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꿈’은 나의 손녀 한진이가 잘 부르는 노래이다. ‘문어의 꿈’은 아이들 초딩들의 떼창곡 이기도 하다.
동요 아니고 가요인데도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른다. 반전의 노랫말이 있다. 무지하게 우울하다.
‘꿈속에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며 줄무늬로, 점박이로 변신해 육지를 여행하던 문어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춥고
어둡고 무서운 바닷속’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하는 노래이다.
아이들이 이 노래를 좋아하고 한진이도 잘 부른다. 나도 이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나는 문어, 잠을 자는 문어/ 잠에 드는 순간 여행이 시작되는
거야/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나는 초록색 문어/ 장미꽃밭 숨어들면 나는 빨간색 문어/ 횡단보도 건너가면 나는 줄무늬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 야 아아아 아아 야 아아아 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애애애 애애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참 우울해’
가사가 단순하지만, 아이들에겐 희망과 꿈을 펼칠 수 있는 노래이기에 떼창을 하는 것이다.
현실의 냉정함과 차가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문어가 꾸는 꿈은 눈물을 짜내게 한다.
처절하게 외롭고 무섭다고 외치지만 결국 꿈을 꿀 수밖에 없다. 꿈에서 아이들은 밤하늘을 날아서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길
바란다. 곡을 만든 가수 ‘안예은’도 ‘인생이 안 풀려 한탄하며 쓴 곡을 초등생들이 불러도 되나?’ 할 정도로 걱정을 했다고 한다.
작자 ‘안예은’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문어의 꿈’을 부르는 꼬마에게 묻는다. 공부가 그렇게 힘드냐고. 아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는다. ‘아줌마는 재미있었어요?’ 쏘아대고 열 살 아이는 학원 교재 잔뜩 실린 가방을 메고 학원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다.
칼럼이스트 김윤덕은 ‘문어의 꿈은 언제 이뤄질까’에서 이렇게 적었다. ‘아이들이 입시 고통에서 해방되는 날이 언제쯤 올까?
밤하늘을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너도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날이 언제쯤 올까?
아이들 어깨에서 돌덩이 같은 책가방부터 내려줘야 한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공부 버러지에서 해방해줄 수 있는지 어른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한다‘ 라고.
그리고 대학 수학능력 시험지를 끙끙대며 푼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1분에 1개꼴로 풀려면 아예 공부 버러지가 되어야 한다.
1개만 틀려도 등급이 달라지는 대학 입시로 사교육비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26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대통령이 킬러 문항 없애라 지시하고, 교육부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대형 입시학원을 압수 수색하지만 별 효과가 없는 듯하다.
수능출제위원회는 ‘매력적인 오답’으로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자평했으나, 대다수 수험생들은 시험(試驗) 내내 지옥을
오갔다‘고 자조했다. 수능이 쉬워지면 교실에도 숨통이 트일까 기대했던 교사들도 실망하긴 마찬가지이다. ’이어령도 울고 갈
국어‘ ’이창용(한국은행 총재)도 반타작(半打作)할 경제‘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왔다. 쾌재를 부른 건 사교육 시장과 일타강사들
뿐이다’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버러지에서 고통스러운 입시 시험제도에서 다소나마 해방시켜주자고 각계가 입을 모으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누가 더 많은 문제를 푸는지 측정하는 ‘스피드 게임’을 ‘기초학력고사’ 정도로 완화하자고 하는데
고쳐지지 않는다. 이해할 수가 없다. 보수든, 진보든 정권이 바뀌어도 요지부동이다. 벌써 30년째이다.
국가 소멸 위기로 접어들 정도로 아이를 아니 낳는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으리라 예상되는 출생아 수가 후년엔 0.65명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향후 10년간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332만명이나 줄어든다는 장래 인구 추계를 통계청이 발표했다.
현재의 세계 최악 출산율(작년 기준 0.78명)이 해외 언론이나, 대학 교수들이 ‘한국은 망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중세 흑사병보다 더한 인구 격감’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실제로 이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저출산 원인을 알고 있다. 청년들 취업이 힘들고, 내 집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대학 서열화가 너무 심하고, 자녀 사교육비에 허리가 휠 정도고, 모두가 서울로만 몰리는 수도권 집중이 도를 넘자, 청년들이 결혼을 아예 하지 않거나(非婚), 늦게 하고(晩婚),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無子女) 추세가 ‘뉴 노멀’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 인구 감소로 세입은 줄고, 노인 복지, 의료비 등 정부 지출은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을 눈앞의 현실로 보고 있다.
과도한 경쟁과 일자리 불안,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 등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부정적 관념을 해소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이다. 2006년 저출산 종합 대책을 수립하고 예산 380조원을 쏟아붓고도 아무 성과가 없다. 이 과실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젠 외국까지 걱정해 준다. ‘대한민국은 국가 소멸’의 길로 간다고... 이런 일에 문외한(門外漢)인 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걱정이 태산 같다. 젊은 여자가 애 안 낳는 것이 트렌드가 돼버렸다. 초저출산으로 인한 국가 소멸 위기에 대책다운
대책이 나오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손녀 한진이가 ‘문어의 꿈’을 부른다. 천진무구(天眞無垢)한 아이들이 이 노래를 떼창으로 부른다. 한진이가 지금 9살이다.
노래 배경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이를 듣고 있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찹찹하다.
아이들의 기(氣)를 살리고 신바람 나는 세상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아이들이 사교육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펼칠 수 있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이들이 ‘문어의 꿈’을 떼창을 한다. 오늘도 손녀 한진이 ‘문어의 꿈’을 부른다.
이를 들으며 할아버지의 마음이 심란(心亂)하다. 아이들이 불쌍하다. 아이들이 웃고 평화스럽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어른들이
만들어주지 못한 까닭이다. 이게 벌써 수십년째이다. 아이들이 희망의 꿈을 꾸다 깨어나면 춥고 어둡고 차갑고 무서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굴뚝 같다.
附言
이글은 한국석유공사 퇴직자 모임체인 ‘사단법인 동우회 석우회보 2024, 봄호’에 실린 글임을 첨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