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攝) [백은선]
동물을 먹으면 그 동물의 기억도 함께 갖게 된다고 믿었
다. 파란 밤. 어째서 얼굴은 습자지처럼 자꾸만 찢어지게 된
걸까. 알고 있니. 네가 뺨을 때리던 날 잠깐 검은 날개가 날
아오르는 걸 봤다는 거. 그것을 지옥이라고 생각했다는 거.
악마가 윙크하면 노래가 시작되고 불이 번진다. 여태 먹
은 것 때문이다. 착실히 씹어 삼킨 것들이 지금의 나야. 그
러니 억울하지 않다.
다음 생이란 걸 상상하게 된 계기는 네 손.
손바닥은 주먹보다 약하고 주먹보다 비겁하다. 분노한 새
들처럼 꺅꺅대며 퍼득거리던 것. 그런 데에도 힘을 쓰는 사
람이었다는 것.
우리가 너무 많은 얼굴을 얼굴 위에 덧칠했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엇나가 찢겨져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너는 울면
서 고백했다. 네 뺨을 지나간 무수한 손들에 대해.
정말 유감이다.
문을 열고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결말,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니. 아무리 많은 고통도 현재의 방패가 되어주진
않는다고.
-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문학동네, 2023
* 며칠전 넷플릭스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란 영화를 보았다.
폭력가정의 이야기다.
습지소녀의 아버지는 가족에게 주먹질을 한다.
엄마가 참다못해 집을 나가고
언니가 나가고 오빠가 나가고
결국 막내인 습지소녀와 아빠만 남았다.
어느날 습지소녀도 주먹질을 당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습지소녀는 홍합을 내다팔며 습지에서 혼자 자랐다.
혼자 습지 식물과 동물, 어패류 등을 그리며 살았다.
남자 두명을 사랑했지만 한 남자는 주먹질을 하는 남자였고
한 남자는 학교를 다니지 않은 습지소녀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마지막까지 사랑을 주는 남자였다.
이 영화가 실화라니 놀라웁다.
주먹질을 하는 남자는 가족이 될 수 없다.
한대라도 맞으면 그 순간 돌아서야 한다.
그게 영화가 주는 교훈이다.
언제 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한다면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