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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종격투기 원문보기 글쓴이: 메르스
1.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성립과 분열
모세의 후임인 에브라임지파의 여호수아(조슈아)가 팔레스타인 정복전쟁을 치뤄 12지파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나눠준 뒤로 이스라엘은 12지파의 연합체 성격을 띄고 있었습니다. 그중 에브라임지파가 그중에서는 힘꽤나 쓰던 입장이었고요. 그 연합체의 수장은 사사(판관)이라 불리던 제정일치의 지도자였고요. 고대 국가가 발전하면서 제정일치사회는 왕(혹은 그에 준하는 직책)이 나타나. 제정분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죠.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사울이라는 초대왕이 마지막 사사 사무엘에 의해 임명됩니다. 판관시대가 종식되고 왕국시대가 열린 시발점이죠. 이때부터 이스라엘 왕국이 시작됩니다. 초대왕은 사울이었지만, 존재감은 거의 없고요. 유명한건 그 다음 왕들입니다. 바로 다윗(다비드, David) 과 솔로몬입니다. 여튼 왕은 정치의 우두머리가 되고 대제사장은 종교의 우두머리가 되는 제정분리국가가 성립됩니다.
{사울과 다윗시대의 고대 이스라엘 왕국}
{다윗 가계도. 보라색이 와이프고 그 아래가 자식들입니다. 열심히 낳으셨네요..}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투석으로 쓰러트린 소년의 일화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다윗은 초대왕 사울이 전쟁중에 죽자 자기가 속했던 유다지파를 규합해서 스스로 주변의 추대로 유다지파에서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의 왕위를 차지해버립니다. 다윗이 왕이되고, 현명한 군주였던 다윗은 나라를 번영시켰습니다. 다만 다윗이 좀 오래살긴 살았는데, 재위에 왕이 오래있으면, 후계자 싸움이나 후계자의 반란이 일어나는 일이 잦습니다. 다윗 역시 그랬고요. 첫째아들은 셋째아들에게 죽고, 둘째는 요절, 셋째아들 압살롬은 다윗에게 정면으로 반란을 일으키고는 실패하고 죽습니다. 넷째아들 아도니야는 이제 본인이 가장 제일 왕위계승권자라는 생각에 다윗이 병석에 드러눕자 멋대로 대관식을 해버립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총애하던 밧세바의 요청으로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이양하기로 결정합니다.
{모세의 형인 대제사장 아론의 가계도. 사독과 아비아달을 확인해봅시다}
솔로몬은 신속하게 왕권을 확보하고 반대파를 처리합니다. 반대파중에는 대제사장 아비아달도 있었는데, 그를 추방하고, 자신의 왕권이양을 지지했었던 제사장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이후로 대제사장 지위를 사독가문에게 세습시킵니다.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도 적당히 살다갑니다. 중요한 업적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운것이 되겠네요. 그리고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을 때에 고대 이스라엘 왕국은 12개의 지파중 강력했던 두개의 지파, 다윗왕가가 속했던 유다지파와 여호수아 이래로 힘좀쓰던 에브라임지파, 두지파 각각을 중심으로 둘로 쪼개 나눠집니다. 유다지파쪽을 남왕국 유다라 부르고, 에브라임지파쪽을 북왕국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왕가의 세습의 입장에서 보면 유다쪽이 적통이긴 한데, 에브라임지파쪽이 12중 10개지파가 속해있어서 다수 지파의 지지를 받았죠.
{분열기의 이스라엘 왕국. 파란색이 북이스라엘, 노란색이 남유다}
이게 기원전 1000년경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갈길이 먼데 너무 먼 이야기부터 시작해버린 느낌이네요.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 사람이름은 다 잊어버리셔도 됩니다. 사독은 나중에 또 나올겁니다.
2.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이렇게 자기들끼리 쪼개져서 서로 치고 박기도 하고 주변과 싸우기도 하며 대충 살다가 주변에 강대국이 생겨나게 되자, 망하게 됩니다. 먼저 망한것은 북이스라엘이죠. 당시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패권을 차지하게 된것은 아시리아(앗수르) 였습니다. 수도는 니네베(니느웨). 요나가 가기 싫어서 도망가다가 고래안에서 숙식을 제공받았던 바로 그 도시입니다. 여튼 아시리아는 중동의 패자가 되었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멸망합니다. (BC.722) 아시리아는 정복지를 황폐화시키던 제국이라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초토화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는 이민족들과 혈통과 문화가 뒤섞이게 되어, 사마리아인들이 유태인들에게 멸시당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 정복에 그치지 않고 멀리 이집트 까지 침공해서 일시적으로 병합합니다. 당연히 그 사이에 있는 유다도 침공했었는데요.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뭔가 암울하고 세기 종말적인 분위기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여튼 남왕국도 멸망까지는 면했지만, 남왕국 역시 아시리아에게 충분히 두드려 맞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의 영토}
당시 중동의 흐름은 매우 다이나믹합니다. 왕조의 흥망성쇠가 고대치고는 꽤나 빠르죠. 아시리아도 영원한 강자일수는 없었죠. 아시리아는 특히 피정복민에 대한 가혹한 처사로 유명했는데, 정복된 도시의 주민들은 죽이거나 포로로 모조리 끌고가고 그 땅은 다른 인종으로 채웠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도 똑같이 당했습니다. 그러한 처사들이 피정복민들에게 당연히 불만으로 남아있었지요. 후계자내란이 일어나자, 아시리아의 피지배민족들이 들고 일어나 아시리아가 멸망합니다. 그뒤 4개의 왕국으로 쪼개집니다. 리디아, 메디아(메대), 신바빌로니아, 이집트로 다시 갈라지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자였던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는 남왕국 유다를 쳐서 멸망시키고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을 파괴하고 포로를 싹 잡아갑니다. (바빌론 유수, BC. 587) 신바빌로니아 역시 피정복민에 대한 처사는 아시리아와 비슷했습니다. 이제 고대이스라엘 왕국들은 둘다 망해버린겁니다.
{아시리아의 멸망 후. 노란색이 리디아. 연두색이 메디아. 붉은색이 신바빌로니아. 보라색이 이집트}
3. 관대했던 정복자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BC 549 건국}
신 바빌로니아 역시 당시 중동의 다이나믹한 역사의 흐름을 이기지 못합니다. 메디아의 속국이던 페르시아(바사)의 키루스 2세(고레스)는 메디아를 점령하고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킵니다. 그게 아케메네스 왕조입니다. 아케메네스왕조의 키루스는 온화한 정복자였습니다. 유태인들의 종교와 삶을 인정해주던 지도자였습니다. 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태인들을 모두 해방시켜서 팔레스타인에 돌아가게 만들고, 성전 재건축도 허락합니다. 왕을 세워 독립시켜주진 않았지만,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자치권도 허락합니다. 이 당시 성전을 재건하며 활동하던 유태인 지도자들이 에즈라, 느헤미아 같은 사람들입니다.
{유태인들에게 메시아로 추종받기까지 했던 키루스 2세}
아케메네스 왕조는 키루스2세 이후로 다리우스 1세, 나는 관대하다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로)등이 이어가며 나는 관대하다 등등으로 대 제국으로 발전합니다. 그 사이에 그리스랑 페르시아 전쟁도 하고요. 그리고 페르시아 역시 멸망하죠. 바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BC 356~323)에 의해서입니다.
{알렉산더의 헬레니즘제국 }
알렉산더는 시리아 이집트에 이어 페르시아까지 병합했고, 인도까지 진출했습니다. 알렉산더는 팔레스타인의 신정정치를 용납해주었습니다. 다만 그는 , 젊은 나이에 사망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제국은 사후 몇몇 과정을 거쳐서 3개의 왕국으로 분열됩니다. 마케도니아의 안티코노스, 중동의 셀레우코스,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셋으로 분열되죠. 이 후계자 전쟁을 디아도코이라고 합니다. 알렉산더 제국이 분열된 뒤 팔레스타인은 일단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의 영향력 아래에 속해있었습니다. 프롤레마이오스 왕조도 돈만 낸다면 유태인들에게 신정정치의 자치권을 인정해주겠노라 하며 그들의 삶을 인정해줬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키루스 2세에 의해 고향에 돌아온 이후로 관대한 지도자들에 의해 신정정치를 인정받고 자기들끼리 나름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평온함의 시발점이었던 키루스 2세는 당시 이방인이지만 메시야로 추종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사후. 디어도코이. 3왕국으로 정립된건 대략 BC 275경}
4. 마카비전쟁.
시간이 흐르면서 이집트의 비호아래 행복했던 유태인들의 평화도 깨지게 되었습니다. 디아도코이로 생긴 나라의 하나인 셀레우코스 왕국이 이집트를 공격해 팔레스타인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알렉산더의 헬레니즘제국의 후예이던 셀레우코스 왕국의 안티오쿠스 4세는 이제까지의 지도자들과 달랐습니다. 강력한 그리스화로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기로 마음먹었죠. (안티오쿠스란 이름은 셀레우코스 왕가의 이름이며, 알렉산더가 알렉산드리아를 만들듯 셀레우코스 왕조에서는 안티오키아 혹은 안디옥이라 불리는 도시들을 만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그리스의 문화를 강제주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신을 제우스의 현신으로 공포하며, 예루살렘성전에 제우스의 신상을 세우고 그리고 할례를 금지하며 각종 율법을 금지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유태인의 자치지역이 아닌 그리스의 문화영역권으로 만들고 싶었던겁니다.
{아니 지금도 이러고 계신 하시딤들을 뭘로보고?}
유태인들은 두파로 갈라졌습니다. 친헬레니즘파와 반헬레니즘파. 안티오쿠스의 그러한 정책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과 저항하는 사람들로 갈라졌죠. 율법아래에서 엄격한 삶을 살고자하는 하시딤들도 당연히 반대파였습니다. 안티오쿠스의 사자가 성전에 와서 그리스식 제사를 지내라고 강요하고 성전을 제우스에게 봉헌해버리자, 친헬레니즘적 유태인들이 제사를 그리스식으로 지내려 준비했고, 제사장 맛다디아는 크게 반발했고, 그자리에서 그 유태인을 쳐죽였습니다. 안티오쿠스는 팔레스타인에 군대를 보냈고, 안식일을 기점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하시딤이 안식일이기에 그냥 앉은 자리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맛다디아는 안식일이라고 가만히 죽음을 맞기보다는 저항을 결심하고, 아들들과 광야로 나가서 반란군을 조직했습니다. (BC.167) 그들은 모든 친헬레니즘 세력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는 것이 목표였죠. 친 헬레니즘 유태인역시 마찬가지 숙청대상이었습니다.
{하스모니안 왕조 가계도}
맛다디아에게는 아들이 다섯있었는데 셋째아들의 이름이 유다 마카비였습니다. 마카비는 별명으로서 망치라는 뜻이었죠. 군사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맛다디아가 전사한 이후로도 마카비에게 계승되어 반란군의 불은 꺼지지 않았으며, 마치 예전 사사 기드온처럼 게릴라전으로 큰 전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마침내 마카비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탈환 하였고, 성전의 제우스상을 파괴했으며, 이방인들에게 유린당한 성전을 정화했습니다. 그리고 유태인의 제의를 위해 촛대에 불을 켜려고 했는데, 성유가 1일치 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불은 꺼지게 하면 안되는데 성유를 만드는데는 8일정도 걸리는데 지금 키면 7일간 꺼질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때 기적이 일어나서 1일치 성유로도 8일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BC 164) 이것을 기념한 것이 유태인들이 지키는 가장 큰 절기중 하나인 빛의 절기 하누카의 유래입니다.
{빛의 절기 하누카}
그러던 중 안티오쿠스 4세가 사망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국은 긴 후계다툼이 시작 됐습니다.셀레우코스 왕국은 내전에 휩싸였고, 마카비측은 계속 저항했습니다. 유다 마카비는 전사했으나, 그들의 저항의 불길은 끌수 없었습니다. 마카비의 동생인 다섯째 요나단이 뒤를 이어 저항은 계속되었습니다. 요나단은 적절한 외교전으로 내전에 휩싸인 셀레우코스왕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의 대제사장으로 임명받지만, 셀레우코스 왕국의 반란군이었던 디오도토스 트리폰에게 유인당해 죽습니다. 요나단의 뒤는 형이었던 둘째 시몬이 잇게 됩니다. 트리폰은 셀레우코스왕국의 왕위에 오르고, 그에 대항하기 위해 도주했던 이전 왕 데메트리오스2세와 시몬은 손잡습니다. 이때 세금면제와 자치권과 사실상의 왕위를 약속받습니다. 결국 트리폰 세력을 셀레우코스 에서 몰아내고 나서 시몬이 팔레스타인의 왕위에 오르는데 이 왕조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조였던 하스모니안 왕조입니다. 하스모니안의 이름의 유래는 마카비의 선조의 이름에서 유래햇습니다.
5. 에세네파, 바리사이파와 사두카이파
시몬의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에게 이 왕위는 세습됩니다. 독립은 독립이지만 셀레우코스 왕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유태인의 세습왕이 생긴것은 나름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왕 치드키야(시드기야) 이후로 처음 유태인의 왕이 생긴 것이었죠. 의미가 있던 만큼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까요.
일단 시몬의 동생인 요나단의 시대로 가보겠습니다. 요나단은 셀레우코스왕국과의 협상으로 대제사장에 오릅니다. 근데 앞서 1번에서 얘기했듯 대제사장 자리는 사독가문에 세습되었습니다. 사독가문이 아닌 요나단이 대제사장에 오르는 것을 인정할수 없었던 하시딤들은 대제사장 자리를 찬탈당했다 여겼고, 더럽혀진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수 없다고 생각하고 광야나 동굴로 숨었습니다. 거기서 정치와 세속적인것과 자신들을 분리하고, 엄격한 종교적인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에세네파입니다. 이후로도 권력투쟁에서 축출 숙청당한 바리사이파들이 에세네파에 합류합니다. 에세네파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세례요한입니다. 물론 예수도 큰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힐카누스 1세의 시대로 오겠습니다. 남아 있던 하시딤들은 함께 싸워 자치권을 얻은것 까진 좋았지만, 사독가문이 아닌 마카비가문이 대제사장이 된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용납하고나니 그런 마카비 가문이 대제사장이면서 유태인의 왕이 되는
것까지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왕을 겸임하겠다니요. 있을수 없습니다. 강렬히 저항합니다. 특히 시몬의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때에 요한 힐카누스에게 대제사장직분을 내려놓고 율법에 맞는 대제사장을 선출하라고 압박을 넣습니다. 이유는 요한 힐카
누스의 어머니가 이방인의 군대에 끌려가서 부정한 자라고 얘기했죠. 한마디로 '너의 어머니가 더럽혀졌으니 넌 대제사장이 될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요한 힐카누스는 당연히 화가나서 하시딤들을 내칩니다. 그리고 불러들인것은 사두카이파입니다. 사두카이파들
은 모세5경만을 인정하고 과도한 해석이나, 경전에 없는 관례나 관습등을 율법화 시키는것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사두카이파들은 모세5경에 없는 부활도 믿지 않고 내세도 믿지 않았습니다. 천사와 악마도 없지요. 사독계열에 대한 이야기는 모세5경에 없으니, 사두
카이파들은 당연히 요한 힐카누스가 대제사장을 겸임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니깐 꼭 사독계열만 대제사장이 될 이유는 없었죠. 사실 그랬기 때문에 사두카이파들은 특별히 헬레니즘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친 헬레니즘 파였던거죠. 독립하기 위해 반헬레니
즘파와 생사를 함께했던 하스모니안 왕조는 친헬레니즘파와 손을 잡습니다. 원래 인생사가 그렇죠. 사두카이파가 친권력적이란 이야기를 들었던건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영화속의 사두카이. 삐까뻔쩍한것이 뭔가 세속과 연관이 되어 보인다. 지금이라면 오히려 실용적인 사두카이가 환영받을지도}
그때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져간 하시딤들은 바리사이파가 됩니다. 꼭 성경에 나오는 것 뿐만 아니라 관례나 관습을 새로 만들어서 엄격히 지키려고 하게 되죠. 그들은 부활도 믿었고 내세도 믿었으며, 천사와 악마도 믿었습니다. 이들은 권력에서는 멀어졌어도, 평신도들(당연히 남아있던 유태인들이 그런 부류였으니)사이에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들은 성경에 보면 매번 타인에게 엄격한 종교윤리를 요구하고 간섭하는 듯한 사람들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 다시 권력에서도 치고 올라옵니다.) 사두카이파와 사이가 좋지도 않았을 뿐더러 부활에 대한 의견이 달라, 신약성경에서 부활에 대한 담론에서 예수가 사두카이파에게 면박을 주니 바리사이파가 좋아라한게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속의 바리사이. 위 사두카이파와 비교해보면 외형에서 차이가 난다}
6. 요한 힐카누스 1세와 그 이후
요한 힐카누스 1세는 앞서 말햇듯 시몬의 아들인데 야심이 컸습니다. 마치 알렉산더처럼 주변을 정복하고 개종시키려 했죠. 당시 유태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방인은 상종못할 사람이었지만, 힐카누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을 정복해서 그들에게 할례를 주고 개종을 시키려했죠. 사해 북서부와 이두매(에돔) 지역을 정복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개종시킵니다. 이게 나름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두매의 위치}
요한 힐카누스 1세의 사후에 하스모니안 왕조에도 내전이 일어납니다. 먼저 요한 힐카누스1세의 뒤를 이은 아리스토불로스의 죽음으로 인해 살로메 알렉산드리아라는 여성이 왕권을 잡았고 여성이므로 대제사장을 역임할수 없었기에 쿨하게 장남 힐카누스 2세에게 대제사장을 줘버리고 바리사이파를 중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치세는 나름 훌륭했으나, 노쇠하게 되자 차남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사두카이파를 규합해서 본인이 왕이되려고 하고요. 장남과 바리사이파 대 차남과 사두카이파의 내전이 시작된거죠. 장남과 차남의 싸움 끝에 장남이 대제사장 차남이 왕으로 합의를 봅니다.
{하스모니안 왕조 가계도. 다시 봅시다.}
여기서 한 이두매인이 등장합니다. 앞서말했듯 할례를 하고 개종했던 이두매인이었던 안티파트로스였습니다. 안티파트로스는 아리스토불로스 2세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가 왕이 되어버려서 몹시 곤란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안티파트로스는 힐카누스2세를 충동질해서 아리스토불로스 2세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 두 형제는 한 이두매인때문에 다시 싸우게 됐죠. 모두 외세를 이용해서 상대를 제거하려듭니다. 특히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로마의 폼페이우스를 끌어들이는데, 폼페이우스는 이게 왠 떡이냐며 예루살렘을 함락시켜 버리죠. 사실상 유태인들이 로마의 속주민이 되는 순간입니다. 다만 여기서 폼페이우스는 아리스토불로스2세를 끌고가고 힐카누스 2세는 대제사장으로 남겨놓고 갑니다. 안티파트로스 역시 잽싸게 폼페이우스에게 붙습니다. 폼페이우스의 결정은 바리사이파가 사두카이파에게 사실상 승리하게 해줬습니다.
{늙어보여도 카이사르와 자웅을 겨루던 그 폼페이우스 맞다.}
안티파트로스와 힐카누스 2세는 이후 폼페이우스를 버리고 잽싸게 카이사르로 옮겨타서 로마의 유력자에게 안정적으로 줄을 댔고, 로마는 힐카누스 2세에게는 대제사장직으로 안티파트로스에게는 로마시민권과 유대의 행정장관직으로 보답했습니다. 카이사르가 죽자 또 안토니우스에게 줄을 댔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방인이었던 안티파트로스는 열성적인 유대인에게 암살을 당했고, 그틈을 타서 아리스토불로스 2세의 아들 안티고노스가 동방의 제국 파르티아의 병력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을 침공했습니다. 하스모니안 왕가의 계승자로서 하스모니안 왕가복원을 노린 것이죠. 그 침공 결과, 대제사장 요한 힐카누스2세의 귀를 자르고 안티파트로스의 장남 파사엘을 사로잡습니다. 안티파트로스의 차남만이 무사히 로마로 도망갔고, 동생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자 파사엘은 자결합니다. 안티파트로스의 차남은 안토니우스에게 얘기해 팔레스타인의 파르티아 병력을 몰아내줄것을 간언했고, 로마의 병사와 안토니우스, 그리고 안티파트로스의 차남은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안티고노스를 처형합니다.
{클레오 파트라와 썸씽이 있었던 바로 그 안토니우스}
그리고 안토니우스가 이 안티파트로스의 차남을 유대의 왕으로 삼아주는데 그가 바로 헤롯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하스모니안 왕가의 여자 미리암네와 결혼하고요. 이 뒤로는 신약의 이야기가 펼쳐질겁니다.
{다시보는 하스모니안 왕조와 헤롯의 가계도}
출처 PGR21 LOVE&HATE님
첫댓글 결론 : 신의 왕국도 알고보면 평범한 개판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조선도 왕들 보면 만만찮지
왕자들 다 죽이고 형 내려온 뒤 왕 된 동생이나 조카 죽이고 왕 된 놈이나
원래 왕위 물려받아야 했을 첫째가 개판에 둘째는 종교놀음에 왕으로 즉위당한 셋째나
파헤치면 라스푸티차같이 개판인 데가 사방이지
@그리고리 쿨리크 그러니 평범하죠
@그리고리 쿨리크 소련스러운 왕조로군!
@민동균 바로 그거야
@그리고리 쿨리크 근데 경어 사용 합시다...
예의가 좀 많이 없으시네요
작성한 글은 그러지 않으면서도요
회원정보보면 나이도 나오는데 좀 그렇습니다
오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로마가 다 때려잡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하스몬 왕조 이후로도 왕조가 지속되나요?
가계도에 보이는 헤롯 아그립바 즈음까지 계속되기는 하는데 사실상 로마 입맛대로 왕을 앉히고 분봉왕이라고 왕 여럿 두기도 하고 하다 디아스포라 당하고 끝납니다
헤롯왕가가 성경 신약에서 욕하는거와 달리 유대인들을 번영하게 한 왕조이기도 했죠. 헤롯 대왕 시절에는요
성경은 종교서적이라는 특성상 현실주의자+냉소적 왕은 까고 이상주의+신실한 왕은 높게 보더라고요.
종교서적이라는 특성상 어쩔수없지만요
이 드라마틱한 역사를 보고 네 부류 이상의 유대인의 신분제 사회;가 되어버린 현대 이스라엘을 떠올려보면 그 동네는 원래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신약:사악한(?) 에서의 후손이 차지했으니 헤롯대왕은 폭군이다!
개인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성경에 관심이 많아서 말라기 이후 예수님 오시기까지 성경에 기록이 없는 400년 공백기의 역사가 궁금했는데 정말 유익합니다!
특별히 에세네파, 바리새파, 사두개파의 유래도 궁금했었는데 정말 잘 정리가 되어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