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895호
프리지아 글라디올러스 빼빼로데이
손택수
프리지아 글라디올러스 빼빼로데이
이건 나의 주문, 주문을 외면 힘이 솟지
무거운 발걸음도 까딱까딱 박자가 맞지
지루하면 순서를 바꾸어 보자
글라디올러스 프리지아 빼빼로데이
순서를 바꾸면 다른 리듬이 생겨나지
순서만 바꾸었을 뿐인데 다른 풍경들이 보이지
빼빼로데이 프리지아 글라디올러스
말들에 환풍기를 달아 주자 환풍기 날개로 더운 숨을 뿜어내자
아무런 뜻이 없어도 좋아 의미가 뭐냐 주제가 뭐냐
뜻으로 머리가 빠개질 거 같아
뜻 없이도 말들은 서로 사귈 줄 알지 노래할 줄 알지
말들을 종처럼 흔들어 보자, 나도 종이 될 수 있도록
빼빼로데이 글라디올러스 프리지아
- 『나의 첫 소년』(창비교육, 2017)
***
덥고 습하고 잦은 비에 우울할 때는 아무래도 이런 시 한 편 읽은 것도 좋겠다 싶습니다.
손택수 시인의 첫 청소년시집 『나의 첫 소년』에서 한 편 띄웁니다.
- 프리지아 그라디올러스 빼빼로데이
제목이 참 거시기하지요.
시인(화자)의 말에 따르자면 일종의 주문이랍니다.
이 주문을 외면 힘이 솟는답니다.
이 주문을 외다 보면 박자와 리듬이 생겨난답니다.
지루하면 순서를 바꿔도 된답니다.
- 글라디올러스 프리지아 빼빼로데이
그러면 다른 리듬이 생겨나고
다른 풍경들이 보인답니다.
과연 그러하네요.
저도 이와 비슷한 주문을 하나 외고 있긴 합니다.
손택수 시인의 주문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저의 주문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긴 합니다.
- 살라가둘라 메치카볼라 티루카카 꾸루꾸루 칸타삐아 비비디바비디 부
이것은 사랑의 묘약이며, 사랑의 세레나데입니다.
이것을 외우면 기적처럼 사랑이 찾아올 겁니다.
물론 부작용이 있으니 주의하셔야겠지요.
사용법은 제 시집 『안녕, 오타 벵가』에 나와 있으니, 참조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소리로
말보다 더 즐거운 시를 만들수도 있으니
시가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되는 것이니
시는 문(文)의 학(學)이 아니라 예(藝)가 맞지요.
문학이 아니라 문예라는 얘기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은 그냥 주문을 외세요.
- 빼빼로데이 글라디올러스 프리지아
사족. 프리지아의 꽃말은 "당신의 앞날을 축복합니다."
글라디올러스의 꽃말은 "당신은 나의 운명"입니다.
2023. 7. 24.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