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충격적인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중세 로마 제국의 거의 모든 근위대들의 뿌리가 후기 로마 제국에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중세 로마 제국의 타그마들 중 하나인 옵티마테스의 창설자가 일단 테오도시우스 황제인 건
알았지만 그건 별로 놀랍진 않았습니다만 그 다음이 중요했습니다.
글쎄, 이 사람들 원래는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군을 궤멸시킨 고트족들 중 일부였는데
테오도시우스에게 패배당한 후 포로로 붙들려 서부 아나톨리아에 강제 이주당한 다음,
대대로 군역에 종사해야 했던 그 이름도 생소한 "고소그라이키" 였더군요.
........
뭐 부대 명칭 뜻 자체는 "그리스에 있는 고트족들"이라 알고나면 별로 안 생소합니다만 이건 넘어가고...
이 "고소그라이키" 언대는 프레센탈 사단에 편입되서 이후에는 대 페르시아 전쟁에 동원되었는데,
강제 군역 의무가 언제부터 해제되었는진 모르지만 적어도 아나스타시우스 황제 시절이 되면
오히려 군인 급여가 대폭 인상되는 바람에 군인이 인기 직종이 되어버리는 기현상이 벌어져서
거꾸로 군인들 자신이 자식들한테 군역을 세습해달라고 군사 폭동을 일으키는 지경이 됩니다. ;;
그리고 어느 순간 옛 공화정의 파벌을 연상하게 하는 "옵티마테스"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생각 외로 옛 로마 덕후였던 유스티니아누스가 바꿨던지 그랬을 것 같습니다.(일단 이건 순전히 제 추측이긴 합니다만;)
이들은 대페르시아 전에서 내내 활약했었고, 헤라클리우스가 사산조를 털 때도 그와 함께 했으며
이슬람의 대팽창 시절에도, 옵티마테스로 명칭이 바뀐 고소그라이키는 상당 부분 전투력과 편제를 온존하면서
중세 로마 제국의 대이슬람 방어에 공헌했었습니다.
참, 생각해보면 얄궂은 일이죠.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군을 깨뜨린 원흉들인 고트족들의 후예가
바로 그 제국의 "로마군"이 되어 페르시아, 이슬람과 삼백 년 넘게 대대손손 싸워야만 했다니......
물론 앞에서 봤듯 "고소그라이키"부대가 아마 어느 순간에는 강제로 군역하는 포로 부대가 아니라
정상적인 군대 편제의 일부가 되어 "옵티마테스"라는 상당히 영광스런 이름을 달곤 있었지만...
그 시기는 또 군인 자체가 인기 있는 직업이 되어 아버지들이 아들들 군인 시키려고 안간힘 쓰던
때라 아마 옵티마테스는 부대원 상당수가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군을 박살냈던, 바로 그 고트족들을 조상으로
두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뭐 일부는 군인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았든지 아니면 다른 데로 이주했던지
혹은 신병 모집할 때 새로 들어왔던지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다만 안타깝게도, 옵티마테스는 드디어 근 사백 년 만에 군역이 면제됩니다.
옵시키온 테마 예하 연대였던 옵티마테스가 하필이면 성상 숭배하는 아르타바스두스를 지지해서
콘스탄티누스 5세를 타도했었는데, 유럽으로 도망갔던 콘스탄티누스 5세가 유럽 테마 군대들 닥닥 그러모아
아르타바스두스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물론 옵티마테스는 아르타바스두스 편에서 싸웠습니다만 내응이 있어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당했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콘스탄티누스 5세는 옵시키온 사단을 해체하면서 특히 자신을 괴롭혔던
옵티마테스에게 형벌을 내리기로 결정합니다.
이후로 옵티마테스 연대는 모든 전투 임무에서 제외된 다음,
대대손손 다른 타그마들을 위한 수송 부대 노릇을 하도록 강제당했습니다. 사실 이거 상당한 불명예였습니다만...
하지만 어쨌든, 이 고트족들의 후예들이 근 사백여 년 만에 어떤 의미로든 전투 의무에선 해방된 건 사실이었습니다.
영욕이 교차하긴 했지만 꽤나 영광스런 제대였다고 생각됩니다.
ps. 제가 이전 글에서 옵티마테스 연대도 콘스탄티우스 2세가 창설한 것으로 썼는데 그거 틀린 정보임을 이거
찾아내면서 확인하였습니다. 틀린 정보를 알려드려 일단 죄송합니다.
옵티마테스 연대가 소속되어 있던 프레센탈 사단은 콘스탄티우스 2세가 창설한 게 맞지만,
옵티마테스 연대의 전신인 고소그라이키 연대는 테오도시우스가 창설한 다음 프레센탈군에 편입시켰던 것 같습니다.
첫댓글 항상 마법의 활님의 글은 흥미롭고 재미있네요 잘보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약탈생활하던 부대가 정규군에 편입되서 활약한거 보면 저들부대에게도 상당한 명예가아니었을런지
진짜 재미있는 경우네요 제국 최대적이 제국방위의 선봉에 섰다는게
아 저런 케이스때문에 아나톨리아에 게르마니아 라는 지명이.. 있는거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네타지만 롬바르디아 및 페르시아와 양면 전쟁할 때 다름아닌 동고트족들을 대거 채용해서 돌려막기 전술을 썼고, 대 페르시아 전황이 급속도로 나빠지자 동고트인 부대들을 이탈리아에서 대거 아나톨리아로 빼돌렸었습니다. 이래도 빵구 날 거 같으니까 또 도나우 강 건너편에서 게르만족들을 마구 입대시켜 페르시아로 돌려막기하고 남는 놈들은 도나우 강 방어선에서 지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엄청난 돌려막기였는데 결과는 어쨌든 성공이었습니다. 놀라운 건 이 친구들 다수가 또 아주 나중에 내려온 또 다른 고트족들....;; 1. 테오도릭의 동고트 2. 아드리아노플 고트족 3. 나중에 내려온 고트족 등등등
비잔틴도 죽을 똥을 쌌지만 사실 페르시아도 엄청난 전비 유출에 인력 손실로 황당한 피해를 봤고, 야즈데게르드가 바로 이것 때문에 아 저 미친 황제를 내버려두면 안되겠다 싶은 사산조 귀족들한테 폐위당하고 호스로우 2세가 즉위하게 됩니다. 뭐, 결론은 호스로우 2세가 부친이 저지른 병크를 더욱 대규모로 저질르고야 맙니다만;;
마법//케르손지역에 크리미아 고트족도 긁어모을 비잔틴..ㄷㄷ 그리고 야즈데게르드가 아니라 호르미즈드4세 아닌가요?
아...그렇네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결국은 크리미아 고트족도 긁어모았습니다. 여하튼 고트족들 덕분에 비잔틴의 방어선은 다시금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죠. 그리고 이들은 포이데라티가 아니라 옛 로마 방식대로, 즉 상비군에 입대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한국사에서는 고구려에 복속된 말갈병들이 있었죠..고구려에 저항하다 고구려에 복속당한 이후에 고구려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군에 편입되어 적들과 싸운 말갈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