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이 적당하면 팔고말고! 나는 제값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 !!
논어(論語) 제9편 자한(子罕) 12장 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子曰 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물었다. 선생님은 “아름다운 옥(玉)이 있다면 궤(匵)속에 감춰 두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으시면 좋은 값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파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팔고 말고! 나는 높은 값을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공자(孔子)의 현실참여, 정치참여를 암시(暗示)한 글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보석(寶石)이 있다. 궤 속에 감춰 두는 것이 좋을까? 좋은 값을 줄 적격자가 있다면 파는 것이 옳을까?
위에 논어의 내용은 언어에 뛰어난 공자(孔子)다운 말솜씨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은 스승인 공자가 높은 학덕을 지니고서도, 초야(草野)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세상에 나아가 벼슬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물었다. 공자는 자신도 세상에 나아가고 싶으나, 진실로 자신을 이해하고 등용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마치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이 이윤(伊尹)을 만나고,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강태공(姜太公)을 만나고 삼국지의 유비(劉備)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삼고초려(三顧草廬)한 것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란 경제 용어가 있다. 영국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Pippa Malmgren)이 만든 용어다 ※슈링크(shrink)-옷을 뜨거운 물에 빨아서 줄어들거나 오그라지다의 뜻이다 ※플레이션(flation)-상승(上昇)
“줄어들다”라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상승”을 나타내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이다. 가격을 그대로 둔 채 제품의 중량을 줄이는 꼼수인 “패키지 다운사이징(package downsizing)”이라고도 한다.
가격(價格)은 유지하면서 제품 크기나 수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사실상 값을 올리는 효과를 거두는 전략이다.
▶다산(茶山)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는 고대 중국 한나라 때의 경수창(耿壽昌)의 상평법(常平法)을 인용하고 있다. 값이 싸면 비싸게 사들이고 비싸면 싸게 내다 파는 방법으로 일정한 가격을 유지하는 경제안정운용 정책이다.
▶“물건은 제가격을 주고 사야지”하는 말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대한민국 제일의 미술관을 세운 “간송미술관”설립자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선생이시다 아니 선생이 아니라 최고의 애국자다.
현재 세종대왕의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 존재하면서 세계적인 문자로 등장하는 세종대왕의 “한글”은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애국자 때문에 대한민국 자손만대에 전해지는 것이다.
아래에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 현재 대한민국 한글로 존재하는 일화(逸話)를 간단히 소개한다.
▷일본 식민지 때 조선의 부자로는 호남에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가 있었다. 영남에는 경주 최부자(崔富者)가 있었다. 충청도에는 공주 갑부 김갑순(金甲淳)이 있었다. 서울에는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이 있었다.
당시 간송의 재산은 10만석이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오세창(吳世昌)의 권유로 이 거대한 재산으로 조선의 미술품을 수집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간송미술관이 존재하고 사후에는 문화재를 남겼다. 간송(澗松) 덕택에 한국에서 미술사라는 분야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필자가 55년 전 서울에 와서 제일먼저 문화재를 찾은 곳이 현재의 성북동 간송미술관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후학들이 미술품을 감상하는 안목(眼目)이 배양(培養)될 수 있었다는 것은 간송미술관 덕이라고 본다. 규모가 큰 삼성미술관과는 성격과 뿌리가 다르다. 간송미술관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다.
간송(澗松)은 미술품을 수집할 때 특징이 값을 깎지 않는다는 점이다. 값을 깎는다고 소문나면 골동 상들이 일급 골동품을 가지고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는 간송(澗松)이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국보 70호를 손에 넣게 된 일화다.
【1942년 늦여름 간송은 오랜만에 한남서림에 들렀다. 간송 집에는 문화재 정보꾼들이 살다시피 하여 정보를 전해주는 터라 간송(澗松)이 굳이 현장에 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어떤 힘에 이끌리듯 한남서림으로 향했다. 한남서림에서 창밖을 보던 간송은 평소에 골동품 서적(書籍)을 거간(居間)하기로 유명한 골동상인 하나가 하얀 모시 두루마기 나들이옷을 입고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점 직원인 이순황을 시켜 무조건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잠시 후 이순황을 따라 들어온 골동상인에게 간송은 “어디를 그렇게 부지런히 가는 길이오? 더위나 좀 식히고 가시구려 ” 간송(澗松)이 냉수를 권하며 웃으며 말하자 그 사람은 조금 머뭇거렸다.
서울 최고의 갑부인 간송이 “뭔가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하고 묻는 간송의 날카로운 질문에 그 사람은 그만 실토를 하고 말았다.
▷골동상인-“실은 지금 경상도 안동에서 기막힌 물건이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간송-“기막힌 물건이라… 물론 서적이겠지요? ▷골동상인-“예 아주 큰 물건입니다” ▷간송-“어서 이야기하시지요” 하고 재촉했다. ▷골동상인-“훈민정음 원본이 나타났다 합니다”
순간 간송(澗松)은 숨이 멎는 듯 했다. 머리가 갑자기 하해지는 것만 같았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찍어낸 훈민정음 원본. 존재했다는 것 만 전설처럼 내려온 훈민정음 원본이 나타났다니..
▷골동상인-“책 주인이 일천 원을 불렀다고 합니다. 금액이 너무 커서 그래서 지금 돈 구하러 가는 길입니다”
간송(澗松)은 즉시 안동으로 직접 내려갔다. 간송(澗松)은 책주인의 손을 잡고 천천히 말했다. ▷간송-나와 여러 번 거래해봐서 아시겠지만 물건은 제 값을 주고 사야지요” 일천 원은 그 책에 맞는 제가격이 아닙니다. 간송(澗松)은 선뜻 “일만 일천 원”을 주면서 “책값은 일만 원입니다 그리고 일천 원은 소개인 수고비로 받으세요”
이렇게 해서 훈민정음(국보70호)은 일제 치하에서 무사히 대한민국 품에 보존 될 수 있었다. 정말 아찔하고 꿈같은 이야기다.
훈민정음해례본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간송(澗松)이 아니었으면 그 누가 그렇게 큰돈을 내고 살 수 있었겠는가 만일에 그때 훈민정음해례본이 일본 손에 들어갔으면 일본은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다” 증거를 내놔바라! (그리고 한글은 일본이 만든 것이다)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훈민정음해례본은 일본에 의하여 영원히 지구상에서 없어질뻔했다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다 !
▶지구상의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다 제가격을 지니고 있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배(無價之寶)가 있는가 하면 아예 값을 매길 필요도 없는 형편없는 존재도 있다.
사람의 이름에도 값이 있다. 그 이름의 값에 따라 세상 사람의 선택을 받는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 삼국지의 제갈량이 유비로 하여금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한 것은 이름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다. 비싼 값을 치른 대상은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 존재를 존중해 주기 때문이다.
공자도 자신의 값을 제대로 쳐줄 통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 자공이 “아름다운 옥(玉)을 깊은 곳에 감추어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에 파시겠습니까?” 하고 묻는 자공의 말에 대해 공자는 한마디로 “팔아야지!
나는 제값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자는 제값을 쳐주는 군왕을 만나지 못했다.
분명한 목적을 안고 값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제 값에 모셔오는 게 현명한 지도자다. 값을 안 줘도 좋으니 써주기만 해주시라고 달라붙는 모리배를 “내 사람”으로 여기는 통치자가 어두운 통치자(昏君)요 어리석은 지도자다
가격만 맞으면 얼마든지 팔지!! 나는 제가격을 받을 수 있는 대통령인가? 나는 제가격을 받을 수 있는 남편인가 아내인가? 나는 제가격을 받을 수 있는 아버지인가? 나는 제가격을 받을 수 있는 자식인가? 나는 제가격을 받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의 친구인가?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