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디세우스의 밧줄
2026년 5월 18일 월요일
선경 정해균의 독서 노트
◐욕망의 대항 수단.
세이런(seiren)은 반은 여자이고 반은 새인 바다의 마녀이다. 전승에 따르면 세이런은 해신 포르키스의 딸 또는 강의 신 아켈로우스의 딸이라는 설이 있다. 세이런은 처음에는 두명으로 언급되다가 후대 전승에서는 3내지 4명으로 나타났다.
처음에 세이레네스(seirenes)는 몸과 얼굴은 여인의 모습에 새의 다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세 후기 이후 세이레네스는 상반신은 여인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물고기 꼬리를 가진 인어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세이레네스는 절벽과 암초로 둘러 싸인 외딴섬에 살고 있었다. 그녀들은 매혹적인 노래를 불러 근처를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유혹했다. 신비로운 노래소리에 선원들은 홀린 듯 뱃머리를 섬 쪽으로 돌려 다가가면 배가 난파되어 목숨을 잃거나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여인이었다.
누구든 세이레네스 자매의 노래소리를 들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세이레네스의 섬을 무사히 통과한 배는 이아손이 이끄는 아르고호와 오디세우스 일행이 탄 배 밖에 없었다.
아르고호 원정대는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 세이레네스의 노래를 압도해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오디세우수도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세이레네스의 섬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밀랍으로 귀를 틀어막게 한 뒤 노를 젓게 하였다. 귀를 막아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던 부하들은 세이레네스의 유혹에서 벗어 날수 있었다.
세이레네스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었던 오디세우스는 부하를 시켜 자신을 돛대에 꽁꽁 묶게 한 다음 그곳을 지나갔다. 세이레네스는 오디세우스 일행이 노래에 유혹되지 않고 지나쳐 가자 치욕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권혁진 지음 ‘불멸의 언어’ 중에서
♣독서노트 註. 세이렌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마력을 지닌 님프(nymph)입니다. 세이렌이 무리 지어 함께 다니므로 복수형인 세이레너스(seirene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스타벅스 브랜드 로고에 ‘세이렌’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창업주 하워드 슐츠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이 뱃사람을 홀린 것처럼 사람들을 홀려서 커피를 마시게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세이렌을 심벌 마크로 채택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세이렌은 영어 단어 사이렌(siren)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탐욕, 욕망, 쾌락의 유혹 다스리기.
우리는 욕망과 초조함 탓에 끊임없이 틀어져 버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튜닝’ 해야 합니다. 불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 중 하나인 ‘숫타니 파타’의 다음 구절을 읽으면 이를 위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뱀의 머리를 밟지 않으려 주의하듯 쾌락을 피하는 자는 마음을 추슬러 집착너머로 나아간다. 토지, 재산, 금, 소와 말, 하인, 친척, 그리고 다양한 집착의 쾌락을 탐내는 자에게는 망가진 배에 물이 스며 들 듯 괴로움이 찾아 든다. 그러니 항상 마음을 집중하여 감각적 쾌락을 피하라. 그것들을 버리고 홍수를 건너가라. 배의 물을 퍼내고 저 언덕에 다다른 사람처럼.“
“탐욕은 큰 홍수, 욕망은 거센 물살, 집착은 파도, 쾌락은 빠져나오기 어려운 진흙 탕” 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가운데 어디에 휩쓸려 허둥대고 있을까요? 가만히 머물고 있으면 먼지가 쌓이고 때가 끼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대장장이가 은(銀)의 때를 벗기듯” 우리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 내야 합니다.
- 안광복 지음 “철학으로 돌파하라” 중에서
♣독서노트 註. 5월 24일 은 부처님오신날입니다. 24일 25일은 연휴이므로 다음주 ‘독서노트’는 쉬려고 합니다. 불교의 창시자 이신 석가모니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불교의 오래된 경전에 나타난 지혜를 음미하며 공유합니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다(人性如水).
자고로 (사람의)성품을 물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성선설이냐 성악설 이냐에 따라 그 이유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경행록” 에서도 사람의 성품을 물에 비유했다. 물은 한번 쏟아지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사람의 성품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되어버리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한번정도 어떠 랴 하지만,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다가 어느덧 관성이 붙게 되면 점점 더 돌이키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제수자필이제방(制水者必以堤防)’ 즉 물을 제어하려면 반드시 제방으로 하듯이, 제성자필이예법(制性者必以禮法) 즉 성품을 제어하려면 반드시 예법으로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 인간 사회의 예법은 물과 연관 지으면 일종의 제방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홍수가 져서 물이 많아도 제방이 튼튼하면 물은 그 제방을 따라 굽이 굽이 흐르면서 넘치지 않는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서, 승리하려면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 하나 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하기에 절제의 제방으로 우리의 욕망이 흘러 넘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조성기 지음 “성경으로 읽는 명심보감” 중에서
【선경의 독서노트】
오늘 화두인 ‘오디세우스의 밧줄’은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이 충동적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안한 유혹에 대처하는 인위적인 사전 보호 조치의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오디세이아 라는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사실 유혹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점령하고 10년에 걸친 오랜 여정을 견뎌 내고 고향으로 돌아 가는 길이 였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세이렌이 유혹하는 노래에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소망을 억지로 관철시키는 방법을 찾아 냈던 것입니다. 일종의 선견지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금욕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의 재능은 쾌락에 빠져들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판단하는 능력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일종의 이상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한 19세기 비평가는 약간의 과장을 덧붙여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습니다.
“현재나 미래의 고통을 피할 수 있을 때 마다, 혹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마다, 오디세우스의 자제력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오디세우스는 결코 자신의 욕구나 열정을 충족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현실세계의 실제상황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뭐든지 계속해서 즐기려면 그만큼 절제해야 합니다. 건강, 부, 권력, 명성, 부부관계, 우정, 존경받는 리더십, 등은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절제의 미덕을 발휘할 때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다 고 필자는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웃 나라 중국의 경우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는 중국 지도부가 벤치마킹하는 전설적인 왕입니다. 만주족 15만명을 이끌고 한족 1억5000만명을 무려 61년간 통치했습니다. 그의 통치 비결은 모든 면에서 절제였습니다. 사치와 물욕을 절제하고 지출은 역대 최소로 아꼈습니다. 후궁 숫자도 가장 적었습니다. 강희제는 한마디로 중국 왕실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절제의 황제였습니다.
만족과 절제는 욕망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자기절제 수단입니다만 그런 덕목을 행사하는 사람이 그 혜택을 직접 누린다는 점에서 둘 다 나를 보호하는 비장의 호신용 무기와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에 관한 성구가 세번이나 반복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도덕경 33장 知足者富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유하다.
☞도덕경 44장 知足不辱, 知止不殆,可以長久.
만족할 줄 알면 치욕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그렇게 하면 오래 갈수 있다.
☞도덕경 제46장 故知足足, 常足矣
만족할 줄 아는 데서 오는 만족이야 말로 영원한 만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나 열 일곱 살에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습니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20년을 수학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의 부름을 받아 왕자의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왕자는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되었습니다. 그 보다 더중요한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제력 문제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모든 사람을 위한 현자중에 현자 라는 것입니다. 자제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체계와 진정한 삶 개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적을 정복하는 사람보다 욕구를 극복하는 사람이 더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 이다.“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kon Nikomacheion)에 드러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연구는 심지어 오늘날까지 우리의 삶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대가 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아예 없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무모한 행동의 끔찍한 윤리의 위험을 초래함을 지적했습니다. 한나 아 아렌트(Hannah Arendt)역시 1963년에 예루살렘에서 나치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 만의 재판을 취재하면서 비슷한 연관성을 지적했습니다. 아이히 만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도덕성에 대해 단지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이에 대해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생각 없는 행동은 모든 사악한 본능을 전부 합쳐 놓은 것보다 더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인격을 완성하면 성공은 따라온다” 는 명제를 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tool을 사용할 것인가 묻는 다면 필자는 저는 주저 없이 “절제” 라는 tool을 사용하겠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날로 녹음이 짙어 가는 싱그로운 계절 5월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계절에 라이언 홀리데이 가 쓴 ‘절제수업(discipline is destiny.)’에 수록된 “인격을 완성하면 성공은 저절로 따라 온다” 라는 고무적인 결론 부분을 공유하며 오늘 글을 마 칩니다:
“고대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 폼페이우스는 서기 66년에 이미 ‘위대한’ 이라는 뜻의 ‘마그누스’ 라는 칭호를 얻어, 명실 상부 ‘위대한 폼페이우스’가 되었다. 폼페이우스는 에스파냐를 다시 정복했고, 두번이나 로마의 집정관을 지냈으며, 스파르타쿠르스 노예 폭동을 일으킨 스파르타쿠스를 물리쳤다.
그 다음으로 폼페이우스는 지중해를 공포에 몰아넣던 길리기아 해적을 소탕하라는 임무를 받고 파견되었다. 떠나기 전에 폼페이우스는 고대세계 위대한사상가인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 포시도니오스에게 들러 조언을 구했다.
포시도니오스의 조언은 하나마나 한 말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최고가 되고 항상 남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 시오.’ 포시도니오스는 야심 찬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오디세이아’의 한구절을 인용해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적보다 더 많은 승리를 거두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정복하라는 말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가 아니라 명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
.
폼페이우스는 포시도니오스가 ‘영광에 대한 그의 미친 사랑’이라 표현했던 끝없는 야심 때문에 카이사르와 동맹을 맺었는데, 이는 그가 한때 그가 사랑했던 공화정 몰락의 시초가 되었다. …어느 날 파루살루스에서 카이사르의 군대에 패배하여 모든 것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폼페이우스는 명성,부,권력, 승리 등 잘못된 ‘최고’를 좇느라 자신을 ‘최악이’의 사슬에 묶어 벌리고 말았다. 그것은 폼페이우스 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 갔다. 타협할 때, 절제를 느슨하게 할 때 ‘예외’ 를 두고 옳은 일 대신 편리한 일을 할 때, 우리 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경주에서 뛸 것인가? 그 경주에서 누구를 이기려고 노력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최선인가? 우리가 마음속에 두고 항상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다." “끝”
♣추신. 5월24일은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25일이 대체 휴일이므로 ‘독서노트’도 연휴날 글방에 문을 닫으려고 합니다. 오늘 부처님오신날 헌시를 한주 앞당겨 올립니다.
살구나무 죽비
임성구
무쇠 같은 하루가 노을에 닿는 시간
시퍼런 몸에 감춰진 찌던 먼지 털어낸다.
속 비운
살구나무 죽비
내 등에서 꽃핀다.
깍 막힌 혈전들이 녹아내리는 몸속 행간
천년 전 바람냄새 스멀스멀 배어 들면,
그 봄을
기억하는 살구
몸의 터널 환하다.
♣임성구. 시인 1994년 “현대시조” 등단. 경남시조 문학상 외 수상. 시집 살구나무 죽비’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