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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kt위즈의 팬인 환상의 식스맨입니다.
비시즌 많은 악재가 있었지만 다행히 현재 kt위즈의 순위는 5위입니다.
물론 두산, sk, nc, 넥센에 비하면 경기차가 상당히 뒤떨어진 5위이지만
신생팀이고, 또 불미스런 일도 있던 팀인지라 지금의 순위에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 게시판에 여러번 kt 관련 글을 썼지만 안타깝게도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아 아쉬운 적이 많았습니다.
물론 각 팀별로 인기팀이 있고 비인기팀이 있으니 그 점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30~1시간 정도 걸려서 쓴 글들이 외면받을 때는 굉장히 아쉬운 마음도 들더군요.
오히려 10분이면 만들 수 있는 응원방이 댓글이 많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 게시글이 주목받았으면 합니다^^
kt에 대해 팬들이 알고 있는 건 대체로 주전급 선수들입니다.
뭐 당연히 주전들을 많이 아는 것은 당연한 거죠.(이대형, 이진영, 박경수, 김상현, 박기혁, 유한준 등등등)
또한 그 선수들도 나름의 시련을 이겨내고 kt에서 꽃을 피운 선수들이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팬들이 모르는 곳에서 묵묵히 땀을 흘린 끝에 이제서야 kt에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선수들이 현재 kt가 주전 선수들의 부상 속에서도 5위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죠.
정말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현재 빛을 보고 있는 4명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장시환 선수와 김사연 선수는 그래도 대부분의 팬들이 그 스토리를 아실 거라 생각해 굳이 소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장시환 선수는 예전 박동희 기자의 소개대로 갑상샘암을 이겨내고 선수로서 재기에 성공, 현재 kt에서 그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중이고, 김사연 선수는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군복무중 방출되고 다시 넥센으로 갔다가 2차드래프트 때 kt에 지명, 퓨처스리그에서 대활약을 보였지만 아쉽게도 작년과 올해 모두 개막 직후 불의의 부상으로 재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전 글에서 김종민 선수에 대해서도 자세히 썼기에 제외합니다.)
1. "만년 백업, 주전을 노린다." 김연훈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047&aid=0001981492
김연훈은 대학 1학년 때 폐암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늦둥이 아들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 원양 조업을 나갔다며 폐암 말기가 될 때까지도 투병 소식을 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교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야구를 그만두고 공사장 막일이라고 나갈까 고민하던 김연훈은 어렵사리 성균관대 진학에 성공했고 그때 김성근 감독을 처음 만나 뒤늦게 야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KIA에 입단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던 김연훈은 데뷔 첫해 타율 1할4푼8리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기고 트레이드되어 SK에 입단했다. 타격은 부진해도 수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SK의 탄탄한 내야에는 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던 나주환이 군입대를 하면서 김연훈에게 기회가 오는 듯 했지만 베테랑 유격수 박진만이 들어왔고 유망주 최윤석이 주목을 받으면서 김연훈은 계속 2군을 오가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11&aid=0000595666
김연훈은 2007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전체 16순위)로 KIA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1년 뒤인 2008년 SK로 트레이드 됐고, 지난 시즌은 종료 후 2차드래프트로 kt로 옮겼다.
군 복무를 제외하고 5시즌 동안 유니폼을 입고 있던 SK를 떠나게 된 김연훈은 "당시에는 서운하기도 했다. 일단 SK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40인에서 제외됐다는 것이 아쉬웠다. 젊은 선수들에게 많이 밀렸고, SK에서는 안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원에와서 도전할 기회가 다시 생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개막 후 줄곧 선발로 출장하고 있지만, 그는 아직 이 상황이 낯선듯 했다. 김연훈은 인터뷰 내내 "나는 주전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나는 주전에 대한 큰 욕심이 없다. 예전에는 '나는 백업이네'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경기는 다같이 하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불어넣고 있는 주문은 강력했다. 그는 "'내가 최고다'라는 말을 항상 마음 속에 새기고 있다. 프로에 올라왔을 때부터 항상 내가 최고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비록 내가 백업이고, 주전선수가 아니더라도 그런 생각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요즘 다시 타율이 부진하고 있긴 하지만
이 부상 선수들이 많은 팀에서 이 선수가 없었다면
더욱 많은 수비실책이 나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선수도 어느 덧 데뷔가 10년이 넘었는데 kt에서 보배같은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홍성용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10&aid=0000273004
“여기 와서 가장 좋았던 게, 감독님이 코치님들 통해서 전하신 말씀이었다. ‘그냥 자신 있게 던져라’라는. 맞으면 어때, 맞아도 공부가 되는데. 그렇게 해가면서 커가는 거지 계속 피해가기만 하면 성장을 할 수 없다고. 그 말에 마음에 정말 편해졌다. 나는 남들이 던지는 145km의 공은 못 던진다. 그러다 보니 제구력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타자들이 못 치는 코스에 던지도록 연습 때도 노력하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그게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감독님, 코치님들께서 ‘자신 있게 던져, 맞으면 어때’ 한 마디 해주시면 용기가 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2군에 있던 그저 그런 투수였는데….”
홍성용의 양 팔에는 문신이 있다. 왼팔에는 자신의 이름과, 현재에 충실하자는 뜻의 ‘Carpe Diem(카르페디엠)’을, 그리고 오른팔에는 어머니의 이름과 함께 영어로 ‘믿음’을 새겼다. “일본에 가기 전에 했는데, 나는 왼손잡이고 어머니가 오른손잡이다. 투구할 때 왼팔로만 던질 수 없고 오른팔의 반동이 있어야 하니까, 어머니의 힘을 빌린다는 의미다.”
“나는 원래 좋은 위치에 있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 벌써 30경기에 나가고 있고, 우리 팀이 야구도 잘하고 있지 않나. 분위기도 너무 좋고,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같다. 여기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44&aid=0000427787
홍성용 야구인생 최고의 날은 2014년 4월12일이었다. NC 유니폼을 입고 난생 처음 1군 마운드에 섰다. 잠실 LG전, 10-1로 넉넉하게 앞선 9회말이었다. 홍성용은 그때 “마운드에 올라갈 때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천안 북일고를 졸업하고 2005년 LG에 2차 5라운드에 지명됐다. 이듬해 경찰청에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지만 2008시즌이 끝난 뒤 방출 통보를 받았다. 1군 경기에 한 번도 던져보지 못한 채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삶이 끝날 위기에 몰렸다. 함께 방출된 박가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홍성용은 “일본 독립리그에서 함께 뛰자고 하더라. 월급도 있다고 했다. 부모님도 야구를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꼭 좋은 모습으로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본 독립리그 오사카, 미에 등을 거치면서 4년 넘게 던졌다. 중간에 LG에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원하는 만큼의 공을 던지지 못했다. 죄송하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기회는 2013년 말 찾아왔다. 이번에는 NC에서 테스트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마침 한 스포츠케이블의 투수 선발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도 왔다. 홍성용은 “한 번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을 맡은 박찬호는 홍성용을 1위로 뽑았다. 그리고 NC 유니폼을 입었다.
최고의 날’ 보다 더 ‘최고의 날’이 찾아왔다. 홍성용은 14일 고척 넥센전, 4-1로 앞선 5회말 1사 1루에 마운드에 올랐다. 1루주자 임병욱을 견제로 잡아낸 뒤 서건창에게 3루타를 내줬지만 홍성갑을 뜬공처리하며 위기를 벗어났다. 6회에는 고종욱, 대니돈, 김민성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임무완료. 이후 고영표와 장시환이 아슬아슬한 리드를 막아냈고, 홍성용에게 ‘승리’가 새겨졌다. 야구 시작한 뒤 11년만에 맛 보는 첫 승이었다. 포수 김종민은 마지막 공을 챙겨 홍성용에게 건넸다.
홍성용은 “2년 전 4월12일이 야구 인생 최고의 날이었는데, 이제 오늘이 최고의 날이 됐다”고 말했다. 노력은 언젠가 보답을 하기 마련이다. 비록, 그 시간이 11년이라 할 지라도. 홍성용의 웃음에 이제 자신감이 배어났다.
데뷔 11년만에 첫 승을 달성했던 홍성용 선수였습니다.
조범현 감독도 사위삼고 싶다고 말할 만큼 정말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치렀는데요.
늦게나마 kt에 안착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속이 낮고 하체보다 팔에 의지하는 특이한 투구폼 때문에
오랜시간 투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현재 kt에서 최소 1이닝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수입니다.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데뷔 11년을 버텨오셨는데 그 열정 그대로
kt불펜의 핵심으로 계속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3. "내려갈 곳은 없다. 올라갈 일만 남았다." 배우열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3293691
배우열은 2009년 LG의 육성선수로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LG에서 2009~2010년 두 시즌 동안 8경기에 출전했지만 9이닝 15자책점에 그쳤다. 이 성적을 끝으로 상무 야구단에 입단했다. 군 복무로 배우열은 급성장했다. 그는 “확실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시간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운동할 시간이 생기고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보니 구속까지도 생각하게 됐다”라고 회상했다.
배우열은 빠른 공을 던지기 시작하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2012년 말 제대 후에는 LG의 1군 불펜 전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어깨 통증으로 끝내 1군에 오르지 못했고 재활에만 매달렸다. 배우열은 “부상을 당하고 1년 반을 쉬었다.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욕심을 부리다보니 어깨에 무리가 왔다. 이상하게도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공을 던질 때 어깨가 못 버텼다. 당시 트레이너 파트에서 ‘마음의 병’이라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공을 던질 때 어깨가 아프다보니 지레 겁이 났다. 두려움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결국 2014년 LG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후 kt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고향 팀에서의 새 출발은 뜻 깊었다. 배우열은 초·중교를 모두 수원에서 나왔다. “kt가 10구단 창단 경쟁을 벌일 때도 내심 속으로 응원했다”는 게 배우열의 말이다. 어릴 적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하기 위해 수원 구장을 찾기도 했다.
배우열은 꾸준히 몸을 불렸고 지난 시즌 1군 전력에 포함됐다. “나름대로 생각한 변화였다. LG 시절에 80kg 정도였는데, 지금은 90kg다. 공에 무게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밥도 많이 먹고 운동을 많이 했다. 지금은 변화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1군에서 뛰면서 자신감도 얻었다. 그는 “안 아프고 던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예전에 수원 구장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니까 만감이 교차했다”며 미소 지었다.
올 시즌을 위한 준비는 더 철저했다. 배우열은 지난해 12월 새 신랑이 되면서 책임감이 더 생겼다. 하지만 운동을 하느라 신혼 여행도 가지 못했다. 마무리 캠프부터 개인훈련, 스프링캠프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정명원 코치 역시 “캠프에서 노력을 정말 많이 했고 제구, 체력이 좋아졌다”라고 칭찬했다.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시즌 초반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배우열 선수이지만
아쉽게도 종아리 근육 파열로 이탈한 상태입니다.
근육이 파열된 상태로 투구를 해서 조범현 감독이 "어떻게 참았는지를 모르겠다"고 할만큼
어마어마한 투지를 보여줬는데요.
개인적으로 부상투혼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지라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배우열 선수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다시 1군에서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4. 9년만에 봄을 맞이한 전민수, "내가 바로 잡초계의 끝판왕!"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41&aid=0002552482
전민수는 지난 22일 대구 삼성전에 7번·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1-2로 뒤진 4회 초 무사 만루에서 2타점 결승 2루타를 터뜨렸다. 프로 입단 9년 만이자 1군 23타석만에 때려낸 첫 안타가 결승타였다. 7회에도 1타점 3루타를 때리는 등 4타수 2안타 3타점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지난해와 올 시즌 대타, 작전능력, 수비, 주루 플레이, 득점권 상황에 노림수 등 여러가지 준비를 많이 했다. 더 잘하려기 보다 준비한 것을 후회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200% 보여준 것 같다"고 웃었다. 전민수는 23일 삼성전에서 6회 대타로 나와 쐐기 2타점 2루타를 터뜨렸다.
전민수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어쩌면 전동수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지 모른다. 덕수고 재학 당시만 하더라도 아마 야구에선 굉장히 유명했다. 청룡기 고교대회 타격상·타점상, 봉황대기 수훈상을 수상했다. 전국대회 최고 타율을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도 받았다.
그는 2008년 현대 2차 4라운드 27순위로 입단했다. 2008년 16타석, 2009년 6타석에 들어섰지만 안타는 없었다. 그가 프로에서 제대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부상'이 지독하게 괴롭혔다. 고교 재학 당시에도 발목에 핀을 박는 수술을 한 적 있다. 군 제대 후엔 어깨 수술을 두 차례나 했다. 그는 "수비 도중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를 다쳤는데 재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부상으로 재활한 기간만 4년 정도 됐다.
야구가 마음대로 안 되자 개명을 선택했다. 그는 "원래 미신을 잘 안 믿는 편이다. 안 좋은 징크스도 훈련을 통해 이겨내려 하는데"라며 "부상이 계속 이어지니 이름을 바꿔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닥친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부상으로 신음하자 2013년 11월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됐다. 즉, 방출이었다.
전민수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엔 묵묵히 응원하고, 힘을 보태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재활 도중 방출된 그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훈련비를 마련했다. 아마 야구 학생을 가르치고, 사회인 야구 레슨을 통해 돈을 벌었고, 이를 재활비용으로 썼다. 그렇게 프로 재입단의 꿈을 쫓은 그는 마침내 2014년 8월 kt 육성선수로 다시 팀을 찾았다. 지난 16일 7년 만에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그는 "여기서 얘기해도 되나요?"라고 물으며 "도움주신 분이 정말 많다"고 소개했다.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준 분들인 만큼 감사 인사를 남기고 싶은 건 당연했다. 그는 "두 차례 어깨 수술 뒤 다시 공 던지기 힘들다는 얘기가 많았다. 당시 5m도 공을 못 던졌다"면서 "프리미어12 수석 트레이너로 참여한 김병곤 스포사피트니스 대표, 또 김동우 트레이너에게 정말 고맙다"고 인사했다.
전민수의 재활 기간에는 동료들도 늘 응원했다. NC 구원 투수로 활약 중인 동갑내기 박민석이 그랬다. 박민석 역시 그 기간 두산에서 방출돼 무적 신분이었다. 재활을 해야 다시 팀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둘은 함께 훈련을 많이 했다. 전민수는 "서울고에서 사회인 야구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민석이가 공을 던져주면 라이브배팅 연습했다"며 "그런 날이 있어 어제(22일) 같은 좋은 날이 있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전민수가 프로 첫 안타를 기록한 날, 공교롭게 박민석은 첫 세이브를 올렸다.
그 외에도 두산 최재훈과 팀 선배 윤요섭이 큰 힘이 되어줬다. 전민수는 "재훈이는 2013년 한국시리즈 때 다쳤다. 나는 무명 선수였고 재훈이는 한국시리즈까지 뛴 선수였는데 함께 재활했다. 그때 밥도 많이 사주고 목욕탕도 데려가주고 그랬다. 그때 재훈이가 '내가 포수로 있을 때 네가 타석에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그랬다"고 얘기했다. 또 "요섭이 형은 멘토다. 힘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요즘 형과 야구 이야기를 하는게 정말 재밌다"고 덧붙였다.
그가 가장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사람, 그중 한 명이 바로 여동생(전혁주·21)이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재학 중인 전혁주 씨는 서울대 야구부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전혁주 씨는 오빠의 든든한 전력분석원이자 원군이다. 전민수가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0.395-8홈런-46타점을 기록한 지난해, 전혁주씨는 성균관대 수원 자연과학캠퍼스를 찾아 응원했다. kt는 지난해까지 성균관대를 2군 훈련지로 사용했다. 전민수는 "동생이 관중석에서 계속 타격폼을 찍어 분석하라며 보여줬다. 한 여름 무더위에도 관중석을 찾더라. 정말 고맙다"고 했다.
전민수는 경기 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축하 인사를 받았다. 동생이 이렇게 축하했다. "오빠 정말 멋있더라. 특히 만루에서 2루타를 칠 때 내 속이 다 시원하더라. 완전 사이다였어"라고.
kt 전민수는 이제 처음으로 1군 무대에 기록을 남겼다. 그에게 목표를 물었다. 전민수는 말했다. "지난해 kt 팬페스티벌에 나가 팬들에게 남긴 인사말이 기억난다. 그때 '대체 불가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항상 겸손하고 임팩트 있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어필하고 싶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
이렇듯 현재 kt는 저런 얼굴도 잘 모르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그렇지만 뒤에서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했던 선수들의 활약이
스타급 선수들의 활약을 뒷받침해주며 동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름있는 베테랑에게만 의존했던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의 kt의 성적은 기대할 수가 없었겠죠.
그들의 부상공백, 외국인선수의 부상공백이 있을 때
어떻게든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고자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저 선수들의 노력은 kt팬으로서, 야구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크나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든든한 국내선발투수의 부재로 더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
kt의 현실이지만 만약 저런 선수들, 이름은 모르지만
절박함으로 무장한 선수들이 화수분처럼 나올 수 있다면
kt의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의 캐치프래이즈는 "승리를 넘어 감동으로"라는 문구입니다.
느낌은 다르지만 현재 kt위즈는 저에게 "승리를 넘어 감동을 주는" 멋진 팀입니다.
이 팀을 응원하게 되서 행복하고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스포츠를 넘어 인생에 교훈을 주는 kt위즈의 야구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여러번 시련을 겪고 드디어 kt위즈의 주전포수로 자리잡은 김종민 선수의 눈물나는(?) 인터뷰를 감상하시죠.
첫댓글 정말 이런선수들이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진행, 안지만, 임창용 같은 선수들 말구요 ㅠㅠ
사실 kt도 엄밀히 말하면 저런 선수들이 있지요. 박기혁, 오정복은 음주운전, 신현철은 여기에 한술 더떠 혈중알코올 0.189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음주뺑소니로 불구속기소,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죠. 장성우, 장시환은 SNS를 통해 사생활 물의를 빚었고요. 그나마 장시환은 딱히 뒷담화가 없어 다행이었지만 장성우는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ㅠㅠ
@환상의 식스맨 아 그런일이 있었군요 ㅠㅠ
KT팬입니다. 앞으로 댓글 열심히 달게요ㅜㅜ
감사합니다. 저도 바빠서 게시글 잘 안쓸 때가 많긴 하지만 (사실은 질 때가 많아서 안쓰지만) 어쨌든 꾸준히 관심가져주신다니 힘이 나네요^^
참 화려한 이면에 저런 숨은 눈물들이 많겠죠 야구선수들 다 실제로보면 양아치일거라 생각했는데 저런 포기하지않고 묵묵히 선수생활해나가는 선수들보면 제 생각이 부끄럽네요 응원합니다
그렇죠. 여기에 안썼지만 음지에서 노력하는 선수들이 더 많습니다. 물론 빛을 보는 선수는 극히 일부지만 빛을 못봐도 그들의 노력은 존중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글을 넘어 진심이 느껴지는 글 잘봤습니다~ 엘지 출신 선수들도 않은데 이참에 갈아탈까 생각도 드는 엘지 팬입니다.
LG kt랑 붙을 때 잘하던데 갑자기 왜... 제가 좋아하는 채은성 선수가 잘해서 뿌듯한데요. 이 팀도 미생 선수가 많은 팀이라 미래가 기대된다고 생각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혹사 맞죠. 원래 이번시즌에 선발로 전환하려 했었는데 지난시즌 십자인대파열로 물건너갔죠. 여기에 조무근까지 폼이 떨어져서 현재 장시환 없으면 불펜 전력이 반토막나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고영표가 예상보다 좋은 투구를 보여주며 필승조로 전환하여 장시환을 돕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죠. 아마 내년에 장시환이 선발로 뛰게 되면 관리를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확실히 NC,KT가 리그에 가입하면서 리그에서 못볼 선수들이 많이 발굴되었죠. 특히나 외부 스타급 선수도 있기는 해도 신인과 무명선수 발굴 성장에 관심을 더 보이니 좋은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KT 불펜이 걱정되는게 잘못하면 작년 한화만큼은 아니더라도 작년 넥센 불펜처럼 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범현 감독이 기아, SK시절 김성근 감독만큼은 아니지만 은근히 혹사가 있었는데 이거 해결 못하면 큰일날듯 합니다 김종민은 작년 장성우보다는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장성우가 돌아오면 주전싸움이 어찌될지 궁금하네요 오정복의 경우는 정찬헌, 정성훈과 똑같은 음주운전인데도 그들보다 징계가 가벼웠던게 신생팀 프리미엄으로 혜택을 준듯한 느낌이에요 장성우가 빠진마당에 오정복까지 중징계 받으면 KT의 타격이 커질거라 생각해서 크보가 봐준 느낌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