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없는 말* [윤혜지]
물의 가장자리를
걷는 사람들
곧 멸종되는 조개를 줍는다
혹은 죄악 혹은 돌과 나무조각들
모든 것은 제자리에 두고
탐색
작은 것들을 옮겨 담는다
모래를 밟고 서서 물을 바라보는 건 낡고 근사하다 첫눈에 대해 말하는 노인들 같다
계절이 시작되면 그들은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상하지, 오래된 사람들은 늘 처음을 말하고
조개 줍는 사람들 곁에 앉아 조개에 붙은 모래알을 털어냈다 해안가 침식이 심각합니다 너도나도 모래를 퍼가서요 멸종은 조개가 아니라 모래에게 도래한 것 같아요
저기
온갖 것을 묻힌 사람이 지나간다 지나갔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한다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 손을 넣는다
모래를 퍼내면 모래는 느리게 밀려간다 더 깊은 곳으로
평범한 것들이 마음에 닿았다 떨어지는 순간
등 뒤에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사건을
잠깐 쥐었다 놓아도 쥔 감각을 놓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집에 가면
목이 긴 유리컵에 조개껍질이 한가득이다
그것을 관상하다, 같은 어려운 말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을 골라 따뜻한 국물 속에 넣고
죽은 것의
숨구멍끼리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야지 생각했지만 곧 잊혔고, 모두가 물가에 있었던 기억마저도 쓸려가고, 수심이 깊어져 이제 아무도 조개를 줍지 못할 곳까지 모래는 깊고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빈 곳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그런 적이 있었지 하기도 전에 각자가 멸종되고
무너지는 것도 반복이라고
노인들도 죽고 이제 눈 이야기 해줄 사람도 없다 처음을 발음할 사람도
* 필립 글래스의 동명의 책. 『음악 없는 말』, 2017.
- 문학동네, 2022년 봄호
*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처음이었나?
처음처럼 이야기하는 건 그동안의 소소한 전쟁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잘 먹고 잘 살면서 평화와 평안을 누릴 때에도 세계는 늘 전쟁 속에서
아비규환이었다.
조개를 병에 옮겨담는 마음은 목걸이를 만들겠다는 소박한 마음이지만
그사이 바닷가는 침식되고 모래사장이 없어지고
수온은 올라가고 어종은 바뀌어 가고.
상어가 나타난 건 처음이야!라고 노인은 말하고.
학자들은 아니야 언제언제인가 상어가 나타났었대!라고 말하고.
무너지는 것이 반복이라면 또 다시 재생과 회복의 과정도 반복의 편에 서지 않을까.
제목처럼 음악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 시를 읽으니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기묘한 장면이 읽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