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관한 에피소드 [차현주]
따뜻한 손이 어미 소의 새끼를 받았습니다
그 손이 방금 목을 졸랐습니다
궁둥이를 귀엽게 두드리다 뺨을 후려쳤습니다
축 경사
세상에, 소중한 생명이 또 탄생했습니다
곧 이 생명도 따뜻한 손이 될 것입니다
따뜻한:
안락한 말입니다
지하철 의자에서는 언제나 졸았습니다 목적지를 잊고 돌아버렸
습니다 누군가의 품에서 잠이 깨면 1년씩 지났습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다가 학교에 못 갔습니다
차가운 손발은 따뜻한 마음의 다른 말입니다
당신의 수족이 되느라 차가워진 것이니 이 마음을 거두어 주세요
내 마음을 확인하려거든 가슴 안으로 손을 넣어주세요
언제나 품고 다니던 차가운 가위
베인 손가락에선 따뜻한 피가 흐를 테지요
이제 따뜻해진 가슴이겠습니다
오늘의 사건사고는 지루합니까?
당신의 상의를 들춰보면 더 재밌을 텐데요
팝콘을 들고 언제 다 같이 한번 관람을……
목구멍을 크게 벌려 가글을 하세요
티 나지 않게 앞사람의 머리카락을 한 올씩 뽑아버리는 방법을 알
고 있습니다
따뜻한 말:
기대다가 나를 찌를 못입니다
그립고 따가운 송곳입니다
- 계간 『다층』 2022년 봄호
* 표범 숫놈이 암놈에게 다가와 따뜻한 짓거리를 하고 간다.
지가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부비부비하다가 따뜻한 한 줌을 주고 간 게다.
다시는 숫놈이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참 차갑다, 나쁜 새끼!
암놈은 새끼를 낳고 물고 빨고 혼자 키우다가 때가 되면 콧등으로 밀어내고
다시는 새끼에게 따뜻함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모자지간에도 자기의 영역을 넘보면 이빨을 드러내는 냉정함이라니.
따뜻함은 사랑이지만 냉정함도 사랑이다.
부모한테 의지하지 말고 니 살길, 니가 찾아라!이다.
열탕과 냉탕을 적당히 오가면서 따뜻했다 차가웠다를 반복하며
사랑이란 그런 거구나 깨달아야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배우는 사랑법이다.
그립고 따가운 송곳 같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