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좌익수뒤로님께서 빙그레이글스 창단당시 김승연 회장이 사재(?)를 털어 KBO에 30억을 기증한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그 내용을 읽다보니 문득 이 글이 생각나서 찾아왔습니다. 다음 야구게시판에 '레드카드'님이 쓰신 글을 파울볼 '전설의 이강돈'회원님이 퍼오셨는데 그 글을 다시 퍼왔습니다.
(우리 카페 게시판에도 한 회원님이 퍼오셨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최근에 팬이 되신 분들이라면 좀 어렵겠지만 올드팬이라면 굉장히 재밌게 읽으실겁니다. 원문글이 2008년 시즌 중반에 작성된 글이라 09년과 10년, 그러니까 김인식 감독 재임 후반기와 한대화 감독 시절은 기술되지 않았습니다.
===============================================한화왕조실록======================================================
제 1대 태조(太祖) 배성서
① 영덕왕 3년에 OB국이 서울을 향해 떠나니, 대전궁(大田宮)이 황폐 하였다.
② 한해가 지나, 터를 잡고 나라를 세우니, 국명을 빙그레라 했다.
③ 성서 원년, KBO에서 칙사(勅使) 웅희를 보내다. 이에 천자와 기존 제후들의 뜻을 전하니..."이미 제후들이 땅을 갈라 6분하여 다스린지 오래되었다. 이러할 진데, 소국(小國)으로서 어찌 성의를 보이지 아니하는가. 총제께서 매우 불편해 하시니, 소국(小國)은 30억냥을 조공하여 예를 다하라."
④ 성서 원년, 총재와 KBO의 독촉이 급하나 나라에 현물이 부족하였다. 이에 부호 김승연이 강남의 도곡동에 땅을 내어 놓다. 이곳에 천자를 위해 궁성을 축조하여 현물 30억냥을 대신하여 조공하였다. 천하 제후와 천자께서 매우 흡족해 하였다.
⑤ 성서 2년, 부역을 독촉하여 도곡동에 궁성이 완공되었다. 총재가 새로운 도성으로 옮겨 천궁하니, KBO회관의 역사가 오늘에 이르다.
⑥ 나라안에 인재가 부족하니, 나라가 빈약하였다. 천자에게 거듭 청하여, 6국의 인재를 고루 나누어달라 청하다. 허나, 제후들이 협조하지 아니하다.
⑦ 삼성국에 인재가 풍성하여, 정훈, 정길, 강돈과 같은 젊은 인재들이 설자리가 없었다. 이들이 본국에 청하여, 떠날 뜻을 전하다. 삼성국은 이들을 애써 붙잡지 아니하였다. 이들은 모두 그 출신이 대구이니, 후에 빙그레국을 크게 융성시키는데, 비로소 삼성국이 땅을 치며 후회하였다.
⑧ 성서 원년, 삼미국 전설의 용장 명부가 투항해 오다.
⑨ OB국 타점장군(打占將軍) 대화가 문신들과 불협화음이 잦았다. 이에 대화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나, OB국에선 이를 윤허하지 아니하다. 장수 우열 등을 빙그레국에 보내고, 타점장군(打占將軍) 대화만은 해태로 보내어 졌다. 대화는 필생 동안 고향국에 의지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도리여, 일생동안 해태국과 LG국의 선봉에 서서 고향국을 향해 창칼을 드리우니, 고향국의 천하제패를 최일선에서 막아서야 했다. 어찌하여 사람의 운명이 이리도 마음대로 되지 아니한가.
⑩ 재위 기간 : 85년 1월 ~ 87년 11월
제 2대 준종(準宗) 영덕 :
① 종훈, 정훈, 정길, 강돈, 승안, 원부 등과 같은 이들이 전장에서 위용을 떨치니, 나라가 크게 융성하였다. 이들을 일러, 세인(世人)들이 폭약타선(暴藥打線)이라 칭하였으니, 모든 나라의 투장(投將)들이 나서기를 꺼려하였다.
② 천하에 더이상 두려울 것이 없는 강성대국이 되었으니, 모든 나라가 머리숙여 항복하였다. 다만, 해태국만이 이에 맞서니, 왕이 크게 노하여 자웅을 겨루나, 거듭 패퇴하였다.
③ 왕이 나라를 크게 융성시켰으나, 항상 준우승(準優勝)을 즐겼다. 장수들의 논공(論公)을 위해 전장을 임의로 하기를 마다하지 않다. 가히, 그 치적에 비해 시호를 높이 올릴 수 없음이라.
④ 재위 기간 : 87년 11월 ~ 93년 11월
제 3대 신종(新宗) 병철 :
① 영의정으로 선대왕을 도와 나랏일에 힘썼다. 차기 지존의 자리를 탐하였으나, 선대왕이 북일고 서당 출신들만을 아끼니, 그 불만이 크게 쌓이게 되었다.
② 영덕 3년, 문무관료들이 나서 선대왕을 종신왕에 봉하려 하니, 이에 실망하여 롯데국에 귀순하였다.
③ 롯데국 병철 3년에 왕이 물러나, 다시 한화국으로 돌아오다. 문무관료들이 나서 보위를 권하니, 빙그레국 제 3대왕에 오르다.
④ 병철 원년, 국명을 한화로 바꾸다.
⑤ 나라의 권력이 원로원 대신들에게 있으니, 이들을 핍박하고, 재호, 영우와 같은 젊은 인재를 등용하다.
⑥ 정훈, 상국 등이 반발하니, 왕과 이들 노신들의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다.
⑦ 과거, 해태국과 자웅을 겨루던 폭약타선(暴藥打線) 중신들을 대거 숙청하다.
⑧ 재위 기간 : 93년 11월 ~ 98년 7월
제 4대 원종(怨宗) 희수 :
① 병철 5년, 선대왕이 치세하는 동안 나라가 크게 번성하지 못하다. 여름에 이르러 선대왕이 후사를 두지 않고 물러나다.
② 이에 문무관료가 추대하여 왕이 대리첨정하였다.
③ 해가 지나고, 왕이 정식으로 보위에 오르다.
④ 외인 로마이어와 데이비스가 분전하고, 영우, 지만 등이 크게 활약하였다. 불패장군(不敗將軍) 대성과 민철은 천하가 두려워하였으니, 이내 국가의 숙원(宿怨)을 이루다.
⑤ 희수 1년, 패왕전에 출진하여 롯데국과 맞서다. 타조판서(打組判書) 승안의 부인이 위중하였다. 이내, 한화국이 승전하여, 처음으로 천하를 거머쥐었다. 소식을 들은 판서의 부인이 비로소 편히 숨을 거두었다.
⑥ 재위 기간 : 대리첨정 기간(98년 7월 ~ 98년 10월), 보위(98년 10월 ~ 00년 11월)
제 5대 자종(自宗) 광환 :
① 재위 기간 : 00년 11월 ~ 02년 11월
제 6대 두종(頭宗) 승안 :
① 젊은 투장(投將) 원상의 부친이다.
② YDG라 하였다. 왕의 치적이 미약하니, 사관은 백성의 소리를 따를 뿐이로다.
③ 재위 기간 : 02년 11월 ~ 04년 10월
제 7대 국민왕(國民王) 인식 :
① 원종(怨宗) 희수왕대에 이르러, 천하를 얻었으되, 후로 나라가 더이상 융숭하지 못하였다. 이에 문무관료와 백성들이 합심하여, 인식왕에게 보위를 권하나, 왕이 따르지 않았다.
② 부호 승연이 친히 찾아가 권하니, 왕께서 비로소 보위에 오르다.
③ 인식 2년, 천하 연합군을 이끌고 제 1회 세계야구고풍스러움(第一會 世界野救古風스러움)에 출진하여 큰 성과를 이루다. 이로인해, 천하 백성들이 국민왕(國民王)으로 존숭하다.
④ 재위 기간 : 04년 10월 ~ 현재 진행형
※ 인식왕 전하께 좋은 말 많이 하고 싶었는데, 우째 제가 집필하는 동안 구설수에 오르내리셔서 ㅠㅠ. 걍 한화왕조의 역사만을 논하고 싶을 뿐이네요.
사설(私說)
삼가 사관이 가로되...
불민한 몸은 충북이 고향이다. 충북에서 났으며, 유년시절에 대전으로 옮겨 보내다. 6세가 되어, 천하에 여섯나라가 일어났다. 할거시대(割據時代)의 난세(亂世)에, 부친과 집안의 어른들이 이르시되, "사람이 나서 그 뿌리를 잊고, 부정한다면, 어찌 그것이 바르다 하겠는가." 그런 고로, 불민한 사관은 OB국에 몸을 의탁하여, 충성을 맹세하였도다.
세월이 흘러, 영덕왕 4년에 이르니, OB국이 동대문궁(東大問宮)을 향해 떠나다. 9세의 사관이 비통하여 대전궁(大田宮)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통곡하였다. 모친과 누이들이 옆을 지키며, 슬픔을 달래주다. 이내 부친과 숙부(叔父)께서 이르시되..
"이제 대전에서 OB국이 떠나갔으나, 새로이 빙그레국이 일어섰다. 장부가 태어나 충성하는 것은 이치이나, 그 주인을 가려 섬기는 것 또한 이치라 하겠다. OB국이 먼저 그 백성을 버렸으니, 어찌 굳은 이치만을 좇을 것인가."
연유가 이러하니, 사관의 일가들이 모두 새로운 주인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였다. 허나, 사관은 누이에게 말하되, "비록 OB국이 내 고향을 버렸다 하나,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했으니 어찌 새로운 주인을 섬기리오. 불민한 이 몸은 이미 웅혼(熊魂)에 마음을 내어준지 오래이니, 주인을 바꿀 수 없다."
하였으니, 누이와 불민한 이 몸 만은 OB국에 남아 작금에 이르고 있다. 불민한 사관이 조심스럽게 논하다.
"한결같은 마음은 모든것을 용서할 수 있으니, 어찌 변심했다하여 모든 것을 무너트리려 하는가. 새로운 정(情)이 그리우면 더욱 보듬어 줄 것이며, 오래된 정(情)이 그리우면 그것을 보듬어 줄 뿐이니. 세월이 흐르면 모든 상처가 아물고, 모두가 자리를 찾을 것이다. 허나 그것을 헐뜯고 허물으려 한다면, 그저 상처가 깊어질 뿐일 지다."
첫댓글 ㅋㅋㅋ...잼있네요...
야....최고다...제가 지금가지본 야사중 최고입니다...이거 퍼가도 대는가요?? ㅋㅋ
진짜 대단하네요... 너무 재미있어요 ㅋㅋ
"폭약타선"에서 뿜었다는,,,;;;ㅋㅋㅋ
살아있는 빙그레 한화의 전설 이네요 ㅋㅋㅋ 84년도 프로야구가 창단할때 충청의 OB 베어스 생각나네요 박철순 김우열 윤동균 신경식 김경문 조범현...원년 챔피언 먹고 3년후 한양으로 나이방 내빼버린 OB 베어스 지금도 그때를 못잊는 충청팬들이 지금도 두산 베어스를 아직도 응원하죠...86년 빙그레 창단시 6개팀 에서 버리다 시피한 2진 선수들 그때 삼성에서 이정훈 이강돈 강정길 빙그레와서 와신상담 대박친 사건이 나죠 당시 제친구가 열열한 사자팬 이었었는데 이정훈 이강돈 많이 아까워 했었죠 80년 후반때 그 막강한 해태를 그나마 대적했던 팀이 지금의 한화였습니다 지금 플레이오프중인 두산 롯데 삼성 죄다 우리밥 이었었는데..
에이 삼성은 아닌듯ㅋ
삼성에서 온게 아니라 우리가 지명한 선수인데요; .
제 기억이 맞다면. 91년도 인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만났었는데 그해 한용덕, 송진우 선수 대 삼성방어율이 1점대 이던가 0.점대 였습니다. 하일성 위원 해설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하여간 별루 힘도 안들이고 이겼죠. 밥까진 아니었어도. 프로초기 삼성과 김응룡감독 이전의 삼성은 대 빙그레 전적, 한화전적 별루였을 겁니다.
세계야구고풍스러움이라니 ㅎ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빙그레 시절 어린마음에 열열히 응원했었는데요...아직도 그 주황색 줄무늬 유니폼에 제일로 예뻐 보인다는....그 때 빙그레 연간 어린이회원 등록해주는 친구 부모님이 부러웠었는데..ㅋ
그리고 우승은 99년에 했지만 단일연도의 포스는 92년 빙그레가 가장 강했었던 것 같네요...아쉽게 롯데에 밀려 우승은 못했지만..
제가 원년 어린이회원이었답니다. 저희 아빠가 빙그레 다니셔서 강제 가입됐었는데.. 그덕분에 지금까지 이러고 있네요...
타점 (打點), 폭약(爆藥), 동대문궁(東大門宮),논공(論功), 제 1회 세계야구고풍스러움(第一回 世界野球古風스러움) ㅋㅋㅋㅋ 한자 제대로 쓰기를 생활화삽시당 ㅎㅎㅎㅎ
아놔 재미나네요 ㅋㅋ 간만에 많이 웃어보네요 ㅋㅋ
세계야구고풍스러움 에서 완전 뿜었네요 ㅋㅋㅋㅋ
재미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