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태극기는 우리 국기 아니다"
소설가 이재운 작가의 주장
淸으로부터 독립 염원하며 세웠는데…北面 4괘·도교 태극 새겨 ‘사대’
“청나라 노무자들이 익숙한 도교 태극 그려넣은 듯”
(용인=뉴스1) 김평석 기자 | 2023-08-15 06:17 송고
편집자주 “4괘의 위치가 바뀌었다?”, “태극기의 태극은 주역에서 왔다?”, “청나라 사람 마건충이 조선 국기를 그렸다?”
오랫동안 논란이 됐고 우리가 알고 지낸 태극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과연 맞는 것일까?
뉴스1은 광복 78주년을 맞아 태극기와 관련해 우리가 잘 못 알고 있거나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밀리언셀러 소설 ‘토정비결’을 쓴 이재운 작가의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한국의 국기는 유일하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그것에는 세계의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는 멋지다. 거기에는 하늘과 땅, 네 개의 방위, 낮과 밤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선과 점이 있다. 그것은 우주를 나타낸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 선과 악, 불과 물이 있다.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이나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점·원, 붉은색·흰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25시를 넘어 아침의 나라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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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에 새겨져 있는 4괘와 태극. 4괘의 위아래가 뒤집혀 있고 도교의 어안(魚眼) 태극이 그려져 있다. © News1 이재명 기자 |
중국(청나라)으로부터 독립을 염원하며 개화파들이 세운 독립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가장 대중적인 신앙인 도교의 태극이 새겨져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밀리언셀러 소설 ‘토정비결’을 쓴 이재운 작가는 15일 태극기와 태극에 대해 책으로 펴낼 준비를 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재운 작가에 따르면 1896년 4월 7일 ‘독닙신문’ 창간호를 발행한 개화파들은 이듬해인 1897년 11월 14일 독립문을 세운다.
그런데 이 독립문에는 4괘의 위치가 조선이 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 국기로 공포한 태극기와 다른 이상한 태극기가 새겨졌다. 공포된 태극기(현재 태극기와 같음)의 4괘와 비교하면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4괘를 하늘, 땅, 물, 불로 상징한다면 이상할 건 없다. 주역에서는 ☰를 건(乾)이라 하고, 하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백제, 신라 태극에서 ☰은 햇빛이 가장 밝은 여름과 남쪽을 가리킨다. 해가 짧은 것은 ☷로 표기할 수 있는데 주역에서는 곤(坤)이라고 부르면서 땅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태극에서는 햇빛이 짧은 겨울, 또는 북쪽을 상징한다.
하늘과 땅을 상징할 때는 우리나라 태극과 중국의 태극이 서로 다르지만, 방위를 가리킬 때는 같다. ☰는 남쪽, ☷는 북쪽이다.
그래서 태극기를 그릴 때 ☰가 위로 올라가고, ☷가 아래로 내려왔다. 방위로 치면 ☷가 위에 있고, ☰가 아래에 있어야 한다.
또 임금은 반드시 남쪽을 바라보는 남면(南面) 풍습이 있었다. 이것이 태극기 4괘에 표현돼 있다.
그런데 독립문 태극에는 4괘가 남면하지 않고 북면(北面)하고 있다. 이것은 신민(臣民)의 시각이다. 신하와 백성은 임금이 있는 북쪽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 올라가고 ☰가 내려와야 한다.
독립문에는 태극도 태극기의 태극이 아니라 물고기 눈 모양을 찍어 놓은 도교의 어안(魚眼) 태극이 그려져 있다.
이재운 작가는 신라 감은사 태극, 백제 나주 태극, 고려 때 창건된 회암사(檜巖寺) 태극 등 우리 고유의 태극은 중국의 태극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서재필이 스케치하고, 우크라이나인이 설계해 세운 독립문에 어째서 도교 태극이 들어갔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재운 작가는 독립문 건립에 참여했던 중국 석공들의 착각에 의해 빚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곳이 아니고는 도교 태극이 거의 쓰이질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독립문을 설계한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Afanasii Ivanovych Seredin-Sabatin, 1860년~1921년)은 우크라이나 출신 건축 기사다. 서재필은 파리 개선문을 보고 스케치한 도안을 그에게 주었다.
기록에 따르면 설계는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하고, 토목건축은 조선인 건축기사 심의석(沈宜碩)이 맡았다. 심의석은 이때 중국인 노무자들을 데리고 공사를 했다.
태극기 문양은 조선 국기였지만 이를 새긴 노무자들은 중국인이었던 것이다.
이재운 작가는 “이들 중국인 노무자들이 무심코 익숙한 도교 태극인줄 알고 어안(魚眼)을 찍었고, 돌에 새기다보니 눈에 잘 띄지 않아 조선인들이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 작가는 그 근거로 청나라 마건충이 조선에 제안한 국기 역시 도교의 어안(魚眼) 태극이지만 이 문제를 김홍집이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점을 꼽았다. 청나라인들에게 도교 태극은 당시 여진족이나 중국인들에게도 친숙했지만 우리에게는 낯설었던 것이다.
이재운 작가는 “‘독립’을 내걸고 건립했지만 독립문 태극기에는 우리 태극이 아닌 중국의 도교 태극이 쓰이고, 임금을 향해 북면(北面)하는 봉건사상까지 담겨 있다”며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이고 우주의 중심이라는 태극기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태극기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자리 잡기까지 숱한 오류가 있었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하기 전에 찍은 기념사진에 나오는 태극기도 4괘의 위아래가 뒤바뀌어 있다. 태극도 상하가 아닌 좌우로 나뉘어 있고, 시계 반대 방향이 아닌 시계 방향으로 돼 있다”며 “나름대로 다 뜻이 있었지만 현재가 가장 바른 형태”라고 말했다.
◇이재운=소설가, 사전편찬자. 그가 1991년 11월에 첫 출간한 소설 토정비결(전3권)은 350만 부 이상 팔린 우리나라 최초의 각권 밀리언셀러다.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창작 활동을 펼쳐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 150여 권을 출간했다.
1993년 스포츠서울 <이재운의 민속기행>, 1996년 조선일보 <청사홍사靑史紅史>, 1999년 경향신문 <당취黨聚>, 2008년 한겨레신문 <이재운의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 등을 연재했다.
장편소설은《장영실》,《상왕商王 여불위》(전6권), 《천년영웅 칭기즈 칸》(전8권), 《당취黨聚》(전5권), 《하늘북소리》(전2권), 《청사홍사》, 《바우덕이》, 《갑부》(전2권), 《징비록》, 《사도세자》, 《가짜화가 이중섭》, 《김정호 대동여지도》, 《황금부적》 등을 출간했다.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시리즈’로 《우리말 사전》, 《우리말 어원사전》, 《우리 한자어사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등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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