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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_읽은_한편의_시_김완_시인
내가 읽은 한 편의 시: 이유정 시인의 「오늘의 날씨」 / 김완 시인
김완
봄비다, 폭우다
동백꽃 무거워지고 개나리 툭툭젖겠다
여수에 전화를 한다 오랜만이다 수화기 너머로 꽃 많
이 피었냐 물어본다 여전한 목소리로 다 피었다고 한다
꽃도 비도 만개한 납골당이라고 한다 친정어머니 동백기
름 바르고 붉은 동백꽃 화장 중이라고
목소리가 축축히 젖는다
번지는 동백꽃 동백꽃
시립 여수화장장 불 속에
동백
나는 왠지 미안하고 자꾸 미안하고
폭우가 덮치고
부랴부랴 생을 지우고 떠나는 것들
봄날의 은하 관광버스
만석으로 떠나겠다
-「오늘의 날씨」 전문, 『괜찮아! 날개가 있으니까』 중에서, 상상인 시선 056, 도서출판 상상인
이유정 시인의 유고 시집『괜찮아! 날개가 있으니까』에 실려 있는 시입니다. 시집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유고 시집이라니요? 시집을 보내준 이서영 시인(=이유정 시인의 친구)과 통화 후에 화순에 사는데 최근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저와도 문학모임에서 한두 번 스치듯 만난 적도 있은 듯합니다.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인도 죽습니다. 그 누구라도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문학의 도반을 떠나보내고, 유고 시집을 엮어 세상에 빛을 보게 한 함께 공부했던 분들(박순원, 김성철, 엄지인, 이서영 시인)의 노고에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6연으로 구성된 비교적 짧은 시입니다. 첫 번째 연에서는 짧은 2행 3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짧은 문장이 봄비치고는 폭우이고 비에 동백이 무거워지고 개나리가 젖은 모습을 간결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만들어 냅니다. 둘째 연은 산문시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여수에 사는 친정어머니에게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하며 무심한 듯 ‘꽃 많이 피었냐 물어본다’ 답이 ‘여전한 목소리로 다 피었다고 한다/꽃도 비도 만개한 납골당이라고 한다’, ‘목소리가 축축히 젖는다’ 행간 너머로 아마 최근 가까운 피붙이가 세상을 떠났지 않았을까 유추하게 합니다. 3연은 떨어진 동백꽃과 시립 여수화장장 불 속을 대비시키며 어떤 죽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4연은 나(=시인)는 죽음에 대해 정리되지 않은 자신이 ‘왠지 미안하고 자꾸 미안하고, ’미안해 합니다. 세상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선한 사람들, 특히 시속의 시인 자신이 지니는 타고난 성정입니다. 5연 ‘폭우가 덮치고/부랴부랴 생을 지우고 떠난 것들’이라고 담담히 말합니다.
‘부랴부랴 생을 지우고 떠나는 것들’이 마치 시인의 앞날을 예견한 듯하여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죽음 앞에서도 우리가 매일 겪는 ‘오늘의 날씨’라는 이 평범한 제목이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6연은 이 시의 반전입니다. 아무도 피해가지 못하는 생노병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날의 생인‘은하 관광버스’는‘만석으로 떠나며’ 찬란합니다. 짧지만 그 여운이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좋은 시입니다. 시가 죽으면 사람의 영혼도 죽습니다. 시가 살아야 이 세상도 살만해집니다. 시집에 좋은 시들이 많습니다. 아래는 제가 선한 몇 편의 시를 올립니다. 함께 감상하면 좋을 듯합니다.
백자 철화끈무늬 병*
이유정
사람이 물건을 닮아가듯
물건도 사람을 닮아간다
오늘은 진흙 발로 네가
탁자 위로 둥싯 달덩이 몸을 눕히고
천년 가는 꽃을 피우고
푸른 학 멀리 날려 보내도
저 흙 담장을
나는 넘지 못하고
비 비
비 비 비비
비 또 비
비 오는 날에 뻐꾸기 울음
젖은 마음 마르지 않아
나비도 그려 날려 보지만
며칠 전 뜨거운 불길
너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
산산이 흩어져 버려지는 것도
아름다운 몸을 얻어 떠난 것도
돌무덤 위로 붉은 뻐꾸기 울음은 쌓이고
쓸쓸한 마음 식히려는지
먼 산 돌아오는 천둥소리
그 얼굴처럼
오늘은
네가 마음을 잡고
놓지 않으니
죽음도 끊어내지 못할
붉은 끈 하나
한끝은 네 목에 두르고
한끝은 내 허리춤에 붙들어 매고
우리 흔들리는 사랑이라도
저 불 건너 다시 만나자
* 작가 미상의 보물.
명옥헌鳴玉軒
고요가 쌓여 울음이 되는지
올려다보는 하늘하늘 가지마다
붉은 꽃입니다
붉은 울음 팔월입니다
오랜만에 소란한 생기가 울긋불긋
맥문동수크렁여귀 따라서 붉고
썩은 나무 그루터기까지 자궁 활짝 열고
붉은 울음 왈칵왈칵 쏟아냅니다
흔들흔들 강아지 꼬리에도 붉은 꽃잎 몇 개
모든 붉음을 받아 안은 연못은
세상에 제일 큰 꽃을 피웠습니다
꽃잎 쪼아 먹으려는 물고기들 톡톡 몸을 날립니다
배기 불그죽죽 꽉 차
새 울음 곧 터질 것 같습니다
풍경소리도 붉디붉어
우리도 붉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데
모두 떠난 뒤에도
환장하게 붉은 울음은 남아
마음 참 아련할 것 같습니다
까마귀 장롱
치마를 들고 세탁소에 간다 겨울동안 얼룩이 생겼다
옷에는 구겨서 쉽게 버릴 수 없는 기억들이 많다 햇
빛에 동그랗게 펼쳐지는 노란 나팔꽃 같은 치마를 세탁
소 주인에게 내밀자 지울 수 없는 얼룩이라고 한다 치마
보다 더 오래된 얼룩이라고 검은 글씨가 젖으면 붉은 글
이 베어 나온다 거울 앞에 서서 내가 아닌 나를 볼 때가
있다 그 여자 웃을 때 웃음 밑에서 서늘하게 배어 나오
던 얼룩 애써 시선을 비켜 외면하면서도 그 웃음이 좋았ㄷ
다 마음과 마음이 스쳐도 얼룩이 남는다 버리지도 입을
수도 없는 치마를 들고 와 다시 옷걸이에 걸었다
까옥,
빛나는 모든 것을 수집하는 까마귀처럼
이유정 시인: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생오지 문예창작촌>, <시가 흐르는행복학교>에서 시문학을 공부하였다.<치치시시> 시동인, 유고시집으로 『괜찮아! 날개가 있으니까』가 있다.
시인 김완(金完) 약력
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지상의 말들』,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너덜겅 편지』 등이 있다.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 시인상 수상