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새바람같이는 [이영광]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 아픈 천국, 창비, 2010
* "라면 먹고 갈래요?"
영화의 대사일 텐데 마음문도 열어주고 대문도 열어준 것이니 이 정도면 다 열어준 것일 터.
아재 개그일 수도 있지만 어릴 때, 세상에서 가장 큰 라면은?하고 물으면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이라고 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하고 물으면 '당신과 함께라면'이라고 답했다.
함께 하는 시간과 장소와 마음은 사랑이 충만한 것이다.
높새바람이 산을 넘으며 비를 뿌린다.
거기까지가 사랑의 클라이막스라면 넘고나서 느끼는 건조함은 사랑의 결핍에 이른 것일까.
요즘처럼 비가 많이, 아주 많이 내리면 이걸 사랑이 충만한 거라고 볼 수 있나.
넘치는 건 오히려 결핍과 같으니 적당해야 한다.
높새바람같이는 사랑하지 말자.
우리가 먹을 라면은?하고 물으면 '당신의 뜻이라면'이라고 답하자.
평평한 평야에 부는 바람, 천개의 바람 같은 당신의 뜻이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