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쪽 난 광복절” 짐승보다 못한 더러운 정치 ××들 ---
2024 6 14 조선일보 머리기사 “사상 초유 두 쪽 난 광복절”
태극기를 반을 찢어서 걸란말이냐? 이 더러운 ××들아 !
더럽고 욕도 안 나와 그냥 침묵(沈默)하려고 했는데 몇 자 쓴다.
다카하시 도루(高橋亨たかはし とおる)는 일본 철학자이며 역사학자다. 1902년대 사람이다.
필자가 왜 일본 학자를 거론하느냐 하면 한국근대사를 이야기 할 때에 피해 갈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1902년에 한반도에 와서 1945년 광복될 때가지 한국을 연구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구 내용은 “조선인(朝鮮人)”이란 제목이다. 1921년에 조선총독부에서 간행될 때는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의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조선인의 내면(內面)에 뿌리 내린 식민주의의 문화본질론을 탐구하기 위해서다.
다카하시 도루의 대한제국에 대한 연구 내용은 사상.종교.정치는 물론 설화(說話).속담까지 파고 들었다. 다카하시의 한국학 연구 범위는 방대하다.
왜 일본 학자가 한국을 연구했을까? 한국을 멸시하면서도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원히 지배(支配)하기 위해서다.
침략자 제국주의(帝國主義) 학문은 이래서 무섭다.
100년 전에 다카하시가 조선의 민족성(民族性)에 대해 쓴 책 “조선인(朝鮮人)”은 책 페이지가 긴 분량이 아니다. 하지만 이 짧은 글이 한국사에 남긴 파장은 크고 길었다.
당시 일본 치하에서 조선의 지배 엘리트는 이 책을 통해 조선관(朝鮮館)을 만들어 나갔다.
이 책 내용 중에 “사대주의(事大主義)는 조선인이 조선반도에 사는 한 영원히 지속될 특성”이있다 라는 문구가 있다. 이문구는 지금도 일본 우파들은 “한국은 이런 나라다”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 지배한 조선에 대하여 무슨 소리를 하여도 조선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다카하시가 주장한 조선 “민족성론(論)”이 광복 후에도 악령(惡靈)처럼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내일(2024.8.5.) 광복절을 두 쪽을 내면서 까지---
다카하시가 주장하는 조선의 열 가지 민족성을 모두 곱씹을 가치는 없다. 일본인의 편견(偏見)에서 본 거짓 모순(矛盾) 왜곡(歪曲)한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처럼 부정하기 어려운 한 가지가 한국인을 괴롭힌다.
다카하시가 조선인의 네 번째 민족성으로 거론한 것은 “당파심(黨派心)”이다. 즉 “분열(分裂)하는 민족성(民族性)”이라는 것이다.
다카하시는 그가 쓴 글에서 “가문(家門).계급(階級).신앙(信仰).이익(利益)을 배경(背景)으로 모든 분야에 파벌(派閥)을 만드는 사람들은 조선인 이외에 아직 본 적이 없다”고 썼다.
다카하시(たかはし とおる)는 “조선인은 원래 이해(利害)에 따라 움직이는 무리”란 말도 썼다. 일제식민지에서는 이런 의미의 내용을 조선 초등학생에게도 가르쳤다.
식민지 국민은 이렇게 슬픈 것이다 우리는 다카하시로부터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다 우리 탓이다 !
조선 말기의 대문장가 이건창(李建昌)은 그가 쓴책 “당의통략(黨議通略)”이 있다. 그 책 내용 중의 한 문장에서 조선은 “두 당이 세 당이 되고 네 당이 되어 200여년이란 긴 기간 동안 끝내 정론(正論)을 세우지 못한 붕당(朋黨) 싸움만 한 나라를 들라면 오직 우리 조선이 그렇다”고 했다. ※붕당(朋黨)-조선 중기 학맥(學脈)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형성된 집단(集團)
다카하시가 조선을 아무리 나쁘게 말해도 우리가 분열하지 않으면 “조선인(朝鮮人)”이란 그의 책에서 주장은 역사 속에 사라진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매우 슬프다. 다카하시의 망발(妄發)을 이 땅에 계속 키우고 있는 것은 일본인 학자 다카하시가 아니다. 우리 국민이다! 우리 정치인들이다 !
우리는 왜 분열하고 있을까. “사상 초유 두 쪽 난 광복절”이 되었을까 위의 이건창이 제시한 여덟 가지 이유 중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나라의 태평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건창은 말하기를 “조선은 적군이 침략해 오면 그것을 당해내거나 막지 못했다. 적군이 물러가면 정부나 국민이 모두 편안하게 여겨 “언제 전쟁이 일어났던가” 금방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어려움이 없었던 듯했다”고 비판했다.
임진왜란도 병자호란도 모두 분열로 인하여 침입을 당했다. 조선 분열의 상징인 헛된 예송(禮訟) 논쟁은 병자호란 22년 후에 일어났다. 후대는 이를 정신을 못 차린다고 가혹하게 비판한다.
광복 79년, 6.25전쟁 74년 ! 지금 대한민국은 분열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대한민국 주기설”을 주장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밥 먹고 살만하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어떻다”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마치 몇 백 년 전부터 그런 줄 알고 있지만 불과 20년 이쪽 저쪽 세월이다.
광복 후에 남북이 두쪽 났다 지금 “광복절 두 쪽”은 1948년 두쪽과 같다.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