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전 사슴과 늑대가 알래스카의 자연보호지역에서 함께 살았다. 그런데 당국은 사슴의 안전을 위해 늑대를 모조리 없애버렸다. 그후 절대적인 안전을 구가하던 사슴은 그 수가 10년 동안에 4000마리에서 무려 4만2000마리로 늘었다. 그러나 사슴의 편안하고 게으른 삶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운동량의 감소는 체질의 약화를 가져와 생명을 재촉했다. 결국 4000마리도 남지 않았다. 이 위기를 타개하려고 다시 늑대를 투입시켰다. 사슴은 늑대에게 희생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고, 사슴은 다시 건강해졌다.
보도를 보면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을 학원에서 배웠기 때문에 대학 진학 후에도 학원과외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조선일보 시리즈 ‘학원중독사회)”고 한다. 혼자서는 학습할 수도 없고 스스로 문제를 풀 수도 없는 탐구정신(inquiring spirit)의 결핍은 한국 학생 특유의 병리현상이다. 학원과 과외에 중독되어 있는 학생들은 마치 늑대 없는 인위적 안전지대에서 사는 허약한 사슴과 같다. 성장할수록 독자적인 학문 탐구의 길로 가야하건만, 우리 아이들은 대학과 취업, 그리고 사법시험, 의사시험까지 학원과 과외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다.
사실 오늘날은 얼마든지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시대다. 과거로부터 서양에는 튜터(tutor·가정교사)가, 우리에게는 독선생(獨先生)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출판 문화가 뒤져있었고, 인터넷이란 기상천외한 발명품도 없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학습 정보를 얻고 영어사전·국어사전·옥편을 적극 활용하는 독자 학습이 과거보다 훨씬 편리해졌다. 대부분의 학습서는 사전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가르치는 사람 또한 사전을 근거로 삼는다. 350만부 이상 팔렸다는 어떤 출판사의 단어 책도 사전을 간추려 놓은 것에 불과하다.
또 대입 학생들이 크게 신경쓰는 논술은 어떠한가. 엄밀한 의미에서 논술 선생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다. 대학에 논술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니 논술을 전공한 선생이 있을 리 없다. 논술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지식의 통합과 건전한 판단능력이 요구된다. 평소에 폭 넓은 독서를 하고, 한두 가지 이상의 신문을 구독하고, 그때그때마다 제기되는 이슈에 관해 혼자서 논술해 보면 충분히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그것과 관련된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읽어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런 식의 자습(自習)이 오히려 논술과외를 받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를 볼 것이다. 정확한 띄어쓰기나 철자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국어교과서를 부분적으로라도 베껴 써보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현행 수능시험은 심각한 학력 저하를 가져와 수학능력시험(Scholastic Aptitude Test)이 수학 무능력시험(Scholastic Inaptitude Test)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수험생은 간사하고 얄팍한 술법으로 찍는 요령만을 연마한다. 학습자세의 황폐화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지난달 발표된 2005학년도 수능시험 시행계획안에 따르면 고교2·3학년 때 배우는 심화선택과목을 중심으로 출제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현행 수능시험보다 더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현재 고2 이하 학생들의 과외 수요는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풍선 누르기식으로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며, ‘한국의 교육 문제는 신(神)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연간 7조원에 달하는 사교육비 절감은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 그렇지만 우리 자녀들에게 생존을 위해 늑대 앞에서 스스로 몸을 단련시키는 사슴처럼 DIY(Do It Yourself) 정신으로 학습자세를 스스로 연마하라고 요구한다면,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낙인찍히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