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한참 무르익어서 덥기까지 하다. 내가 사는 경산 남천은 겨울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남천은 겨울에 활기차다. 겨울에는 철새가 날아드니 생명의 강이 확실하다.
남천에 찾아드는 오리는 그 종이 다양하고 깃털의 색깔이 형형색색(形形色色)이다. 나는 남천에 살면서 오리의 종류가 이처럼
다양한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크기도 큰 것으로부터 병아리만 한 것까지 정말 다양하다. 먹이 활동하는 방법도 아주 다양해서
잠수하는 것부터 잠수는 못 하고 물구나무서는 것 같이 서서 먹이 활동을 하는 오리가 있어서 생태 현상의 다양성을 보게 된다.
오리의 먹이는 주로 수생 식물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먹이로 하는 철새보다는 좀 더 삶이 쉬워 보인다.
오리는 군집(群集)하여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떼가 무리를 이루면 경계에도 좋고 먹이 활동에 관한 정보 역시 효율적으로 얻게 된다. 특히 붉은 머리 오리는 군집하여 활동하는데 장관을 이룬다.
남천의 겨울 철새는 소백로, 물병아리, 오리가 주종이 된다. 큰 호수나, 강에 비하면 샛강의 철새는 종이나 그 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샛강에서 이 정도의 철새를 만난다는 것만 해도 행운이다. 남천의 텃새로는 대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민물 가마우지 등이 있어서 이 강이 살아있는 강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봄으로 접어 들면서 겨울 철새는 하나, 둘 떠나고 요즘은 강이 텅 빈 것 같은 감이 짙게 든다. 허전함을 느끼게 되지만 둔치에 각종 꽃이 피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피는 꽃은 산수유이고, 벚꽃, 영산홍과 철쭉이 차례로 피어서 빈 강을 채색한다. 회색빛 겨울 색채는 사라지고 점차 다양한 색채가 남천을 장식하게 된다.
경산시에서는 여유 공간과 강둑에 각종 꽃을 심어서 강을 아름답게 꾸며, 봄의 화려함을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이제 4월 중순을 지나면서 남천에는 유채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인위적인 노력과 자연의 섭리가 어우러져서 남천은 살아있는 강으로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
철새이든 식물이든 모두 자연의 신호(信號)에 따라서 행동한다. 철새는 자연의 신호에 따라서 이동하고 새끼를 낳고 기르고
이동한다, 이들이야말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만약 인간이 간섭하지 않는다면 자연에 따라서 번성과 쇠퇴가 결정될 것이다. 식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연의 신호에 민감하다고 보인다.
봄으로 접어들면서 남천 둔치에는 걷기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걷기는 우리 건강에 필수일 것이다. 나는 하루에 대체로
1시간 30분 정도를 의도적으로 걷고 있다. 허리디스크도 건강해졌고 식욕과 수면에 다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나라 강변에는 거의 다 둔치가 있어서 시민의 건강 생활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국민건강은 의료비 절감에 이바지하겠지, 또 삶의 질을 높이겠지, 시간도 절약하게 되겠지, 참 좋은 운동이다. 뿐만이 아니라 둔치에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어서 시민건강에 이바지하니 강은 우리의 정신적, 신체적 삶의 질을 높이는 건강 센터일 것이다.
요사이 진풍경은 걷는 사람 중 많은 분이 애완견(愛玩犬)과 동반한다는 점이다. 애완견을 동반하는 사람은 남녀노소(男女老少)를 가리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젊은이의 전유물(專有物)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이 현장에서 알게 되었다. 이분들은 애완견 때문에 잔디밭에서 끼리끼리 모여서 애완견에 관한 정보를 나누고 삶의 이야기도 나누며 소통한다.
왜 애완견을 기를까? 사정이야 모두 다르겠지만 대체로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이 군중(群衆) 속에 홀로
산다는 점이겠지, 이웃이 없는 세대, 진정한 친구가 없는 세대, 가족도 정보사회에서는 각자 자기 삶을 사는 세대, 농경사회만큼 끈끈한 인간관계가 없는 세대이니 삶에서 별로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동물과 더불어 하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풍속도(風俗圖)이다.
손녀 이야기를 들으니 내 1년 이발비가 애완견 한번 털 깎는 비용과 같다. 놀라운 일이다.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의 정신은 어떤 것일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 하지 않을까? 수의사가 인기 직업이 되고 애완견 관리하는 업체가 성황이라니 새로운 시대를 사는 것 같다.
둔치를 걷다 보면 유모차가 많다. 그러나 아이를 태우고 가는 유모차는 극소수이다. 개가 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대세가 된듯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 문제는 가치개념의 상실이라 보인다.
기르기 어렵다. 환경이 어렵다. 오늘보다 더 어려운 시절이 우리 역사의 대부분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가족은 없어졌다.
머지않아서 그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
인간은 자연의 신호를 스스로 무시하고 우선의 편안함이나 즐기는 삶에 편향되어 있다는 감이 든다. 인간이 인간 다우려면 자연에 순응하여야 한다. 사람은 동, 식물에서 순천자(順天者)의 도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인류는 자연을 교란하고, 파괴하여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 것 같다. 인류는 자연의 신호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자연을 사람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남천을 찾아오는 겨울 철새며, 텃새는 계속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다. 모든 식물도 인간의 간섭이 없다면 번성할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누리는 부(富)는 우리 삶의 기본이 되는 정신적 가치를 침해하는 것 같다.
나는 오늘 우리 사회 현상(現狀)을 사춘기(思春期)로 보고 있다. 물질문명은 커졌는데 정신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성장기의 현상이다. 언제쯤 이 긴 터널을 벗어날는지 걱정스럽다.
2024년 4월 22일(월)
김정권
대한예수교 장로회
대구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