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鷄)으로 사는 것이 좋을까 꿩(雉)의 삶이 좋을까
“꿩 대신 닭”이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장수(長壽)와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풍속으로 설날 아침 떡국을 끓여먹었다. 요즘엔 소고기를 많이 쓰지만 옛날에는 꿩고기를 넣고 끓였다.
떡국에 관한 옛 문헌(文獻)에서는 떡국에 꿩고기를 넣은 것은 고려 후기 귀족들의 매사냥이 유행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매가 사냥한 꿩고기로 맛을 낸 떡국을 설날 별미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일반 서민가정에서는 꿩고기를 구하기 어려워 대부분 닭고기를 넣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유래했다.
필자도 “꿩고기 떡국” “닭고기 떡국”을 먹어봤지만 별로 구분을 못했다. 꿩고기 맛이 닭고기 보다 더 훨씬 맛있다는 의미보다는 생활수준을 한 단계 위로 표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닭은 대부분 닭장이라는 한정된 테두리 안에 갇혀서 산다. 자유가 없다. 그러나 닭장 최대의 매력은 자신이 노력을 안 해도 주인이 주는 모이로 편안히 산다는 점이다. 때 되면 어김없이 주인이 주는 모이만 먹으면 입에 맞든 안 맞든 간에 굶어 죽지는 않는다.
스스로 노력하여 모이를 찾지 않아도 먹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생존 환경이다.
그 대신 닭장을 벗어날 수 없는 자유를 구속당하고 있다. 닭장은 자유를 속박하는 환경이 되지만 다른 면으로 외부로부터 침입과 비바람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 보호역활이 된다.
이와 반대로 꿩은 갇혀있는 상태가 아닌 자유롭다 창공(蒼空)과 산 들 가고 싶은 대로 다니고 자고 싶은 곳에 잔다. 살기 위해 먹는 것도 닭처럼 주인이 주는 정해진 모이를 먹지 않고 산이나 들 강에서 자신이 생존에 필요한 먹이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닭과 꿩의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닭은 먹고 자는 것은 걱정 없지만 자유가 없다.
꿩은 자유를 마음대로 누리지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먹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 야생(野生)이 좋다는 것은 자유(自由)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아들 하나가 대기업에 과장으로 있다. 근무 햇수가 오래되었다. 회사에서는 차장으로 승진하라는 언질을 받는다고 한다. 아버지이며 직장인으로서는 대 선배인 필자에게 이런 자신의 입장에 조언(助言)을 구하는 것이다.
언 듯 생각하면 직장인의 꽃은 승진(昇進)이다 필자 직장 시절은 그랬다 그래서 필사적(必死的)으로 승진시험 공부한 것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은 연수가 오래된 사원은 차장 부장으로 승진시켜 퇴사를 시킨다. 임원이 되면 특별한 능력이 없는 한 옷 벗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단계를 겪은 아버지이며 직장 선배인 필자에게 상의를 하는 것이다.
필자 직장시절에는 승진(昇進)의 명예(名譽)가 중요했다. 그 시절에는 직위(職位)의 대접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직장 환경은 필자의 직장시절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필자의 의견은 승진보다는 직장에 오래있는 것이 이익이라는 조언을 하였다.
요즘에는 50대 회사원이 임원(任員)이 못 되면 “엘더(elder)” 라고 부른다고 한다. 참 슬픈 명칭이다.
마음은 평생직장에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퇴출 명령을 받는다. 천지가 캄캄해진다. 당장 내일부터 수입도 없고 또 갈 곳도 없다. 직장시절 그 호기(豪氣)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엘더(elder)들이 회사를 나가지 않고 연봉을 푹 낮춰 받고 어제까지 자신의 명령을 받던 후배 아래서 자존심 다 버리고 월급쟁이 생활을 악착같이 이어 가려고 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사실 퇴사하면 회사 밖은 감옥과 다름이 없다 당장 갈 데도 없다 귀찮을 정도로 오던 스마트폰의 벨소리도 뚝 끊어졌다.
그래서 어제까지 부하 이었던 후배 밑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지시를 받고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수행(修行)이 따로 없다. 부하 밑에서 일하는 자체가 면벽수도(面壁修道)다
머리 깎고 절에 가서 수행(修行)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참선(參禪)이다. 자신의 에고(ego)를 죽이지 않고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닭의 삶을 택할 것인가 꿩의 자유를 택할 것인가 인생 후반기의 딜레마(Dilemma)가 여기에 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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