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기억통조림 [이은규]
귓가에 세 들어 사는 속삭임처럼
비 오는 소리
멀리서의 안부가 도착한다
복숭아 익어가는 계절
희미한 태몽 이야기는
오고 있는 시간 너머로 우리를 데려가고는 했지
밀어낼수록 가까워지는 기억처럼
눈뜰 때마다 매일 태어나는 속삭임
시간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있는 걸까
우리가 놓아주지 않고 있는 걸까, 시간을
누군가 복숭아뼈에 대한 회상을 말할 때
우리는 왜 회상보다 망상을 즐겨 했을까
꽃 피다 지다
너는 이제 없는 사람
나는 복숭아 예쁘게 자르는 일 따위를 소일거리 삼아
하루 한 생을 견디고 있구나, 있지 않구나
알고 있니 복숭아의 꽃말은
사랑의 노예 그리고 천하무적
너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어울리기도 어울리지 않기도 한 꽃말에
귀가 멀고, 그토록 멀지 않고
이제 너는 없는 사람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꼭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년으로 적어야지*
오래된 문장을 안부 삼고 있구나, 있지 않구나 나는
저 비가 그치기 전에
복숭아 기억통조림을 만들자
오래전 잊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잊지 않았음을
*영화 <중경산림>에서.
-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문학동네, 2019
* 어느덧 복숭아의 계절이 되었다.
복숭아 한입 베어물면 입안 가득 향기가 아득하다.
딱복이든 물복이든 상관없이 복숭아는 맛이 좋다.
이 맛과 향을 깡통에 가두고 생각날 때마다 먹으면 좋겠다.
아닌 계절에 깡통안에 있는 복숭아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뿌듯뿌듯하고
물컹하고 달달한 그 맛에 황홀하다.
어릴 땐 어딘가 좀 아파야 먹을 수 있던 복숭아통조림이었다.
추억도 기억도 다 담겨있는 복숭아통조림.
아직은 여름 한철. 먹어둘 수 있을 때 복숭아의 향기를 기억해 두자.
천년만년 기억해두고 통조림 딸 때 향기기억복숭아를 먹는, 그런 기분을 내자.
딱복 좋아하세요?
물복 좋아하세요?
다 좋아하신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