
제목 : 남유다의 죄악
오늘의 말씀 : 열왕기하 17:19-26 찬송가: 281장
19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
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사 괴롭게 하시며 노략꾼의 손에 넘기시고 마침내 그의 앞에서 쫓아내시니라
21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시매 그들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더니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여호와를 떠나고 큰 죄를 범하게 하매
22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므로
23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드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25 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26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니라
중심 단어: 유다, 여호와의 명령, 내쫓다, 앗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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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종으로 인한 징벌
19절: 남유다-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
20절: 하나님-온 이스라엘을 이방의 손에 넘기시고 쫓아내심
22절: 북이스라엘-왕국 분열 이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음
23절: 하나님-앗수르에 사로잡혀 가게 하심
도움말
1. 사람을 옮겨다가(24절): ‘인도해 들이다’라는 뜻으로, 앗수르의 식민지 이주 정책을 말한다. 앗수르는 피지배민을 자신의 영토 사방에 흩고, 대신 정복지에는 자신의 백성을 이주시킴으로써 정치적, 인종적 분란을 미연에 방지했다.
2. 그 땅 신의 법(26절): 각 지역의 수호신이 있었다고 믿었던 당시 신 개념을 반영한 표현이다. 사마리아에 이주해 온 앗수르인은 자신들의 고통의 원인을 사마리아 땅의 신을 잘못 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말씀묵상
남유다의 죄악
일찍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찢어 여로보암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신 예언이 성취된 후, 여로보암은 우상을 섬기는 데 앞장서고 모든 북이스라엘 자손도 여로보암의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남유다도 북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는 운명을 맞게 됐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선지자들의 경고와 권고를 듣지 않았으며, 율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몇 번의 종교 개혁을 통해 신앙의 통일성을 어느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으나 완전한 변화를 위한 개혁의 의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을 통해 따라서는 안 될 모본을 직접 목격하면서도 우상 숭배의 길을 같이 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방인
앗수르 왕은 북이스라엘 백성을 본국으로 납치해 간 후, 타 족속 사람들을 사마리아의 성읍에 거주하게 했습니다(24절).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도, 어떻게 섬기는지도 몰랐습니다. 때문에 각자 자신의 신을 섬겼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몇 사람의 죽음을 통해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25절). 이때 사마리아의 거주민들이 놀라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앗수르 왕에게 “그 땅 신의 법”,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법을 몰라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습니다(26절).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제사장 한 사람을 보내 달라는 청이기도 했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함으로 결국 심판을 초래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였던 이방인들의 모습을 대조하며 이스라엘의 죄악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불순종으로 인한 징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신 이유는 무엇입니까(19-20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멸망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길을 걷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신28:64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65 그 여러 민족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이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네 마음을 떨게 하고 눈을 쇠하게 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하시리니
66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앗수르는 정복한 지역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강제로 이주시킨 정책을 썼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끌어다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 놓고 다른 민족을 사마리아 땅에 이주시킴으로써 피지배 민족이 감히 앗수르에게 저항하거나 단합해서 세력을 키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면 이것인 앗수르의 정책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고대인들은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을 다스리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고대 근동의 종교적 관념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마리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자 사자들을 보내시어 몇 사람이 죽게 되었다. 이런 재앙을 당하자 종교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재앙의 원인을 사마리아 땅의 신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앗수르 왕에게 요청한다.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주민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않는 자들이었지만 자신들에게 재앙이 임하자 신을 노엽게 했다는 생각에 ‘신의 법’을 찾아 재앙에서 모면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재앙을 당하자 그 지역의 ‘신의 법’을 알아서 신의 노염을 풀고자 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생각 조차하지 못했을까?
성경은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15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따르지 말라 하신 사방 이방 사람을 따라
16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17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사마리아에 들어온 이방인들은 여호와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앙의 원인을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몰랐다. 하지만 재앙이 닥치자 자신들의 잘못을 의심했고 그 지역의 신의 법을 찾아서 그 신의 법을 따라 제사를 드리고자 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을 알고 선지자들의 말도 들었으면서도 그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
오늘 다시 한번 말씀 앞에서 묻는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가?”가 아니라 “나는 그 말씀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믿지 않고 알면서도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알면서도 거부했다!’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말씀을 몰라서 망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알고도 거부했습니다.
‘14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
그런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한 번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되면서 죄에 대해서 무뎌진 것이다. 죄를 죄로 보지 못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살게 된 것이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죄를 ‘여로보암의 죄’라고 말씀하신다. 솔로몬의 죄로 말미암아 나라가 분열되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 죄를 반복적으로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그래서 결국 그 죄가 만연하고 백성들의 몸 속에 가득차서 문화와 관습처럼 굳어져버리게 된 것이다.
“22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므로”
“떠나지 아니하므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양심이 무뎌진다. 죄의 감각이 무뎌진다.
“그런가 보다!” “다들 그렇게 한다.” “옛날부터 그래 왔다.” “이 정도는 괜찮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문화다.”
오늘 내 마음속에도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이 말씀 잘 알고 있지!” “오늘도 또 이 말씀이네!” “다 거기서 거기지!” “또 회개하라는 말씀이지! 그러면 난 무엇을 회개해야 하지?”
반복해서 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나의 반응이 너무 형식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말씀이 내 심령을 찌르고 있는가? 나는 정말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 앞에 서 있는가?”
이스라엘은 재앙의 원인을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서 찾기보다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다.
재앙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시는 것인데 오히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그 재앙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린다면 이방인보다 못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이방인의 반응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교훈을 주시고 있다. 아니 나에게 교훈을 주시고 있다. “우리가 그 땅의 신의 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들의 신앙관이 잘못되었지만 재앙 앞에 반응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보다 낫다는 것이다.
오늘 나는 나의 죄, 나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며 죄를 고백할 줄 아는 종인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내 자신부터 돌아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 탓, 하나님을 원망하는 무지한 사람인가?
예수님은 마12:41절에서 니느웨 사람들이 심판 때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했지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고 복음을 거부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재앙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았는데, 하나님을 아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내 삶을 돌아보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그들 나름 대로의 신을 찾아가는데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법을 찾으며 하나님 말씀 앞에 반응하고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런 찔림을 받는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순종하지 않는가, 아니면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익숙하게 흘려보내고 있는가?”
사랑의 주님. 추석 연휴 첫날 말씀 앞에 서 있는 저에게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아서 그냥 흘려보내려고 했던 마음을 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나의 죄, 나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며 죄를 고백하기 보다 ‘이스라엘 민족은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 종에게 이스라엘이 아니라 내 자신부터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 사람들도 나름 어려움을 당하면 그들의 신을 찾아가는데 하나님의 종임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보다 환경, 다른 사람의 탓, 하나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는 종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날마다 말씀 앞에 서는 이 종에게 형식적이고 너무 익숙하고 안다는 생각 때문에 성령께서 주시는 교훈과 깨달음과 음성을 놓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낮아지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내려갑니다. 그 낮은 곳에서 겸손히 주님 말씀을 따라가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MeNn39dcTu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