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더운 가슴으로
유00 형제(32세)! 어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
고운 모양이나 아름다운 면이 없고 언어 장애로 힘겹게 컸다.
소통이 어렵지만 눈치는 백 단이다.
학습 의지가 약해 글을 깨우쳐 주지 못함이 아쉽다.
음악적 감성이 뛰어나 가수를 꿈꾸었다.
포동포동한 체격에 자매를 뚫어지게 본 눈을 가졌다.
야간에 야동을 즐겨 예배 시간에 졸았다.
믿음 생활 10년 넘었지만 삶의 변화가 무뎠다.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도 지속할 줄 몰랐다.
예배 마치면 보물처럼 조수석에 앉혔다.
그가 내릴 때 뒤 좌석 임 권사님께서
‘생전 인사할 줄 모른다!’구시렁거렸다.
매주 나오면 말 없는 천사였다.
하지만 집에서 문제를 키웠다.
아빠, 동생을 쥐 잡듯 다뤘다.
세 식구 중 동생만 온전하여 공고 졸업 후 직장 따라갔다.
난 활동 보조 아주머니의 골치 아픈 하소연을 들었다.
‘목사님! 고기반찬 해 줘도 무전취식으로 동네방네 소문났어요.
경찰이 자주 다녀가요.
시동 걸린 차량 보면 운전석에 앉아 무면허 운전으로 사고를 치네요.
심지어 이웃 주간보호 사무실에서 열쇠 들고나와 차 몰다 걸렸어요.
장애 등급 받은 자라도 횟수가 잦아 보호 감찰 중이에요.
교회도 혼자는 못 나가요.
동행해야 가능하네요.
심야에 무인점포에서 음료와 콘, 붕어 아이스크림을 갖다 먹어요.
부자(父子)가 다니며 아들은 망보고 아빠는 들고나온 데요.
8개월간 매일 10개씩 훔쳐 먹고 당뇨 수치가 올랐어요.’
최근 합병증으로 몸이 파리해 갔다.
건강한 체구가 앙상한 가지였다.
초점이 흐렸다.
토요일 이른 시간 혼자 교회 나와 놀랐다.
걸음도 흔들렸다.
봉지 커피 뜯을 힘이 없어 터 줬다.
활동 보조 아주머니에게 상황을 물었다.
정신과 약의 부작용이란다.
젊은이가 힘을 잃어 안타까워 나쁜 짓 하지 말라 일러도 소용없었다.
사실 송00 집사님이 그를 인도한 때가 20대 초반이었다.
찬양한 집사님 코앞이 그의 지정석이었다.
식탐이 커 식사 자리에 앉으면 난 옆에서 더 줬다.
매주 헌금과 용돈은 사모님이 줬다.
장모님 식사 대접하는 곳에 자주 데려갔다.
종종 간식과 돈을 쥐여 준 분도 계셨다.
잘 씻지 않아 지린내가 나면 임시방편으로 내 옷을 갈아입혔다.
단정함을 가르쳐도 그때뿐이었다.
입원 소식에 차량 운행 마치고 문병을 갔다.
가랑비에 낙엽이 젖어 본 죽 집 들러 가기 어려웠다.
병실에 들어서자 엄마가 계셨다.
초면이라 인사를 드렸다.
당뇨가 심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소변 줄은 뺐지만 눈이 움푹 파인 모습이었다.
측은하여 일으켜 앉혔다.
손을 많이 떨었다.
내민 죽도 혼자 먹을 처지가 못 되었다.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하는데 몸이 낙엽처럼 흔들렸다.
의사는 요양 시설을 추천했다.
퇴원 소식 듣고 심방을 갔다.
문이 잠겨 개미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일어날 힘이 부친 지 출입문을 못 열었다.
해는 없고 해바라기만 보였다.
활동 보조 아주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 방금 점심 차려 주고 등급 심사 직원 만나고 왔어요.
활동 시간을 늘려 보려고 휠체어도 신청했네요.
요양 시설에 보내면 장애 수당 42만 원으로 가능한가요?
그러면 등급 없는 아빠가 걱정이어요.
제가 집을 돌보지 않으면 엉망진창 되어 버려요.
이불 하나 갤지도 모르고 설거지, 방 청소하는 법 없어요.
술 마시고 그대로 두기에 보고 배울 점이 없네요.
어제도 이불 빨래해 널었는데 마르지 않아도 거둬 버렸어요.
아주 징 해 부러요.
비피더스와 요플레 사놓으면 저녁에 다 없어져요.
지난번 치질 수술하고 항문이 벌어져 실수할 때가 많아요.
화장실 가서 옷 벗어 놔라 해도 방에 변을 흘려요.
날마다 목욕시키는데 혼자 힘드네요.
일 많아도 차비 안 들고 가까워서 다니네요.
시골 출신이라 감당하지 다른 사람 같으면 못할 거예요.
비위 상해 밥도 못 먹겠어요.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어요.
센터에서 인정해 줘 상을 탔는데 차마 그만두면 욕하겠지요.
거짓말 밥 먹듯 한 입을 보면 머리는 좋은 거 같아요.
손버릇 나빠 맨날 벌받을 거라 했는데 저 모양 저 꼴이라 무섭네요.
파킨슨병인 듯싶어요.
걸음도 못 걷고 손도 못써요.
손 떨림에 혼자 밥을 못 먹어 떠먹여 줘요.
기다리다 약도 챙기고요.
잘 일어나지 못해 교회도 땡 쳤어요.
말이 씨가 되어 제가 많이 회개했네요.
세상에 목사님 같은 분 안 계세요.
교회 도움 되지 않고 얻어먹으러 나간 자 같은데 늘 챙겨 주셨잖아요.
제일 싫어한 게 과일이라 명절 선물은 값비싼 물품으로 대신했지요.
통원 치료 가면 비뇨기과 정밀 검사할 거예요.
사실 엄마가 근처 아파트 105동에서 수급자로 살아요.
이번에도 보호자 없이 입원 불가하여 간병하라고 15번 전화했어요.
절대로 안 받아요.
문자로 알바 비용 준다니까 그때 연락 왔어요.
병원에서 아들을 손으로 쥐어박으면서 첫마디가 디저 부러랴!
그렇게 생겼어요.
1년에 한 번 피자 시켜 주면 그만인 엄마!
2% 부족한 사람이지요.
바람기 있어 출소자 만나 사기당했어요.
1천4백만 원 빚을 감당 못해 죽으려다 응급실 실려 갔지요.
둘째가 갚아 주며 부모가 원수다 했어요.
쌀은 정부에서 나오지만 절약해서 돈 쓰네요.
생필품도 제 동생이 일터에서 가져오면 그 집에 갖다 주어요.
제가 감당 못하면 목사님께 부탁할게요.
요양 병원 소개해 주세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라 오지 않은 자를 기다렸다.
성도들도 마음에서 더운 가슴으로 물었다.
마침표가 아닌 기도로 챙기라고 어려운 글 썼다.
근래 우리 중에 긍휼히 여겨야 할 분들이 많아 눈물겨울 뿐이다.
2024. 10. 12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