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기부했던 그의 양복은 낡았다.
"돈은 똥" 말한 '어른'💠
.
#그는 자신이 가난 탓에
못 배운 한을 40대에 전재산을 털어
고등학교를 지은 걸로 달랬다.
1991년 110억원 가치의 건물·
땅과 함께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문형배
헌법재판관을 비롯해
서울대 출신 과학자, 의대 교수 등
1000명은 족히 넘는 장학생을 배출했다.
오죽하면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란 별명이 붙었을까.
정작 자신은 헤진 양복,
오래된 찻잔 등을
수십년간 쓰는 검소함이 몸에 뱄다.
“돈은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구린내가 나고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
“(한약업을 하며)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 등
선생의 어록도 화제다.
“돈 모아두면 똥 되고 흩어버리면 거름 돼”
.
그는 1944년 경남 사천
가난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후엔 농사를 거들다,
1959년 한약방 점원으로 취업해
1962년 독학으로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
성년의 나이가 된 이듬해 면허증을 받았다.
같은 해 사천에 연 한약방은
갓 스무살 원장이 실력 좋고
정직하단 소문이 나
전국에서 손님이 밀려왔다.
많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1973년 진주로 이전해
어려운 이웃, 학생들을 후원했다.
아낌없이 베푼 그의 철학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다.
불학에서 기대 없이 베푸는 것을 뜻한다.
장학생 출신 김종명씨가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더니 선생이 그러더란다.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
김장하 선생은
자신의 조부를 평생 스승으로 삼고 있다.
이웃 돕기를 솔선수범한 그의 조부는
선생에게,
"약방에서 지은 약을 먹고 오래 살라,
나서지 말고 제 역할을 하라"는 뜻의
‘남성(南星)’이란 호를 지어줬다.
한약방 시대가 저물면서,운영난도 겪었다.
그럼에도
한약방을 비우면 안 된다며
대통령 당선인의 식사 초대도 거절했다.
그만큼 정치와는 거리를 뒀다.
2000년 출범한 남성문화재단을
2021년 12월 해산하면서,
남은 재산 34억원은 경상국립대에 기증했다.
지난해 진주시는 남성당 한약방 건물을
복합문화공간 ‘진주 남성당교육관’으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개관이 목표다.
은퇴 후 김장하 선생은
아내와 4남매, 손주들과 함께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는 “2021년 11월
약방을 닫으려고 하시던 상황이었는데,
옛날만큼 북적이진 않았지만
약 포장하고,손님 전화를 받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폐업할 때까지
감사를 표하려고 찾아오는
시민‧장학생의 발길이 잇따랐다.
“100억원대 돈을 번 사람이
60년 간 매일 한약방에
출근한다는 게 대단했다”면서
“자기 연민을 내려놓고
그 빈자리에 다른 사람을
연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비로소 어른의 시작점에 선다는 걸
김장하 선생에게 배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